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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빌라도처럼…손 씻어도 책임은 그대로다
‘효율’의 가면 뒤로 숨는 ‘외주 공화국’ 현실
- 기사입력2015-01-12 10:49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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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파견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처형을 언도하고도 “그가 흘릴 피에 나의 책임은 없다”며 손을 씻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진실이 그렇게 편리하게 감춰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외주, 혹은 민자 사업이 빚어내는 부작용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경쟁’ 혹은 ‘효율’이라는 가면 뒤에 자신의 책임을 묻어버리려는 ‘편리한 계산’이 너무 도드라지게 보이기 때문이다.
새 학기를 앞둔 대학가를 달구고 있는 기숙사비 갈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와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한 건설회사가 기증한 연세대학교 ‘민자’ 기숙사비가 비슷한 크기의 대학 주변 임대시세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지 대금이며 건축비며 대부분을 무료 혹은 저가에 조달한 민자 기숙사의 주거비용이 이렇게 높은 ‘기현상’에 대해 학교 측은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다른 사립대학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주거약자가 대부분인 학생은 등골이 휠 지경이다. 이른바 민자 기숙사 효과다. 민자 기숙사는 민간 ‘시행자’가 짓고 운영하는 기숙사다. 학교가 소유권을 갖지만 시행자는 일정기간 사용료를 받아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싼 기숙사비를 받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학교 혹은 재단과 사업자 간에 어떤 물밑 거래가 이뤄지는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다만, 이러한 민자 기숙사가 늘면서 전반적인 기숙사비와 주거비용이 급격한 상승곡선을 긋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도입 20년을 넘긴 ‘민간투자사업법’은 민자 사업의 ‘원전(原典)’ 격이다. SOC 사업 등에 민간투자를 끌어오면서 정부는 “재정부담 감축과 민간경쟁을 통한 요금 인하”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밀었다.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 천안~논산 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부산신항만, 서울~춘천 고속도로, 용인~서울 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철도 등이 민자사업으로 충당됐다. 물론 자본가들이 그렇게 만만한 집단은 아니어서 최소운영수익보장(MRG) 보강, 신용보증한도 확대 등의 정책을 통해 살 길을 마련해뒀다.
민자사업은 정부·정치권과 시행 사업자간에 벌어질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윈-윈 게임이다. 전자 입장에서는 손 안대고 코를 풀 수 있다. 온갖 생색은 다 내면서도 비용은 들지 않으니 아쉬울 게 없다. 뭐,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데 당장 큰 돈 들지 않고 뭐든지 할 수 있다. 시공식, 준공식, 테이프 커팅하고 사진 찍어 표도 받아낼 수 있으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후자에게는 더 매력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3년까지 수익형(BTO) 민간투자사업의 세전 경상수익률은 대부분 10%를 상회한다. 저금리 시대에 이런 땅짚고 헤엄치기가 없다. MRG라는 완벽한 보험도 있겠다, 더할 나위 없다. 결국 대부분의 민간투자사업은 이제 ‘혈세 먹는 하마’가 됐고, 수조원에 이르는 재정을 지원받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업 적기 시행에 따른 국민편익 증진”이라는 근사한 성적표를 줬다. 이 과정에서 수백조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고용창출’ 효과가 거론된 것도 당연했다. 퇴직 관료들이 민자사업 시행사의 임원으로 옮겨가는 ‘편익’도 있었다.
경비원을 자살까지 몰고 가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원해고 하기로 한 강남 한 아파트의 사례나,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노동이 자행되도록 방조하는 현실도 ‘외주’ 혹은 ‘아웃소싱’이라는 ‘편리한’ 제도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익히 보아왔듯, 이러한 외주의 장점은 어떠한 경우에도 문제가 몸통으로 비화되지 않고 꼬리 차원에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내 손 더럽히지 않고도 외주사의 손을 통해 온갖 더러운 일들을 말끔하게 처리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깔끔한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식이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누구처럼 손을 씻기도 하고, 나의 책임이 아니라고 강변하기도, 피해자연 눈물을 찍어대기도 한다. 그러나 가면 뒤에서 ‘편리함’을 즐기는 것이 누구인지, 그로 인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한 편리함이 누구에게는 독이 되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언젠가 날아들어와 발등을 찍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모두들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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