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영 고수, 중기 마켓플레이어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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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글로벌경영 고수, 중기 마켓플레이어 키운다 김종식 전 타타대우 대표…현지화·파트너십 노하우 전수

기사입력2014-03-31 00:11

대한상공회의소는 대기업 출신 기업인의 경영노하우를 중소기업에 전수하는 ‘대한상의 중소기업 경영자문단’에 전직 기업인 14명을 위촉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김창권 전 한국제지 대표이사 사장, 이장희 전 LG전자 폴란드공장 법인장 등 쟁쟁한 기업인들이 자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김종식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의 이름이 눈길을 끌었다. 김 교수는 전 타타대우상용차 대표를 역임한 글로벌 경영의 베테랑이다. 주한인도상공회의소 초대회장, 한국 외국기업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지금은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기술혁신경영과 글로벌경영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중기이코노미 기자와 만난 김 교수는 “21년여간 글로벌 기업에서 CEO 생활을 해왔다. 학생들에게 경영에 대해 가르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한국의 좋은 기업들에게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종식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중기이코노미

중소기업 역시 글로벌 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실제 기업현장에서 글로벌 경영을 접목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수출에 나서거나 생산기반을 해외로 이전하는 정도가 현장에서 떠올리는 글로벌 경영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과거 세계화는 수출만을 생각했는데 지금은 현지 파트너십에서부터, 원자재 수급, 현지 인력관리, R&D가 복합적으로 일어나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단순히 현지 시장공략 또는 원가절감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다면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글로벌 경영”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경영이라는 단어는 대기업의 영역이라는 생각도 든다. 중소·중견기업들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글로벌 경영에 나서기에는 지식이나 경험, 인력과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많은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면서도, 회사의 규모가 작더라도 글로벌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례를 소개했다.

“프랑스 파리에는 ‘프랭크 나나미’라는 캐시미어 의류 브랜드가 있는데 매장이 파리에 2개, 제네바에 1개 등 총 3개 밖에 없습니다. 스토어 3개짜리 브랜드면 한국에서 볼 때도 작은 규모죠. 하지만 디자인은 프랑스에서 하고 양모는 스코틀랜드에서 소싱하고, 염색·가공은 이탈리아에서 하고 있습니다. 3개국의 역량을 엮어서 고급 캐시미어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이처럼 회사가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작은 기업일수록 글로벌 경영을 잘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커민스, 타타대우 등 경험으로 아시아 시장 통달

인도의 대기업 타타그룹 계열사인 타타모터스는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을 인수해 타타대우상용차를 출범시켰다. 김 교수는 2009년부터 타타대우상용차의 대표이사를 맡아 세계시장을 누볐다. 이전에는 미국계 글로벌기업인 커민스의 아시아지역 사업총괄을 맡기도 했다. 이런 경험 덕분에 김 교수는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한국 기업의 인도진출이 부진한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인도 시장은 힘든 점이 많다”고 말하며 인도시장의 특징을 설명했다.

“인도는 지방분권이다보니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인허가에서부터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포스코가 수년째 투자의향을 밝혔지만 지방에서 반대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정치도 컨센서스를 이루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이런 것에 대한 인식없이 확실한 마켓을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도로 가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고 봅니다”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매력있는 시장임에는 분명하지만, 포커스를 구체적으로 갖고 나가는 것이 인도시장의 공략법이라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김 교수는 또 자신이 경험한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노하우에서 한국 기업들이 배워야 할 점도 소개했다.

“글로벌 기업은 시장 진출을 할 때 마켓을 보고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기업들은 중간 거점 비슷하게, 마켓에 직접 들어가는 것보다는 반제품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죠. 일본업체들도 그랬는데, 현지에서 생산해 원가를 절감하는 어프로치를 해왔습니다. 이것의 한계는 금방 드러납니다. 마켓 플레이어의 자리를 잡기가 힘들게 됩니다”

또 한가지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영을 하는데 있어 현지화에 과감하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저는 한국사람이지만 규모있는 외국 회사의 대표를 했는데, 한국 회사에서는 이런 일이 쉽지 않습니다. 대개 한국에서 사람을 파견하거나 현지 사람을 두더라도 뒤에서 관여하는 그림자 매니지먼트를 하죠. 그러다보면 우수한 현지인들이 안 옵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사람을 채용할 때 까다로울지 몰라도 채용했으면 맡깁니다. 그리고 시스템이나 프로세스를 갖추죠”

사람을 현지화하지 못한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의 현지화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현지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제품을 갖고 있느냐”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월마트 같은 세계적인 기업도 이마트 등에 밀려 한국에서 발을 못 붙였는데, 이마트는 거꾸로 중국에 가서 또 힘든 경험을 하고 있다”며 현지화의 이치만 연구해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많은 기업들이 미국이나 유럽 시장보다 동남아나 남미에 눈을 먼저 돌리고 있다. 한국의 기술이나 서비스가 통할만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에 대해 김 교수는 주의를 당부했다. “그 시장이라고 부족한 물건, 모자라는 서비스를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경제력이 부족한 국가라 해서 완성도가 낮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갖고 나가면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동남아의 경우 한국보다 경제력은 낮지만 일본 제품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일본 제품의 품질과 편리성에 익숙한 지역이니, 일본 수준의 기술과 혁신능력을 지향해야 한다. 저가정책에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으로 시장진출을 시도하면 성공하기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경영이란 직원과 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동을 시키기 위해서 첫 번째는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장 어려운 바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내가 잘 모른다는 자세”가 가장 필요하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내가 마켓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 눈높이 맞출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요즘 까다롭지 않은 고객이 있나요? 투명한 사회가 되다보니 지식이 일부에 독점되는 시대는 지났잖아요. 비교해보면 다 나오잖아요. 이런 세상에서 ‘나는 마켓을 안다’고 생각하고 덤벼들면 실패해요”

인도의 타타모터스와 같은 큰 기업도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실패를 겪은 바 있다. 타타모터스는 저소득층을 위한 저가자동차인 ‘타타나노’를 출시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가난한 사람들은 싸게 만들면 살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그 사람들도 싼 것은 좋지만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싫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시장 분석이 부족했던 점도 원인이다. “오토바이를 타던 사람들이 타타나노를 사야 하는데, 시원한 오토바이를 타던 사람들이 에어컨이 없는 타타나노를 사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획 단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저소득층들의 삶에 대해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싸게 만들면 살 것이라고 눈높이를 단순하게 본 것이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은 이유라고 한다.

김종식 교수가 지난 2월 출간한 저서 ‘셀프파워’ ©중기이코노미

R&D, 중기 혼자서 다 할 수는 없어

김 교수는 서울대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퍼듀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커민스에 기술연구원으로 입사한 뒤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됐다. 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갖췄다는 점은 김 교수가 CEO로서 성공하는데 큰 힘이 된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돈과 시간이 필요한 R&D를 통해 중소기업이 성장하는 것이 과거와 달리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혁신이라는 것은 기본이 갖춰진 데서 나오는 것이지 대박이 터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도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R&D를 통해 성장하기 위해서는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는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한 기업이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어진 상황이다.

“다른 업체와 보완이 될 만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술력이 있는 다른 기업과 어떤 형태로든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 해야 할 일입니다”

국내 기업들은 협업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고 한다. 갈등을 두려워해서 합작이나 협업을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면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김 교수는 “70년대의 접근방법으로 R&D를 접근하면 꽃피기 힘들다”며 “파트너십을 잘 활용해서 자신이 갖지 못한 역량을 협업파트너를 통해 상호보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것이 글로벌 기업들이 성장한 방식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한국의 중소 제조업체들이 독일의 히든챔피언처럼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자동차도, 삼성전자도 처음부터 잘나가지 않았다”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차근차근 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스피드 경영은 맞아요. 의사결정이 빠른 중소기업의 장점을 잘 활용하면 성장할 수 있어요. 단 ‘빠른 것’과 ‘급한 것’은 달라요. 그 차이를 잘 이해하면, 빠른 기업은 자리를 잡을 것이고 급한 기업은 자리잡기 쉽지 않겠죠. 옳으면서 빨리 결정을 내리려면 포커스가 있을 때 가능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