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에서 CEO로…발명으로 빚은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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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주부에서 CEO로…발명으로 빚은 인생 2막 연매출 10억 생활용품기업 제이엠그린 이정미 대표

기사입력2015-07-18 00:00

윤주희 기자 (jooheey15@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주경야독(晝耕夜讀).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공부한다는 이 사자성어는 제이엠그린 이정미 대표의 성공스토리를 꼭 닮았다. 그 옛날 선비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책 읽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면, 그녀는 창업을 꿈꾸며 낮에는 억척스런 워킹 맘으로, 밤에는 아이디어를 끄적이는 발명가로 9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이 대표가 지샌 수많은 밤은 냉동 양념용기 ‘알알이쏙’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제 그녀는 생활용품기업의 대표로, 연매출 10억원 규모의 여성CEO로 승승장구 중이다.

IMF가 휩쓸고 간 자리…발명에서 힘을 얻다

제이엠그린 이정미 대표 ©중기이코노미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당시엔 참 막막했어요. 그동안 남편만 바라보고 살아 온 주부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밤마다 어찌나 울었던지…. 그런데 어느 날 그 눈물 사이로 애들 자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때 결심했죠. 그래, 엄마인 내가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

이 대표의 제이엠그린 창업기는 9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는 IMF로 남편의 사업이 실패한 뒤 생계전선에 뛰어들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도록 일하는 생활. 그러나 언젠간 좋아지겠지 하던 기대와는 달리 가정형편은 점점 나빠졌다. 빚은 자꾸만 늘어갔고, 초등학생 자녀들의 학용품 값도 버거워졌다. 그러나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엄마’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그렇게 발명을 결심했다.

“마이너스 생활을 벗어나려면 다른 일이 필요했어요. 내가 뭘 잘할 수 있나 곰곰이 고민하다 보니 제품 개발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항상 이런 저런 아이디어 내는 걸 좋아했거든요. 근데 이게 한번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니까 점점 더 꼭 해야 할 일처럼 느껴졌어요. 제품 하나만 잘 개발하면 저희 가정도 살아나고, 남들 생활도 더 편리하게 해줄 수 있고. 그런 희망으로 삶의 의욕도 다시 찾을 수 있었죠”

그러나 부푼 꿈과 달리 현실은 여전히 팍팍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주부로서 집안일도 챙겨야했다. 이 대표는 낮에는 하던 일을 계속하고, 대신 잠을 줄여 밤에 제품 개발에 매달렸다. 저녁마다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신제품 출시 정보며 정부의 지원사업을 스크랩했다. 이러닝 사이트를 뒤져 창업 교육도 받았다. 그렇게 부지런한 준비 끝에, 드디어 첫 발명이 이뤄졌다. 브래지어용 패드였다.

“여름에 걸어 다닐 일이 참 많았는데, 집에 오면 항상 땀범벅이 됐어요. 왜 이렇게 덥고 답답한가 생각하다가 브래지어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죠. 곧바로 브래지어를 뜯어봤더니 실제로 공기나 땀을 배출할 수 있는 부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바람이 잘 통하는 원단을 사다가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브래지어 패드를 만들었죠”

알알이쏙<사진=제이엠그린>

이 대표는 그길로 대한상공회의소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특허출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상공회의소는 그녀에게 서울 역삼역에 있는 특허사무소를 소개시켜줬다. 변리사는 이 대표의 상품을 보더니 개발이 쉽고 희소성도 있다며 출원해보자고 나섰다. 당장 특허출원비 120만원이 없어 고민됐지만, 지인에게 한 달에 10만원씩 갚기로 하고 돈을 빌렸다.

그렇게 이 대표는 2005년 무렵 첫 특허등록을 했다. 그러나 제품화까진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하나에 몇 천만원씩 하는 금형 틀을 제작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사업을 알아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기업 위주의 사업이 대부분이라 개인자격인 이 대표는 신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표는 다른 아이템을 발굴해야 했다.

두 번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 창업의 밑거름 돼

“그즈음 우연찮게 한국전력 직원과 대화할 일이 있었어요. 근데 까치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다고 하더군요. 까치들이 전신주에 집을 짓는데, 나뭇가지는 물론이고 젓가락이나 쇠붙이, 심지어 옷걸이까지 물어 와서 합선사고를 낸다고요. 그날부터 목이 빠져라 전신주만 보고 다녔어요. 까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죠”

이 대표는 인터넷으로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물론, 직접 조류학자들을 만나 까치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그 결과 까치가 싫어하는 대역의 초음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를 이용해 초음파 조류퇴치기를 만들어 특허신청을 했다. 그 뒤로 이 대표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실시하는 아이디어 상업화 지원사업을 통해 시제품도 제작했다.

이정미 대표가 자신이 개발한 냉동 양념용기 알알이쏙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하지만 이것 역시 제품화엔 실패했어요. 기계이다 보니 시장에 내놓으려면 성능 인증이 꼭 필요했는데, 이전엔 없던 제품이라 인증해 줄 수 있는 기관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안타깝지만 눈 딱 감고 접어야 했죠”

두 번의 실패를 맛 본 이 대표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새 아이템 발굴에 앞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거창한 것은 하지 말 것, 성능인증이 가능한 제품을 만들 것’이었다.

“그때부턴 일상으로 눈을 돌렸어요. 곧 얼린 마늘이 눈에 들어왔죠. 주부들은 아실 테지만, 우리 음식에 마늘이 안 들어가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다진 마늘을 잔뜩 얼려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조금씩 잘라 쓰는데, 그게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거든요. 잘 떨어지지도 않고, 냄새도 많이 나고. 그래서 다진 마늘을 한 번 쓸 분량씩 나눠서 얼릴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보자 생각을 했어요. 그게 바로 ‘알알이쏙’이랍니다”

알알이쏙은 얼음 틀과 비슷한 모양의 용기로, 말랑말랑한 폴리에틸렌 소재로 만들어져 얼어붙은 내용물을 손쉽게 떼어낼 수 있다. 한 칸당 넣을 수 있는 용량을 티스푼 기준으로 구분해 계량하기도 편하다.

이 대표는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다니던 회사에 과감히 사표를 썼고, 퇴직금을 창업자금 삼아 제이엠그린을 설립했다. 다행히 주부들의 반응은 좋았다. 더 큰 사이즈가 있으면 좋겠다거나 이유식 용기로 쓸 수 있게 개량해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주부들이 많이 활동하는 동호회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찾아다니며 저희 제품을 무료로 나눠줬어요. 이분들이 써보고 후기를 남기면서 서서히 입소문이 났지요.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하는 제품 홍보마케팅 지원사업인 HIT500도 큰 도움이 됐어요. 중진공에서 온라인 홍보페이지도 만들어주고, 소비자 체험단도 모집해줘 저희 제품 인지도가 확 올라 갔거든요. 홈플러스, 롯데마트, 하나로마트 등 대형마트에 입점하는 데도 덕을 많이 봤죠”

‘짝퉁’ 때문에 생긴 위기, 제품 개발로 돌파구 마련

더블 세이브 도마<사진=제이엠그린>

알알이쏙의 대박 행진으로 제이엠그린의 매출은 2011년 약 4000만원에서 2013년 약 7억원으로 1600% 늘어났다. 그러나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시장에 이른바 ‘짝퉁’ 제품이 등장한 것이다.

“제품 인기가 오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매출이 뚝 떨어지더라고요. 무슨 일인지 알아봤더니 저희와 똑같은 짝퉁 제품이 시중에 7~8개 정도 나와 있었어요. 그중에는 저희가 납품하던 인터넷 상점도 있었어요. 알알이쏙이 원래 4000~5000원이면 살 수 있는데, 일부러 9000~1만원까지 가격을 올려놓고는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가짜 상품을 사도록 유도하고 있더군요”

이 대표는 지식재산보호협회를 통해 보험을 드는 등 뒤늦게 대응에 나섰지만, 모조품을 시장에서 몰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녀는 가장 자신다운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새 아이템 개발에 나선 것이다. 이 대표는 다시 한 번 주부로 돌아가 불편함을 찾았고, 곧 김치 국물이 흐르는 도마에서 힌트를 얻었다.

“도마 위에서 김치를 자르다 보면 국물이 흘러나오잖아요. 이걸 매번 행주로 닦아내야 하는 데 요리하는 입장에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죠. 그래서 도마 밑에 김치 국물을 모아주는 공간을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행주를 빠는 수고를 덜 수 있도록 말이죠. 다른 재료들을 다듬을 땐 이 공간을 접시처럼 이용하면 돼요. 그래서 이름도 ‘더블 세이브 도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