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설명’아닌 ‘의견’은 보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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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객관적 ‘설명’아닌 ‘의견’은 보증이 아니다 미술품 시장과 법…작품의 보증

기사입력2015-02-05 16:19

(주)예술만세 객원 기자 (artmanse2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비싼 명품이나 고가 가전제품을 사면 꼭 확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보증서’입니다. 진품을 보증하기도 하고, 품질을 보증하기도 합니다. 미술품은 고가이면서 단 한 점만 존재하는(판화 제외) 물건입니다. 당연히 ‘보증’이라는 것을 확인해야 하겠지요. 보증이라는 것은 구매자가 판매자로부터 어떤 물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은 그와 다른 것을 받아 실망한 구매자를 보호하기 위해 미리 받아두는 물품의 상태에 대한 약속입니다. 즉 판매자가 팔기로 합의한 물건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실질적으로 정하는 것이죠!

명시적 보증과 묵시적 보증

“매매의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데 매수인이 이를 알지 못한 때에는 이로 인하여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매수인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기타의 경우에는 손해배상만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매수인이 하자 있는 것을 알았거나 과실로 인하여 이를 알지 못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 권리는 매수인이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내에 행사하여야 한다”(민법 제580조 참조)

보증에는 ‘명시적 보증’이 있고 ‘묵시적 보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명시적 보증이란 판매자가 보증서, 계약서 등으로 명시한 보증으로 판매된 상품에 대한 핵심적 설명이 있고, 이것이 거래의 기초가 될 때 명시적 보증을 하였다고 볼 수 있게 됩니다.

묵시적 보증이란 별도의 명시된 서류상의 보증은 없지만 당사자 간에 당연히 동의했을 물건에 대한 암묵적인 수준에 대한 보증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문법이 아닌 성문법국가로 주로 ‘민법’상의 규정을 참고합니다.

갤러리 딜러가 ‘명시적’으로 계약서 등에 어떠한 작품의 진위나 상태에 대해 보증한 경우 분쟁 발생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죠. 이 경우 가장 큰 이슈는 ‘계약서 말고, 다른 서류’들도 ‘명시’한 서류에 해당하느냐에 관한 것인데 예컨대 갤러리 도록도 명시적 보증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다른 방법으로 표시된 매도인의 확인이나 약속이 계약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매도인의 사실 확인은 교섭 중에 행해진 것이라야 합의의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 추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고의 경우에는 그 속에 포함된 진술을 계약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보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다만 갤러리 도록은 될 수도 있습니다.

전시도록이나 광고는 명시적 보증이 될까?

명시적 보증은 어떤 조건에서 성립할까요? 성립요건은 첫째 매도인이 상품의 품질을 보증함, 둘째 매수인이 그에 의존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해 물건을 구매할 것(또는 매수인이 신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진술을 거래의 목적인 매도인의 이행의 일부로서 고려하였어야 함)입니다.

왜냐하면 매도인의 진술이 사실의 확인이나 약속으로서 명시적 품질보증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계약 기준의 일부를 이루어야 하므로 매수인 측의 행위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즉, 매수인의 개별적 신뢰를 요구하지 않지만, 매수인이 매도인의 확인이나 약속을 신뢰하였는가를 따지지 않고는 그것이 계약의 기초를 이루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 민법뿐 아니라 미국 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통일 상법전 313조의 명시적 보호책임 조항 중 (a)호는 “상품에 관한 그리고 계약의 기초의 일부가 되는 매도인의 매수인에 대한 사실의 확인이나 약속은 그 상품이 그 확인(Affirmation)이나 약속(Promise)에 부합한다는 명시적 보호책임을 생기게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상품과 매도인이 한 확언이나 약속과 일치하지 않을 때에 매도인은 손해보상책임을 부담하게 되는데, 이러한 법리의 근거로 광고는 물품을 구입하게 하기 위해 행해지고 또한 최종적인 매수인의 다수를 점하는 일반 소비자는 상품에 대한 지식이 결여되어 광고를 신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예컨대 자동차의 앞 유리가 파편으로 깨지지 않는다는(shatterproof) 제조사의 광고를 믿고 새 자동차를 구입하였는데 그 후 곧 돌멩이가 날아들어 앞 유리창이 깨지면서 유리파편에 운전자가 눈을 실명한 사건에서 법원은 제조업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직물의 수축을 방지한다는 품질보증이 붙은 피고의 약품으로 처리한 직물이 통상의 세탁 후 줄어든데 대한 사건에서 법원은 제품에 부착된 라벨과 잠재적 구매자에 대한 상품잡지, 선전우편(direct mail)등에 포함된 광고는 명시적 품질보증으로 간주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정리하자면 도록, 계약서 등과 같은 명시적인 서류상의 글이 객관적 작품에 대한 ‘설명(description)’이라고 판단되면 보증이 되나, 그렇게 단정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작품인 것 같다”고 하는 등 ‘의견(opinion)’이라고 판단되면 보증이 아닙니다.

피카소 서명이 위조된 작품 구매 사례

한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뉴욕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명시적 보증의 불이행을 인정한 첫 사례이기도 하면서 예술품 매매를 법이 규정하는 매매의 법리대로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1990년 뉴욕의 갤러리가 스위스 갤러리로부터 피카소의 Minotaur시리즈 중 한 작품을 140만달러에 구매했습니다. 그러나 진품이 의심된 주인은 피카소의 서명이 위조되었다 보고 스위스 갤러리에게 환불을 요청했지요. 그러나 스위스 갤러리는 환불 대신 피카소 서명이 있는 다른 작품으로 교환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뉴욕갤러리는 이 제의를 거절하고 명시적 보증 위반으로 소송을 걸었죠. 스위스 갤러리는 피카소 서명이 가짜이긴 하지만, 다른 피카소 작품으로 교환해 주면 되지 않느냐고 맞받아쳤죠.

그러나 법원은 스위스 갤러리가 피카소의 Minotaur시리즈라고 말했던 사실 또는 약속을 통한 확언(affirmation of fact or promise)에 의한 보증이 인정되므로, 그 보증을 어기고 가짜를 판매한 경우 계약을 무효화하여 환불해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금전으로 환불을 해주어야 하지, 같은 시리즈라도 다른 작품으로 ‘교환’해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술품은 유일한 것이므로 맞바꿀 수 없고 교환으로 물건의 하자를 치유할 수도 없기 때문이죠. 법원은 이에 대해 “다른 상품과 달리 예술품은 실용적 목적을 갖지 않는다. 혹여 두 작품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하더라도 처음 선택한 미적 감각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글=LG전자 스마트비즈니스센터 김별다비 변호사, curatorstud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