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민간외교 댄스스포츠의 공통점?

프린트

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비즈니스 민간외교 댄스스포츠의 공통점? “파트너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 재신실업 황철수 대표

기사입력2014-06-30 11:07

김창훈 기자 (ckim2014@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비즈니스는 상대방 주머니에서 빼낸 부로 내 배를 불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40년 무역을 하면서 배운 철칙이자, 특히 젊은 경영자 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세상에 안 그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나와 눈을 맞대고 있는 파트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 나의 행복도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황철수 대표. 무역업체 재신실업 대표지만, 국내 대표적인 외교 사교모임 ‘가온’을 이끄는 주역이자 ‘준외교관’ 신분인 도미니카연방 명예영사로도 유명하다. 그가 직접 설계해 지었다는 강남구 역삼동 ‘찰스 770빌딩’의 지하 2층 사무실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황철수 대표 ©중기이코노미

은퇴 후에도 서로를 챙기는 ‘파트너십’

먼저 그의 영어 이름을 딴 건물 찰스 770빌딩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강남 금싸라기 땅에 3.6미터의 층고로 시원시원하게 올라갔다. 보통 건물의 층고가 2.5미터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익을 1/3 이상 포기한 셈이다. “2004년 내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지었다. 두고두고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 주인뿐 아니라 입주자에게도 사랑받는 공간을 남기고 싶었다”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옥상에 오르면 안주인의 손길이 그대로 느껴지는 정원과 그럴싸한 테라스를 만나게 된다. 넉넉함과 편안함 사이. 건물은 역시 주인을 닮는다. 하나 더. 그의 사무실은 지하 2층이다. 안전과 공조 등 빌딩 전체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그의 ‘작품’ 찰스 770 빌딩. ©중기이코노미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나와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댐 세우고 고속도로 짓던 그는 1973년 홀연히 무역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 IT산업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섬유산업이 유일무이한 수출산업으로 성장하던 시절이었다. 미국 수입쿼터에 영업의 모든 것이 달려있던 시절, 바이어를 만나 관계를 유지하고 물건을 파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 합작사 차리자는 유혹도 많았지만, 1980년 자신의 업체 재신실업을 차렸다.

“신뢰 우선의 경영철학을 세우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정보력과 시장장악력, 그리고 자금력으로 무장한 선진국 기업과 거래하면서 ‘잔머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터득했습니다. 소싱과 프로덕션같은 국내 일에는 전문가가 됐지만, 소탐대실하지는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거래 파트너가 꾸준하게 ‘재미’를 봐야 제 비즈니스도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역회사 담당자 시절부터 쌓아온 신뢰와 인간관계는 그가 꼽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1980년대 후반 미국시장이 위축돼 경영에 그림자가 드리웠을 때, 예의 ‘파트너십’ 이론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미국 바이어에게 신제품을 재고품 가격에 공급했습니다. 우리 쪽에서는 마진은 박하지만 미국 거래선을 유지할 수 있었고, 상대방에서는 싼 값에 새 제품을 받아 숨통이 트였습니다”

이렇게 위기를 함께 넘기면 신뢰는 두터워질 수밖에 없다. 물론 재신실업도 엄청난 이윤은 아니더라도 내실 있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내용 있는 삶도 살 수 있었고, 많은 거래 파트너들과 수십년지기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회고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오아시스“

‘파트너십’ 이론은 댄스스포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는 댄스스포츠를 “원자들처럼 떨어져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와 호흡을 통해 함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왜 댄스스포츠, ‘춤’이었을까?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바이어 접대를 하는데, 좀 더 세련되고 건강한 걸 해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댄스스포츠는 세계 각국 10여개의 춤을 스포츠로 ‘규격화-리모델링’한 것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워가는 재미도 있었고, 다른 종류의 접대로는 기대하기 힘든 상호이해의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매일 ‘접대과부’로 남아야 했던 부인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피부를 맞대고, 때로는 마주보며 때로는 한 곳을 함께 바라볼 수 있었다. 내친 김에 부부동호회를 만들었다. 춤을 매개체로 하는 순수문화 모임 ‘가온’이 2002년 탄생한 계기다.

“춤이 좋아 시작한 모임이 입소문을 타면서 주한 외국대사들을 초청하게 됐습니다. 단순히 춤만 추는 것이 아니라 ‘문화 파티’를 지향하다보니 시나브로 규모도 커지고 민간외교가에 ‘유명인사’가 돼버렸습니다”

그는 도미니카연방의 주한 명예영사다. ©중기이코노미

사실 주한 외교관의 입장에서도 가온 모임은 자국 문화를 알리는 훌륭한 매개체다. 비공식을 유지하되, ‘산업’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코호스트(co-host) 행사로 중국 변검, 남아공 악어(크로커다일) 요리 같은 특색 있는 문화들이 가온 모임을 빛냈다. “쓰촨 대참사 직후에도 묵념을 올린 후 변검을 알렸고, 남아공 요리를 선보일 때는 우리나라 5성급 호텔 주방장이 현지로 날아가 트레이닝을 받고, 메인 메뉴용 악어고기를 현지에서 비행기로 공수했다”고 전한다. 가온 모임에 대한 외교가의 기대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외교사절뿐 아니라 국내 인사들 사이에서도 가온의 평이 좋다. 최고위 공직자 출신인 한 회원은 “가온은 내 인생의 오아시스”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대부분 사회에서 정점을 경험한 사람들이지만 가온 모임에서는 목소리를 낮춘다. 이해와 배려. 모임의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황 대표도 마찬가지다. “모임에서는 절대 회사 명함을 드리지 않습니다. 비즈니스 마인드가 틈입하는 순간, 가온의 순수성도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동안 장안에서 ‘민간 외교사절’로 이름을 올렸지만, 그는 이제 공식적인 ‘준외교관’이다. 국무회의를 거치고 아그레망까지 받은 도미니카연방의 주한 명예영사다. 모임의 이름 가온이 순우리말로 ‘가운데’를 의미하는 것처럼 그도 가온도, 서울의 ‘문화외교 허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황 대표는 문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세대다. “나라의 경제적 도약에 한 삽 거든 것 같아 뿌듯함도 느낀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후배 경영인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긴 호흡’을 먼저 내건다. 눈 앞의 손익에 일희일비 말아달라는 것이다.

“비즈니스건 ‘장사’건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상대방을 먼저 만족시키고 그 다음에 내 것을 찾아도 늦지 않습니다. 무역업에 종사하는 분들께는 존중과 이해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상대방의 비즈니스는 물론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존중에 기반해 출발했으면 합니다. 한 마디로 ‘춤추듯’ 경영하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호흡을 맞추되, 급박한 리듬이나 예기치 않은 미끄러짐도 함께 건너는, 그런 파트너십이면 안 될 일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