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보트도 날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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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기술은 보트도 날게 만든다” 고무보트 세계 ‘빅5’ (주)우성아이비 이희재 대표

기사입력2014-05-10 12:05

글 김창훈 기자/사진 박영미 기자 (ckim2014@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주)우성아이비 이희재 대표 ©중기이코노미

고무보트. 질기고 가벼우면, 그리고 값싸면 그만 아닌가? 여기에 과학이나 노하우, 진입장벽까지 들먹이는 것은 좀 ‘오버’가 아닐까 싶었다.

공기주입식보트(inflatable boat). 결국 같은 말이지만, 이번엔 좀 달리 들리기도 한다. 이 분야 세계 1위는 프랑스 조디악(Zodiac). 강력한 경쟁자 영국 에이번(Avon)을 인수하고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에 합병됐다. 합종연횡이 만만치 않다. 여기, 고무보트 시장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이 분야 세계 ‘빅5’에 우리나라 브랜드 ‘제벡(ZEBEC, 국가에 따라 ZPRO)’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유쾌한 놀라움이었다. 그런데도 세계시장 점유율은 고작 5%도 되지 않는다니…. DAC나 YKK처럼, 우리가 익히 아는 ‘히든 챔피언’의 공식에서도 떨어져 있다. 제벡을 만드는 (주)우성아이비가 궁금했다.

“즐겁게 할 것, 잘 할 수 있는 것”

1995년 파리 보트쇼. 조디악, 에이번을 위시한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각축을 벌이는 메이저 전시회다. 부스 수십개로 위용을 자랑하는 서양 업체들 사이에 달랑 부스 하나를 빌려 한국 브랜드 제벡이 자리잡았다. 도회지 멋쟁이의 ‘화려한 외출’ 옆에 선 촌색시의 형색이 이랬을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극동의 중소기업 보트에 누가 생명을 맡기겠느냐는 비아냥을 들었습니다. 전시장은 인산인해였는데 우리 부스만 섬처럼 조용했습니다”

이희재 대표(55)가 우성아이비를 차린 것은 1992년이다. 지금은 없어진 국제상사에서 해외 주재원으로 일하다가 고무보트에 ‘꽂혔다’. 왜 하필?

“해외를 자주 다니다보니 창업 아이템은 많이 보였습니다. 그 중에 장기적으로 ‘뜰’ 것,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그리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보트 만들어 파는 일이야 정주영, 이건희 회장보다 낫겠다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영화 변호인 속 ‘돈 잘버는 변호사’ 송우석이 손바닥만한 딩기 요트로 광안리 앞바다를 가르며 사람들 손가락질받던 때가 1980년대 초반이었다. 이 대표의 표현대로라면 수상레저는 “해운대 파라솔 빌려, 김밥 나눠먹고, 검은 튜브 얻어타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10년만에 그는 보트 만드는 회사를 차려냈다.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 맨살 보이기 싫어한다는 중동에서도 이미 1980년대에 수상레저산업이 자리잡았습니다. 우리도 ‘곧’이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보트 사업을 벌이자마자 순풍에 돛달고 순항했다면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기술이 없었다. 선발업체들의 제품을 사다가 ‘깁고 뜯고 자르고’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가능한 부품은 모조리 국산화했다. 우성아이비 이희재 대표는 처음부터 미련하다 싶을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고무보트는 기계화공정보다는 수작업에 의존하는 바가 커서 손재주 좋은 한국인에 제격이다. 기계로 대량물량을 찍어내기 어려워 대기업과의 경쟁에도 완충지대를 얻을 수 있다. 산업화 과정의 국가간 협약에 따라 우리나라가 나일론 등 고무보트 소재에 특화된 점도 장점이었다. 무엇보다 이 사람 이희재 대표, “사람들 놀게 만들면서, 자신도 놀이하듯” 즐겁게 돈 벌 수 있겠다 싶었단다.

보트 사업을 벌이자마자 순풍에 돛달고 순항했다면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기술이 없었다. 선발업체들의 제품을 사다가 ‘깁고 뜯고 자르고’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가능한 부품은 모조리 국산화했다. 처음부터 미련하다 싶을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마침내 샘플을 만들었다. 그리고 씩씩하게 ‘출정’한 곳이 앞서 말한 파리였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뭐, 예상 못한 것도 아니고,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고 이 대표는 회상한다.

“경량화·고급화, 마니아 입맛을 맞춰라”

또다시 정공법이었다. 초창기 제벡의 가격은 조디악의 1/3 수준. 품질은 대등했다. ‘생명’을 담보하는 장비라는 점은 진입장벽이자 공략포인트다. 규격과 사양에 품질을 맞추고 바이어의 신뢰를 얻으면 될 일이었다.

“옛날 전화번호부 2배나 되는 두꺼운 규정집을 경전처럼 독파해 품질을 맞췄습니다. 안전성과 안정성을 보이기 위해 바이어를 한강까지 데리고 가 구동시범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단 한 대를 팔아도 최선의 사후관리를 보장했습니다”

이 지점이다. 먼 나라에 달랑 보트 한 대 팔았는데 하자가 났다면 교환이나 환불이 정답이다. 그런데 이 회사 수리기사가 스페인까지 날아가 그 한 대를 고치고 왔다. 미국 그랜드캐년에서는 몇날며칠 아예 자리를 깔고 수리를 해주기도 했다. 제벡뿐 아니라 다른 회사 제품도 손봐줬다. 바이어는 물론 마니아들의 마음을 샀다. 이렇게 15년, 바닥을 훑듯 저변을 다졌다.

“가벼울 것, 조향이 정확할 것, 속도가 빠를 것, 무게중심이 위로 갈 것, 전복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것. 좋은 고무보트가 가져야 할 특성입니다. 무엇보다 안전성과 안정성이 중요합니다. 약간의 오차가 생명을 맞바꿀 수도 있습니다. 고무보트뿐 아니라 구명조끼만해도 품질보증서 없이는 단 한 대도 미국과 유럽에 수출할 수 없습니다”

서구 ‘주류사회’ 출신의 기업들이 고무보트산업을 쥐락펴락 하는 이유다. 그나마 이 지형을 바꿔놓은 것이 제벡이다.

단위 중에 psi(pound per square inch)는 대략 1㎠당 70g의 압력을 의미한다. 제벡 제품은 15~17psi까지 공기를 주입할 수 있다. 1㎠당 1kg이 넘는, 1㎡로 환산하면 10톤이 넘는 압력을 견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트 외면은 합판이나 플라스틱 저리가라 딱딱하고 견고해진다. “얼마나 높은 psi까지?”는 업체 기술력의 지표이기도 하다. 재질, 설계, 마름질, 박음질 등을 오차없이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고무보트의 본령이라 할 경량화와 이동 편이성도 중요한 요소다. 접어서 백팩처럼 메고는 물가까지 가서 공기를 넣어 사용하기 때문이다. 제벡 제품의 경우, 서프(SUP)는 10kg, 일반적 카약은 20kg 미만이다. 이는 나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마니아들은 1kg 차이로 브랜드를 바꿉니다. 업체 간에 경량화 경쟁이 일 수밖에 없고, 입맛에 맞추기 위해 연구개발에도 손을 놓지 못합니다. 물론 마니아들은 자신만의 장비를 고집할 뿐 아니라, 고가제품으로 기꺼이 갈아탈 준비가 돼 있는 매력적인 고객입니다”

제벡이 5%도 안되는 점유율로 세계적 브랜드가 된 것은 이러한 마니아, 말하자면 하이엔드급 시장에서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고, 그 기저에 품질력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우성아이비가 보유한 인증 150건으로 설명된다. 조디악은 20건이다. 2007년 평창에서 열린 세계 래프팅(rafting) 선수권대회에서 제벡 제품이 공식제품으로 쓰인 것은 홈 어드밴티지가 아니었다.

우성아이비의 또 다른 강점은 새처럼 자유로운 상상력이다. 이 대표는 “초심대로…. 저뿐 아니라 우리 직원 모두가 즐기면서 일하려고 한다. 첫 보트를 실어보내던 소중함과 설렘으로 싱싱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싶다”고 했다. ©중기이코노미

“상상력은 보트도 날아다니게 한다”

고무보트 시장규모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는 없다. 경쟁사의 자료를 역산하면 대략 1조6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올해 우성아이비의 매출목표가 800억원, ‘아직’ 점유율 5%가 채 안된다. 그래도 이 회사는 자신만만이다.

이 회사의 또 다른 강점은 새처럼 자유로운 상상력이다. 베르누이 원리가 저절로 떠오르는 플라이피시(Flyfish), 영하 40도에서 견디는 혹한용 보트,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재난구명용 이스케이프팝(Escape Pop) 등 새로운 아이디어 제품으로 활로를 뚫어왔다. 서프보드도 그 중 하나다. 캘리포니아나 호주의 서핑(surfing)과 다른 SUP(stand-up paddle)는 배 위에 서서 패들로 노를 젓는 스포츠다. 이를 10kg 초경량화해 ‘대박’을 쳤다. 국내에도 남해안을 중심으로 제벡 서프보드에 우호적인 내용을 올리는 블로거들이 많다.

수상용 제품뿐이 아니다. 소 침대(Cow mattress)와 임산부용 침대, 의료용 침대 등으로 ‘외도’를 감행하고 있다. 극한의 압력을 견디는 원단, 보트 제작기술, 공기주입 기술 등 ‘보트 잘 만드는 기술’에 발칙한 상상력을 덧입혔다. 건강. 섣불리 덤빌 분야는 아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모든 새로운 것에 약간의 비논리·비현실성은 필수적입니다. 굳이 기존의 시각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장에서는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면 됩니다. 그걸 산업화·제품화하고 리스크를 판단하는 것은 경영진의 몫입니다”

이 회사에는 ‘사장실’이 없다. 이 대표의 방은 ‘상황실(War Room)'이다. 그렇다고 ’위기‘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냥 전장의 상황실처럼 살아있는 방, 쓸모 있는 방을 만들고 싶단다. “직원들끼리 회의도 하고 라면도 가져다 먹고, 그렇게 편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평균 성장률 48%를 해왔다는 우성아이비는 이제 더 큰 도약을 준비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해 시장을 넓힌다는 것이다. 기업공개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처럼’ 을 외친다.

“초심대로…. 저뿐 아니라 우리 직원 모두가 즐기면서 일하려고 합니다. 첫 보트를 실어보내던 소중함과 설렘으로 싱싱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매출채권의 60%를 부도맞아 쓰러지기 일보직전에 선뜻 5만달러라는 큰돈을 내준 거래처가 2곳이나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과 함께 세상을 재미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