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싸운 비운의 닮은 꼴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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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장애와 싸운 비운의 닮은 꼴 화가 몽마르트 환락의 로트렉과 서울 변두리의 손상기

기사입력2016-03-06 10:34

변종필 미술평론가 (jpdada@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신체적 장애로 남들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지만, 그림을 향한 열정이 유일한 삶의 가치였던 닮은 꼴의 두 화가가 있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1864~1901)과 한국의 화가 손상기(1949~1988)이다.

로트렉은 프랑스에서 유서 깊은 툴루즈 공작 가문의 귀공자로 태어났지만, 어릴 적 두 번의 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하반신 성장이 멈춘 채 상반신만 성장하는 기형적 신체를 지니게 되었다. 한마디로 상체는 어른, 하체는 어린이였다.

손상기는 세 살부터 다섯 살까지 앓은 구루병(어린이 골연화증)이 척추만곡으로 이어져 가슴이 돌출되고 등이 의봉낙타처럼 되어 평생을 꼽추로 살아야 했다. 그를 한국의 로트렉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은 신체적 장애로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행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보편적 남성처럼 살 수 없는 그들에게 최고의 위안이 되었던 것은 그림이었다. 어릴 적부터 노트에 글보다는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자신들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림을 통해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쁨을 맛보았다.

로트렉은 아버지의 반대가 있었지만,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보살핌으로 화가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림은 로트렉이 살아가는 현실을 느낀 대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손상기 또한 ‘나를 나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고발하는 표현방법의 수단으로 그림을 그린다’라고 했을 만큼 그림이 자신을 표현하는 최선의 수단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여수소방서 주최 불조심 포스터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여 여수 중학교와 여수 상고를 미술장학생으로 다니게 될 정도로 미술은 그를 세상 밖에 당당히 설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로트렉-물랭루즈에서, 1892, 시카고미술관

두 화가는 외형적으로 명랑하고 활기찬 성격이었지만, 그림은 반대였다.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보다는 무겁고, 암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는 아무래도 불완전한 삶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심리적 요인의 작용으로 볼 수 있다.

몽마르트 환락세계를 즐겨 그린 로트렉

로트렉의 주요 생활무대는 몽마르트였다. 몽마르트에 아틀리에를 차리고 댄스홀, 콘서트카페, 카바레 등 여러 밤업소를 출입하며 그곳의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 술집의 단골손님, 가수와 댄서, 곡예사, 매춘부가 작품의 주된 모델이었다. 그림을 보면 동시대 인상파의 대표화가인 드가의 작품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실제 로트렉은 ‘작은 드가’로 불릴 정도로 드가가 표현한 몽마르트 밤풍경과 매우 흡사한 형태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세계 유명미술관에 가보면 드가 옆에 로트렉이 함께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드가와 확연한 차이점은 포스터와 석판화라는 장르에서 독자적 세계를 구축한 점이다. 특히 단순한 구성으로 주목성을 높인 포스터는 몽마르트 거리를 채울 만큼 인기가 높았다. 이 모든 것은 로트렉이 스스로 선택한 몽마르트가 안겨준 선물이었다. 위안과 고통, 희망과 절망, 환희와 슬픔이라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몽마르트에 부나비처럼 모여들었다가 사라지는 모습에서 인간이 지닌 삶의 속성을 보았다.

‘풍경은 부가물에 불과하고, 진정 관심 있는 것은 인물뿐이다.’라고 호언할 정도로 로트렉에게 사람들이 붐비는 몽마르트의 환락세계는 최상의 그림주제였다. 1899년 런던의 구필화랑에서 그동안 활발한 창작활동으로 제작한 80여 점으로 개인전을 열었을 때 대부분의 작품은 몽마르트 밤업소를 무대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손상기-손상기 공작도시-삶(터) 117x91cm 1984

서울 변두리 풍경을 주로 표현한 손상기

로트렉이 몽마르트 밤업소를 화폭에 담은 것처럼, 손상기는 서울변두리 풍경을 주로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가 그림으로 표현한 대상은 삶의 힘겨움이 묻어있는 사물이라든가, 시들어가는 나무 등 대부분 자신의 삶처럼 고단하고 힘겨운 생을 지탱하는 모습이다. 유명한 <공작도시>시리즈는 손상기의 삶과 예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투명한 창이다.

작품을 보면 공사장, 난지도, 달동네 등 화려한 도시에서 소외된 공간이 주를 이룬다. 그 공간에 그려진 사람들은 대부분 나약한 인물들이다. 공사판 일꾼,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 부랑자, 일용직 노동자, 행상하는 아주머니 등 대부분 현실에서 소외받는 이들의 모습이다. 현대사회에서 존재감 없는 사람들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은 물론 자기반영의 리얼리티를 추구한 손상기만의 화풍을 만날 수 있다.

로트렉과 손상기는 화가로서 성공적 삶을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로트렉은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럼주와 브랜디를 폭음해 정신과 육체가 망가졌다. 주정과 광기가 심해지고, 급기야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요양소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요양소에서 나와 다시 그림을 그리는 일에 열중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경련으로 붓을 잡지 못할 만큼 건강이 악화되었다. 이때 죽음을 예감한 그는 하나둘 씩 자신의 주변을 정리했다. 특히 자신의 모든 작품에 제작 연대와 서명을 하는 등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화가의 삶을 정리하는 것으로 채웠다. 그리고 1901년 9월 헌신적 보살핌으로 자신을 지켜주던 어머니의 곁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때 로트렉의 나이는 37세 였다.

손상기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을 때 쯤 불행하게도 폐울혈성 심부전증이란 불치병 진단을 받았다. 정상인이었다면 수술을 해서 삶을 연장할 수 있었지만, 장애 때문에 개복수술을 할 수 없었다. 죽음을 예감한 그는 그때부터 하루하루를 더욱 의미있게 살고자 했다. 두 번째 사랑인 연우와 미뤄왔던 결혼식도 올리고,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가족여행도 떠났다. 그러는 동안 자신의 유작을 어떻게 정리하고 보존할지에 대한 고민도 했다. 손상기 역시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화가로서 살아온 세월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입원과 퇴원을 6개월 간격으로 되풀이하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어느 날, 그는 39년간 숨 가쁘게 살아온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