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와 국제시장 그리고 CJ 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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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광해와 국제시장 그리고 CJ 이미경 이 부회장 퇴진 압력이 소설이기를…그래야 덜 참담할테니

기사입력2016-11-18 19:12

박근혜 대통령이 CJ 경영진의 교체요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3일 MBN은 CJ그룹 손경식 회장과 청와대 조원동 전 경제수석의 통화내용이 담긴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조 경제수석은 당시 전화에서 ‘대통령의 뜻’을 앞세워 이미경 부회장이 물러나지 않을시 검찰수사까지 받을 수 있다는 협박성 발언도 했다. 조 경제수석은 이 부회장 사퇴를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현재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 부회장에게 조 경제수석이 사퇴를 요구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수 매체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CJ가 제작배급한 영화때문이라는 것이 아직까진 ‘정설’이다. 정설의 내용은 이렇다. MBN이 공개한 녹취록은 정치성향이 극명하게 다르다고 평가받는 두개의 영화를 CJ가 개봉한 중간시점, 2013년 말에 녹음됐다. 조 수석의 사퇴요구에 앞서 2012년 9월 CJ가 투자배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개봉됐다. 그리고 사퇴요구 이후 2014년 12월 CJ가 역시 투자배급한 영화, ‘국제시장’이 개봉됐다.

광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상되는 영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영화 광해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노 대통령이 생각난다는 이유에서다. 국제시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소재로 한 내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제시장 영화를 보고 상당한 감동을 받은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영화 개봉 이후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국기배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을 정도니. 이 두 영화의 투자배급사가 모두 CJ라는 것, 그 이외 tvN의 ‘텔레토비’ 그리고 ‘변호인’과 ‘그때 그사람’ 등의 영화도 정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인용되고 있다. 텔레토비를 포함 이들 영화들은 박 대통령에겐 불편했고, 불편한 심기를 경호하기 위해 조 경제수석이 나서 이 부회장에게 퇴진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영화 ‘광해’는 왕위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광해군이 자신과 닮은 하선에게 왕 역할을 맡기는 내용이다. 당시 사람들은 ‘하선’의 모습에서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봤다고 했다. 중전의 처남이 역모사건에 연루돼 중전을 폐하라는 여론이 임금을 압박하자 하선은 “조강지처를 버리라는 것이오?”라며 화를 낸다. 과거 노 전 대통령은 장인의 좌익경력으로 인해 ‘빨갱이’라며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4월 당내 경선 과정에서 “그렇다면 제가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이혼한다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아내를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입니까”라고 응수했다. 영화 광해를 만든 추창민 감독은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오마주한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이외에도 광해에서는 명나라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신하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명나라와 후금사이에서 중립외교정책을 펼치는 하선의 모습이 나온다. 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동북아균형 외교를 주창한 노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선은 다시 일반 백성으로 돌아간다. 노 전 대통령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일을 한다.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세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당시 시대를 너무 미화했다는 비평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딱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박 대통령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던 바로 그 장면이다. 똑 같은 그림을 봤지만 거기서 박 대통령은 ‘애국’을 봤고, 많은 사람들은 부부싸움도 멈추게 하는 ‘통제’를 봤다.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이 그 영화를 보고 흡족해 한 것은 맞는 것 같다. 박 대통령에게 불편했던 영화, 광해를 제작했던 영화사가 조 수석의 전화를 받고 박 대통령을 만족하게 한 국제시장을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의 주요 내용이다.

경영진 교체는 기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무능력한 경영진은 자칫 기업의 파산이나 인수합병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위험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전 부회장은 영화 ‘광해’가 관객수 1200만명을 돌파해 경영진으로써 능력도 인정받은 상태였다. 어떤 이유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조 경제수석의 전화 이후 이 부회장은 경영에서 손을 뗐다. 조 수석을 조사중인 검찰이 진실을 찾아서 ‘정설’이 사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소설이라고 밝혀주길 기대한다. 정설이 아니라 소설이어야 덜 참담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