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위작꾼…판 메이헤른 VS 루초모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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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세기의 위작꾼…판 메이헤른 VS 루초모프스키 위작은 자칭 전문가들의 오만과 부주의로 인한 실수에서 시작

기사입력2016-01-10 09:55

변종필 미술평론가 (jpdada@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변종필 관장·미술평론가

미술품 위조는 미술계에서 사라지지 않은 고질병이다. 미술의 역사만큼 오래돼 수많은 위작이 등장하면서 그에 따른 미술품 감정 위작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위작의 역사를 들춰보면 많은 위조범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 ‘베르메르 맨’이라는 별명으로 통할만큼 베르메르의 작품을 위조한 판 메이헤른과 스키타이 금속공예를 모방한 ‘사이타페르네스 왕관’으로 루브르미술관을 뒤흔들었던 루초모프스키는 위작의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작꾼들이다.

창조적 위작꾼 판 메이헤른

판 메이헤른은 철저한 연구와 준비과정을 통해 베르메르의 화풍을 습득해 베르메르의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창조적(?) 위작꾼이었다. 그는 미술공부를 하던 초창기만 하더라도 뛰어난 묘사력으로 화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재능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정작 자신만의 독자적 예술화풍을 구축하지 못해 창조적 화가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가 선택한 것이 위작을 만드는 일이었다.

판 메이헤른은 당대의 감정가들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정교하게 베르메르 화풍을 구사했다. 벼룩시장에서 베르메르가 활동하던 시기인 17세기 무명화가의 그림을 사서 원작의 표면을 정교하게 갈아내고 그 위에 베르메르 화풍으로 그리는 방식으로 위조품을 만들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표면질감과 수 세기 전의 작품처럼 보이도록 한 문제까지 해결한 것은 물론 베르메르가 사용했다는 오소리 털로 만든 면도솔, 17세기의 술잔과 주전자 등 세심한 부분들까지 베르메르의 흉내를 냈다.

그가 당대 최고 감정가들의 안목을 속일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베르메르 화풍이 원숙기에 접어들기 전 공백기를 가졌던 베르메르의 잃어버린 10년을 채우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즉,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베르메르의 원숙기 이전의 작품을 혼성모방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원숙기의 작품을 감정기준으로 삼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네덜란드인에게 국민적 화가로 추앙받은 베르메르의 예술세계 중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잃어버린 시기를 채운 메이헤른의 선택은 그야말로 성공적이었다.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1936~37)는 이 시기 판 메이헤른의 대표적 위조품이다.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 같던 판 메이헤른의 위작은 의외의 사건에서 덜미가 잡히며 위작의 전모가 드러났다. 2차 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끝나고 전범자를 재판하는 과정에서 나치 독일의 2인자였던 괴링 장군이 판 메이헤른이 그린 ‘간음한 여인’을 진짜 베르메르 진품으로 알고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 빌미가 되었다. 괴링이 이 그림을 소유한 과정을 수사하던 중 판 메이헤른이 이 그림을 괴링에게 넘긴 정황이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졸지에 적국 장군에게 국보급 화가의 작품을 팔아넘긴 매국노 신세로 전락한 그가 법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범죄를 밝히면서 세상에 진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급기야 법정에서 위작을 만드는 과정까지 재현하며 그의 위작술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의 위작술이 범죄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장에게 가짜를 팔아 골탕 먹여 시원했다는 우호적인 여론 덕분으로 매국노에서 애국자로 추앙받는 반전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판 메이헤른의 베르메르풍 위작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왼쪽), 스키타이 금속공예 진품으로 인정되며 루브르에 전시되었던 <사이타페르네스의 왕관>

위조품 증명하기 위해 똑같은 왕관을 재현한 루초모프스키

판 메이헤른이 철저한 전략과 계획으로 위작했다면 루초모프스키는 자신이 만든 위조품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 상태에서 일정 금액을 받고 ‘사이타페르네스 왕관’을 위조했다. 투조의 깃털, 아칸서스 잎, 포도 나뭇가지, 많은 야생동물 등이 정교하게 새겨진 높이 18cm, 순금의 무게 450g의 원뿔 모양을 한 독특한 형태의 왕관은 시각적으로 많은 사람을 끌어당겼다.

사실 이 왕관은 여러 의문점과 오해의 소지가 있었지만, 누구보다 스키타이의 뛰어난 금속공예품이라고 확신한 루브르 담당 큐레이터와 관장은 20만 프랑(약 800만 달러. 한화 93억)의 거금까지 융자받아 미술관에 소장했다. 1986년 왕관이 루브르를 통해서 대중에게 공개된 이후 세계 곳곳에서 이 왕관을 보려는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일정 기간이지만 왕관을 전시한 루브르의 선택은 틀리지 않은 듯했다.

판 메이헤른의 위작 사실이 영원히 묻힐 뻔한 것과 다르게 루초모프스키의 ‘사이타페르네스 왕관’은 1986년 전시 직후부터 위작논란에 휩싸였다. 전시 작품을 본 많은 관람자 중 여러 전문가들이 위작이라고 소신을 밝히며 문제 삼았다. 예컨대 스키타이 시대의 그리스 미술작품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던 아돌프 푸르트벵글러(고고학자, 미술사가)는 “혐오감밖에 없는 메스꺼운 위조품”이라는 악평으로 왕관이 위작임을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빌포스루브르 큐레이터를 비롯한 옹호자들과 위작을 주장하는 전문가들 사이에 왕관을 둘러싼 뜨거운 논박이 프랑스 언론을 달구었다.

진위논란은 7년여 동안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중 러시아 보석세공인(리푸쉬츠)이 제공한 결정적 증거가 제시되면서 왕관의 제작자가 루초모프스키임이 밝혀졌다. 위조범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왕관이 진품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거센 항의로 루초모프스키는 자신이 위작의 제작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똑같은 왕관을 재현했다. 그뿐만 아니라 왕관 제작의 납땜 과정과 왕관 제작 시 생긴 흠집과 손상부위를 정확히 밝히는 과정을 통해 끝까지 진품이라고 믿는 옹호자들이 백기를 들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루초모프스키는 잘난 체 한 전문가들의 눈을 속인 천재적 예술가라는 환호와 더불어 세기의 사기꾼이자 위작꾼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두 사람이 일으킨 희대의 위작사건이 주는 교훈은 제아무리 뛰어난 위작품이라도 속아 넘어가지 않는 뛰어난 감식안을 지닌 감정가들도 있지만, 때때로 위작은 자칭 전문가라 말하는 이들이 오만과 부주의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판 메이헤른의 위작을 베르메르의 진품으로 믿고 든든한 공조자가 된 인물은 유명한 컬렉터이자 미술사가(호프스테데 더 흐루트)이거나 베르메르 연구의 전문가(브레디우스)였고, 루초모프스키의 위작품이 진품으로 둔갑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루브르미술관의 큐레이터(빌포스)였던 것처럼 두 위작꾼이 세상을 속일 수 있었던 것에는 결과적으로 그들의 범죄를 키운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술품 감정의 오판(실수)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철저한 자기반성이 수반되지 않는 오판은 또 다른 위작을 만드는 빌미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미술품감정 논란으로 정작 화가의 예술세계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그에 따른 위상 정립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화가가 구축한 예술의 고유성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미술품감정이 존재하는 진정한 이유이다.[참고문헌:토마스호빙 지음, 이정역 옮김 <짝퉁미술사> 이마고.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