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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1925년 ‘원숭이 재판’과 2015년 대한민국
90년 전 원고와 피고는 ‘결과’와 ‘명분’에서 승리했건만…
- 기사입력2015-01-05 10:30
김창훈 기자 (ckim2014@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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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90년 전 미국 테네시주의 작은 마을에서 ‘원숭이 재판’이 열렸다.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 주법률을 어긴 과학 교사 존 스콥스를 두고 벌어진 재판에 대한 별칭이었다. 원고와 피고의 변호인으로 전국구 정치인과 시민권리 진영의 유명 변호사가 대리전을 치르면서 이 재판은 두고두고 유명세를 타게 됐다. 원고측 변호인은 대권에도 여러번 도전한 바 있는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었다.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 출신이다.
이 재판에 기초해 만들어진 영화가 ‘Inherit the wind’다. ‘자기 집을 어지럽히는 자는 바람을 상속하며…’로 시작되는 신약성서 잠언 11장29절에서 따온 제목이다. 근본주의에 근거한 맹목과 광기, 사실과 논리보다는 선동과 구호에 휘둘리는 사람들, 법리 다툼과 여론과는 무관하게 내려지는 판결… 구체적 양상과 정도는 다를지언정, 이 영화 이곳저곳에서 어떤 기시감을 읽었다면 지나친 호들갑일지 모르겠다.
특히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 교사를 ‘원숭이 후손’으로 간단히 치부하는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모습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들 근본주의자들은 애초부터 논리의 지향점보다는 허점에만 반응하는 집단이다. 이를테면 A가 B일 수 ‘있고’, B는 또 C일 수 ‘있다면’, 앞 뒤 다 자르고 “A=C”로 간편하게 정리하는 식이다. 반대 진영은 고약한 비논리로 난도질한 후 아전인수 편리하게 규정하고는 낙인을 찍어버리는 이런 방식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꽤나 익숙한 구도다. 영화는 KKK단 가면 흉내 장면을 슬며시 끼워넣음으로써 이들과의 연결고리를 제시한다.
브라이언으로 분한 프레드릭 마치의 연기는 압권 중의 압권이다. 능수능란, 뻔뻔하고 노회한 정치인을 더할 나위 없이 그럴싸하게 그려냈다. 자신이 유리할 때는 기름기 넘치는 미소와 구역질나는 협박을 이어가다가도, 불리한 상황이 되면 억지와 비약, 조소와 비방으로 판을 흔들어버리는, 너무도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인의 모습이 그것이다. 마침내 창조론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인하게 된 그가 ‘명예회복’을 도모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무시무시하다. 듣는 이 없는 연설문을 실성한 사람처럼 읽어대는 그의 모습은 리얼하다 못해 섬뜩할 지경이다. 실제로 브라이언은 판결 5일만에 세상을 등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90년 전 테네시주에서 열린 이 재판에서 피고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벌금이래야 100달러, 재판의 유명세에 비하면 당시 물가수준에서도 그리 가혹한 수준은 아니었다. 원고는 ‘판결’에서, 피고는 ‘명분’에서 이겼다. 나름 절묘하게 균형이 맞았다. 그리고 역사는 전진한 것처럼 ‘보였다’. 2015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여기서 ‘전진’해 있는지, ‘원숭이 후손’으로 고통받는 또 다른 희생자는 없는지,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할 것 같다.<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