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제(?)에도 시름만 더해가는 골목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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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월드컵 축제(?)에도 시름만 더해가는 골목상권 독일전, 승패 떠나 골목시장 사장님도 함께 웃을 수 있기를

기사입력2018-06-27 18:47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16년 전이다. 대한민국은 용광로 자체였다. 어른 손으로 움켜질 수 있을 크기의 공의 방향에 우리는 한 달 동안 들끓었다. 국가대표팀의 경기는 박진감 넘쳤으며, 국민들은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함께 한다는 설렘이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그렇게 끝나고, 그 여진은 매 4년마다 새롭게 재현됐다.

올해도 월드컵이 한창이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시작부터 관심 밖이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지방선거가 월드컵보다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게다가 국가대표팀 실력은 국민 기대에 못 미쳤다. 볼 재미조차 없어졌다는 말도 나온다. 2002년의 열기도 이젠 추억에 불과할 뿐이다.

시청자는 볼 권리를 챙기든 포기하든 자유의지지만, 골목상권을 비롯한 중소상인들은 긴 한숨을 내쉰다. 그럴 것이다. 수십만명이 길거리로 나와 응원전을 펼쳤던 지난 시절, 골목상권은 물론이고, 응원 관련상품을 만들어 낸 중소업체도 뜻밖의 호황을 누렸다. 국가대표팀에 애정을 갖고 길거리 응원전에 나선 국민들은 터져라 외친 목을 달래기 위해 지갑을 과감하게 열었다.

군중을 보기 힘든 지방 소도시에서는 특히 더 했다. 광장으로 볼만한 넓은 공터엔 여지없이 큰 브라운관이 설치됐고,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한명 두명 모였다. 이들 모두는 하나가 돼 대한민국 경기에 응원을 보냈고, 행복한 혹은 아쉬움이 혼재된 뒤풀이도 이어졌다. 소도시 상인들에게 군중은 버선발로 맞아야 하는 아주 특별한 손님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그 특별한 손님은 수가 줄더니 올해 월드컵에서는 발길까지 뚝 끊겼단다. 지난 18일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가 있던 날. 기자가 활동하는 SNS 대화방에는 경남 밀양과 서울, 그리고 경기도 용인과 수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각자 거주지 주변에서 자치단체나 지역사회단체가 주최한 응원전에 함께 했다는 소식이 오고갔다. 하지만 현장을 찍어 보내 온 사진에는 뜨문뜨문 자리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응원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나부끼는 그저 그런 풍경이었다. 열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쓸쓸함마저 느껴졌다.

올해 러시아 월드컵 분위기가 예전만 못한 이유중 하나가, 대기업이 마케팅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지 않은 이유야 명확해 보인다. 돈이 안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민세금이 투입되는 국가대표의 경기에 대기업은 손쉽게 숟가락을 얹었다. 국민 모두의 축제지만 사실상 대기업이 장악한 스포츠 행사.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이 낄 자리는 점점 줄었다. 아니 대기업이 나서지 않으면 판마저 깨져 버리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상상해본다. 만약 이번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아주 훈련이 잘된 모습을 보였고, 국민 관심사는 오로지 월드컵에 집중됐다면, 마케팅업체들은 월드컵을 어떻게 이용했을까. 그리고 대기업은 그 분위기를 어떤 식으로 경제적으로 활용했을까.

물론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 즐거움에 혹여나 이익을 보는 사람이 생기면 시장논리에 맞춰 가져 갈 사람이 가져가면 된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스포츠를 오롯이 운동경기로 보는 사람은 없다. 오늘 밤 11시에 열리는 한국과 독일의 F조 예전 마지막 경기. 잔치집 분위기는 이미 깨진 듯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승패를 떠나 즐기는 경기가 되길, 그 과정에서 골목경제 사장님들도 웃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