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무한대”의 힘, 과기인 협동조합

프린트

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1+1=무한대”의 힘, 과기인 협동조합 과기인 협동조합 지원센터 이혜숙 소장이 밝히는 창조경제론

기사입력2014-06-23 01:00

김창훈 기자 (ckim2014@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2013년 2월, 5명의 IT 개발자들이 협동조합을 꾸렸다. 여러 단계의 재하청이 거듭되는 이 바닥 가치사슬 중 최하단에 속하던 자영업자들이었다. 5명은 한 데 모여 규모를 확보하고 레퍼런스와 신인도를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현재는 원청사와 직접 계약을 맺는 수준까지 지위가 격상됐다. 한국IT개발자협동조합 이야기다. 설립 1년여만인 지난 3월 현재 이곳의 조합원은 37명. 대규모 조합원 추가계획도 들려온다. 물론 새 조합원 받아 세만 키워서는 곤란하다. 신뢰가 없다면 조합도 없기 때문이다. 인큐베이팅과 트레이닝을 통해 수준을 맞춰야 한다. 손을 내밀고, 함께 길을 걸어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과정을 반복하며 ‘우리’의 외연을 넓혀가는 셈이다.

과학기술인협동조합지원센터의 이혜숙 소장(왼쪽)과 한종우 전문위원. ‘함께 할 때 더 행복하다’는 지원센터의 슬로건이다. ©중기이코노미

불가능도 가능하게 하는 융합의 힘

“이 경우 원청사는 가격과 의사소통 측면에서 만족하고, 협동조합은 보다 나은 조건에 일감을 따내는 윈윈 게임이 됩니다. 과학기술인들의 협동조합이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 다단계 영업관행을 개선할 대안의 하나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한국과학기술인협동조합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 이혜숙 소장의 평가다. 과학기술인과 협동조합. 얼추 어색하게 들리는 조합이지만,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 협동조합은 문자 그대로 ‘창조경제’의 견인차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 사람의 사소한 발상 하나가 조합원들의 증폭과 변주를 거치며 나비효과처럼 거대한 사업 아이디어로 재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특정기술로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각자의 특정기술이 하나로 모이고 이를 지원하는 과학기술서비스업이 제대로 작동하면 엄청난 과학기술 융합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산의 바리연구협동조합은 융합의 매력을 보여주는 예다. 이 조합은 다금바리·능성어 등이 속한 바리과(科) 고급어류 개발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수산종묘생산·수산물유통·양어사료 등의 전문가와 대학교수·변리사·마케터 등이 뭉쳤다. 서해에서 치어를 만들고 필리핀으로 넘겨 성어로 키워낸다.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도 참여하고, 중국과 필리핀에 수출도 진행중이다. 개인으로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는 이들이지만, 조합의 목표는 수출 1억달러. 1 더하기 1이 2도 3도 아닌 무한대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목도하는 행운을, 우리경제가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혜숙 소장과 한종우 전문위원은 과학기술인협동조합을 크게 4가지로 구분했다. 경력단절 여성 등이 주로 포진한 과학 및 연관분야 교육 협동조합 분야, 고경력·은퇴 과학기술인을 중심으로 한 기술정보 수집·분석 분야, 프리랜서 협동조합, 기술융합형 협동조합이 그것이다. 경남 창원 지역 6개 중소기업이 참여했다는 협동조합은 전형적인 기술융합형이다. 전자회로·구조분석·디자인 등 각자 전문분야를 들고 한 데 뭉쳤다. 조합원 중 한 곳은 1년새 매출이 20배로 뛰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부산에는 슈퍼컴퓨팅 협동조합도 있다. 국가 소유의 슈퍼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연구장비 공동사용은 협동조합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이 지점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고가의 연구장비가 24시간 사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용권한을 개방하면 제공자는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사용자는 자산의 유연한 집행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소유의 개념을 조금만 달리하면 얼마든지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겁니다. 이거야 말로 또 다른 측면에서의 창조경제 아니겠습니까?”

장점 많은 과학기술 아웃소싱,

과기인 협동조합 확산의 전제조건

따뜻한 경제

과학기술인협동조합지원센터는 지난달 27일 설립 1주년을 맞아 포럼을 개최해 좌표를 점검했다.<사진=과학기술인협동조합지원센터>

2012년은 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였습니다. 협동조합이 가진 ‘완충력과 내구성’에 거는 기대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위기가 올 경우 도산이나 해고와 같은 급격한 피해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협동조합의 본질인 수평적 연대와 협력을 통해 위기극복의 동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중의 하나입니다”

같은해 1월 우리나라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돼 12월 시행에 들어갔다. 사실상 협동조합 원년이 된 셈이다. 이 중 우리나라 과학기술인협동조합은 6월 현재 82개다. 지원센터는 지난해 5월27일 문을 열었다. 지난해 7개월 동안만 700명 가까운 사람을 대상으로 교육행사를 열었다. 올해 6월19일까지 상담건수만 100건을 채웠다. 서울 역삼동 과기총회관 11층의 지원센터와 3층의 여성과기인지원센터를 메뚜기처럼 돌며 교육 및 상담공간을 잡아온 분전의 결과다.

“지원센터는 조합 결성과 관련된 교육 및 상담 지원, 홍보 지원, 법률·회계·재무 등 경영 지원, 그리고 협동조합에 대한 일거리 지원 등 4가지의 업무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업무를 관통하는 개념은 ‘물고기 잡는 법’입니다. 예를 들어 홍보를 위한 팸플릿도 지원하지만 그보다는 어떻게-무엇을 알려낼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겁니다. 협동조합이니 당연히 재정적 지원은 하지 않습니다”

일거리 지원 힘쓰고

제도개선 위한 기초자료도 준비

특히 일거리 지원은 협동조합의 자생력을 결정짓는 요소라 공을 많이 들인다. 다행히 미래부와의 호흡이 잘 맞아 가시적 성과가 나고 있다. 출연연구소와 대학을 중심으로 수주 례가 늘고 있다. 물론 이들은 장기적으로 공공이 아닌 민간 부문을 조준하고 있다.

“정부의 3차 과학기술 기본계획에 아웃소싱을 늘리자는 방안이 포함돼 있습니다. 비정기적인 특성이 많은 과학기술 아웃소싱을 수주하는 데는 협동조합이 제격입니다. 현재까지 터닝포인트가 오지는 않았지만, 성공사례 몇 건만 구축하면 금세 효율적 모델로 정착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장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마중물을 부어주는 역할을 우리 지원센터가 하는 것입니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고 개정까지 이뤄졌지만 과학기술인의 특성과 미스매치 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은 이들에게 오래된 숙제와 같다. “예를 들어 통상적인 협동조합의 산출물은 수혜자가 개인이지만, 과기인 협동조합의 그것은 기업, 특히 중소기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다름의 문제는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법적·제도적으로도 반영돼야 합니다” 한 전문위원의 지적이다.

이 소장은 “주식회사 모델에서는 창업부터 청산까지 중간의 장애물 단계를 포함해 경영의 모든 과정에 대해 예측이 가능합니다. 위기를 돌파하고 생존, 재도약하는 사례들도 많습니다. 패자부활전을 위한 제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아직 문제가 생겼을 때 돌파해 나가는 사례를 구축해 놓지 못했습니다. 법에서 모든 가능성을 다룰 수는 없다고 해도, 큰 그림 정도만 그려준다면 훨씬 더 예측가능한 협동조합 경영도 가능해 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인다.

지원센터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연구를 실시해 결과를 정부 부처와 국회 등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말하자면 조합에 대한 각종 지원 및 교육, 일거리 연계에 이어 법적 기반 확충까지 3마리 토끼를 동시에 좇는 것이다. ‘협동조합’이라는 틀과 ‘지식 기반’이라는 특성을 아우른 맞춤형 법과 제도가 나올 때까지 이 과정은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협동조합, ‘만능 키’는 아니지만…

이혜숙 과학기술인협동조합지원센터 소장.

물론 협동조합이라는 모델이 결점이 없는 ‘이상사회’의 제도는 아니다. 엄밀히 말해 주식회사 기반 경제의 대안적 성격도 강하다. 아직 불거지지는 않았지만, 이 모델을 통해 창출되는 수익 및 잠재력이 커질수록 분배시스템과 같은 문제점이 노정될 수도 있다.

“기여도를 계량하는 것이 물론 쉽지 않을 겁니다. 현재 대부분의 조합에서는 개별 프로젝트마다 공동사업비를 공제한 후 기여도에 따라 성과를 나누기로 하는 원칙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 자체로도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라고 한 전문위원은 전한다. 이 소장 역시 “수익이 나기 이전에 조합원 간에 컨센서스를 확보해 분배의 원칙을 정하는 것이 문제 소지를 원천봉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결국 조합마다 구성원이나 업무의 특성이 달라 각각의 기여도 산출방식을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지원센터가 섣불리 방안을 내놓을 수도 없다. “동의에 의한 사전 확정이라는 큰 틀에서 개별 조합들이 문제를 풀어 나가되, 안정성과 신뢰도를 담보할 정도로 사례들이 쌓이면 가이드라인, 혹은 유사한 조언을 줄 수 있는 도구를 제시할 수는 있겠지요. 물론 아직 걸음마 단계여서 이를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소장은 이렇게 선을 긋는다.

모럴 해저드 혹은 프리 라이더가 나타날 가능성도 필연적으로 열려 있다. 배당금의 50% 이상을 출자금과 무관하게 기여도에 기반해 나누도록 하는 협동조합의 원칙이 이 문제를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들은 전한다. “주식회사와 달리 기여도 기반의 분배가 많다는 점은 오히려 조합의 공정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한 전문위원의 설명이다.

협동조합에 출자한 경우 출자금 회수와 관련해 “출구가 없다”는 우려도 있다. 물론 오해다. “주식시장처럼 즉시 사고파는 동시성은 없지만, 지분을 반납하면 회계연도 후 평가에 따라 지분만큼 돌려받는다”고 이 소장은 설명한다. 반납지분에 대한 결산 후 지급 문제는 협동조합의 대전제 중의 하나인 ‘상호 신뢰’를 위해 건드리기 어려운 원칙 중의 하나다.

‘착한 펀드’가 들어올 여지가 없다는 점 역시 이들에게 숙제 중의 하나다. 금융사업을 할 수 없도록 한 규정으로 재무적 투자의 문을 좁혔기 때문이다. “무조건 외국의 사례를 따를 수는 없겠지만, 거대한 융합체 안에 금융사업까지 하고 있는 외국의 성공적 사례를 연구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한 전문위원의 제안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부작용 여과와 한국적 현실에 대한 고민이 선결과제다.

구성원이 서로를 지켜주는 사회안전망

익히 알려진대로 협동조합은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수행한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나 공공의 기능이 건드릴 수 없는 일종의 ‘회색지대’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회적경제의 영역인데요, 협동조합이 이 기능을 상당 부분 소화해 줄 수 있습니다” 이 소장의 설명이다.

한 전문위원도 “예를 들어 은퇴한 과학기술자들이나,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협동조합 아래로 모이는 순간 이 분들은 사회적으로 배제되지 않습니다. 조합의 깃발 아래에서는 외롭고 엄두 안 나는 혼자만의 길을 걸어가지 않아도 됩니다”라며 거든다. 지원센터의 슬로건대로 “함께 할 때 더 행복한” 이유다.

이 소장은 숫제 “패가망신의 우려는 없다”는 직선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흔히 ‘아줌마’라고 부르는 기혼여성 5분이 1만원씩 추렴해 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수학·과학 놀이와 교육을 겸하는 사업을 하자는 것이었는데요. 이분들이 이제는 정부 과제도 따내고 유사한 분들을 교육시켜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점차 틀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창대한’ 미래를 만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과기인 협동조합의 매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설립금액 하한이 없어 출자금 부담에서 자유롭고, ‘돈 안될 것으로 보이는’ 일에도 당당하게 뛰어들 수 있다. 어린이 교육이라는 공익적 목적도 충족하고, ‘예전의 우리들’ 같은 신입회원을 받아 외연을 넓힌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사회적 배제에서 ‘배제’시킨다.

앞서 예로 든 경력단절 여성증가는 물론 청년실업과 은퇴후 인생2막의 기간이 길어지는 사회양상의 변화도 협동조합에는 오리혀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이미 고경력 혹은 은퇴 과기인들을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은 과기인 협동조합의 주요 유형 중의 하나가 됐다. 한 전문위원은 채용시장에서 ‘졸업예정자’가 ‘졸업자’에 비해 우대받는 상황에서, 학내 협동조합이 훌륭한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학교의 창업지원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큰 리스크 없이 ‘주인의식’을 갖고 실험적인 것을 포함한 다양한 비즈니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 일었던 닷컴 열풍의 도덕성 관련 후폭풍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 소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협동조합 신설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대두 가능한 문제점들에 선제적으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조합원과 경제 전체의 충격을 줄여보겠다는 것. 조합과 조합원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은 철저하게 다른 모델입니다. 옷 바꿔 입듯 조직 이름만 바꾼다고 생각해서는 결단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권한과 책임의 양립은 협동조합의 근간이기도 합니다. 나의 조합, 우리의 조합, 함께 길을 걷는 동반자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이 조건만 충족한다면 지원센터는 과기인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