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나타난 몇 가지 의문

프린트

오피니언 ㅣ 사설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나타난 몇 가지 의문 중소기업 지원, “왜”와 “어떻게” 고민할 때

기사입력2014-01-07 13:07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박근혜 대통령은 6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경제혁신 3개년계획을 제시했다. 국민소득 4만 달러, 고용률 70%, 잠재성장률 4%로 요약되는 ‘474’ 목표치도 내놓았다. 창조경제 구체화와 내수 살리기의 주요 동력원으로 중소기업을 지목하고, 이에 대한 지원의지도 천명했다. 규제는 풀고 산업은 살리겠다는 약속도 했다. 몇 가지 우려만 해소된다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기대를 가져도 좋을 국정운영 계획이다.

그럼에도 대통령 경제공약의 핵심이었던 ‘경제 민주화’가 취임 316일만의 첫 기자회견 80분 동안 단 한 차례도 거론되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같은 시간 동안 ‘경제’는 24번, ‘규제 완화’는 10번, ‘투자’는 7번 언급됐다. 적어도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경제 민주화와 동가(同價)의 다른 단어나 사례가 제시된 것도 아니다. 정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충돌되는 가치들 사이에 가중치와 균형을 잡는 과정이다. 이번 기자회견이 대통령 의지의 후퇴를 암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작년 11월 경제정의실천연합에서 발표한 대통령 경제민주화 공약 이행률은 22%였다. 특히 대기업 총수 일가의 불법·사익편취 근절 관련 조항들은 대부분 원안에서 후퇴하거나 그나마 이행되지도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대·중소기업 해외 동반진출은 매우 훌륭한 각론이다. 다만 구체적인 로드맵, 그리고 ‘당근과 채찍’을 빠른 시일 내에 구현해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센터’를 ‘주도’하는 ‘민간’을 어떻게 발굴하고 지원할 것인지, 그리고 대기업을 어떻게 ‘동반진출’의 테이블에 앉히고 흔쾌히 협업하도록 할 것인지, 실행파일을 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실효성 논란에 선 ‘동반지수’ 사례가 재현될까 우려된다.

내수 활성화도 바람직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시작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공과를 점검할 때다. 다만 규제 개혁과 서비스산업 육성이라는 각론은 논란의 여지가 커 보인다. 규제 개혁은 그 과실을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배분할 것인지 국민적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개혁’의 과정에서 발생할 불가역적인 변화가 역사에 흠집을 내지 않도록, 거시적 시각을 견지할 철학과 능력이 있는지도 자문해봐야 한다.

서비스산업은 대통령이 언급했듯 ‘청년층이 선호하는’ 산업으로, 육성돼야 할 산업 중의 하나다. 그렇다고 해서 수요의 기반 없이 산업만을 키울 수는 없다. 이를 위해 인위적으로 수요를 진작해내거나, 의료·교육 등의 정책에 무리수를 두거나, 실체도 없는 ‘경제유발효과’ 자료를 양산해 이벤트성 정책을 합리화해서는 곤란하다.

이 지점에서 뿌리산업을 비롯한 중소 제조업이 서비스산업 뒤로 밀린 것은 뼈아프다. 서비스산업으로 유럽 경제의 강자로 떠오르자마자, 미국발 금융위기에 급전직하한 아일랜드 사례를 들 것도 없다. 서비스산업과 정밀제조업이 균형을 맞춘 스위스, 기계와 화학을 중심으로 한 ‘히든 챔피언’ 독일에서 배울 것이 많다.

미생물, 초본식물, 목본식물, 초식동물, 육식동물과 같은 다양한 생명체가 생태계를 꾸려간다. 대한민국 경제라는 거대한 생태계에도 이러한 다양성은 필수적이다.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풀뿌리와 같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와 종적(種的) 다양성으로 외부충격을 견뎌내는 완충재가 된다. 내부 구성원이 쉽게 붕괴되거나 탈락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안전망의 역할도 한다. 경영자의 ‘잘못된 선택’ 하나로 사회 전체를 도탄에 빠뜨리지도 않는다. 극히 일부분은 ‘진화’를 거쳐 먹이사슬 최상위로 옮겨갈 수도 있고, 생태계 전체에 활력과 변화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이유다. 이들의 지난해 수출 증가율이 대기업의 그것보다 높아서도 아니고, 이들 중 일부가 기업공개로 ‘대박’을 내서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