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학원장, 협동조합의 매력에 빠지다

프린트

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대치동 학원장, 협동조합의 매력에 빠지다 ‘돌봄과 교육’ 실천 ‘아름다운 수학교실’ 박진갑 대표

기사입력2014-09-03 00:0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아름다운 수학교실 협동조합’ 박진갑 대표 ©중기이코노미

길을 걷다 보면 김포공항으로 착륙하는 비행기가 눈앞에 보이는 곳, 주변에 아파트 등 주거지역이 많지만 학원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 ‘아름다운 수학교실 협동조합’이 위치한 서울 양천구 신월동 일대의 겉모습을 한눈에 훑어보면 알 수 있는 사실들이다.

조합원들이 운영하는 ‘아름다운 수학교실’ 학원 자체의 겉모습은 여느 학원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학원 내부에 들어서면 다양한 수학교구들이 먼저 눈에 띈다.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학교육을 하기 위해 다면체와 같은 교구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스펙을 갖춘 강사들이 동업형태로 운영하는 여느 학원과 달리, 이곳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중등수학 지도사 과정을 수료한 뒤 강사로 나섰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강사이면서 지역주민인 이들이 조합을 함께 꾸려나간다. 조합은 지난해 9월 설립됐고, 학원은 그해 12월 문을 열었다.

조합의 박진갑 대표는 강남의 대표적 학원가인 대치동에서 10년 넘게 학원을 운영해 온, 소위 잘나가는 학원 원장이었다. 박 대표가 신월동에 자리잡게 된 이유는 이곳이 바로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대치동서 잘나가는 학원장, 신월동에서 교육조합을 고민하다

박 대표는 처음부터 교직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온 박 대표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SDS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다. 그러나 스스로 일을 만드는 편이었고 윗사람 눈치를 보지않던 박 대표는 “(한국 조직사회에서는) 차장까지는 허용되는데, 부장 이상은 그런 캐릭터가 허용 안되더라”며 웃었다.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30대 후반인 2000년대 초반부터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게 됐다. 개인적인 관심으로 여러 가지 아이템도 시도해보면서 대치동에서 수학교육에 발을 들이게 됐다.

대치동에서 학원을 운영하던 박 대표는 2010년 10월 서부여성발전센터의 요청으로 경력단절 여성들의 직업훈련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하게 됐다. 중등수학 지도사과정을 오픈하면서 박 대표에게 강의 요청이 들어온 것. 주로 학생들을 가르쳐온 박 대표는 대상이 성인들이라는 점에 개인적인 관심이 생겨 이 과정의 강의를 맡게 됐다. 처음에는 “오전에 학원강의 일정이 없던 터라 봉사활동을 한다는 기분으로 잠깐 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부여성발전센터 인근 지역을 보면서 박 대표는 교육환경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양천구하면 교육특구라고 하는데, 그곳에서도 목동 신시가지 일대가 발달해 있습니다. 그러나 양천구는 크게 보면 목동, 신정동, 신월동이 있는데 다른 지역은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교육환경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교육관련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가르치는 사람들이 수학에 대한 이해나 준비가 부족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기계적인 문제풀이나 잘못된 수학을 학생들에게 교육하기도 한다는 의미다. 박 대표는 “가르치는 분들이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오류나 잘못된 방법들이 전달되면서 수학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거나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력이 좋은 선생님들도 많지만, 아이들의 성향 등을 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선생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박 대표는 강조했다. 특히 “엄마들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강의를 들으러 온 여성들을 통해 자녀들 교육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듣게 됐다. 경력단절 여성들은 20대 후반도 있었지만 주로 30~40대 엄마들이었고, 지역 주민이면서 학부모이기도 한 이들을 통해 지역 교육환경에 대한 박 대표의 관심도 커져갔다.

“그러던 중 지난해 봄 협동조합에 대해 우연히 얘기를 듣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도 학원을 하고 있지만 학원에 대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인식들도 많잖아요. 저도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 학교든 학원이든 잘못된 부분들이 많다고 느끼고, 개인적으로는 다르게 하려고 많이 노력했었거든요. 그러면서 개인적인 노력과 함께 형태 자체가 새로운 모델이 없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차였었어요”

협동조합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된 박 대표는 관련 교육을 다양하게 받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학원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역 주민, 즉 마을공동체의 일원이면서 학부모이기도 한 강사들이 “엄마같은 마음으로 돌봐주면서 수학실력도 끌어올려 줄 수 있는” 모델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박 대표의 제자들인 지역 주민인 경력단절 여성들이 참여하면 일자리 창출이라는 의미도 있어 협동조합의 모델에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관심있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지난해 9월 협동조합을 설립했고, 12월 말 협동조합원들이 운영하는 학원을 오픈하게 됐다.

처음 시작은 8명 가량의 강사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상태였다. 이후 강사 외에 학부모들의 가입을 통해 생긴 일반조합원들도 꽤 있다.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수학교실 협동조합’은 “다중 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이 됐다. 생산자 조합 또는 소비자 조합 등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람들이 조합을 구성하는 일반적인 모습과는 다소 다른 특이한 모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해 “한국의 협동조합은 1/4 가량이 다중 이해관계자 조합”이라면서도 “소비자와 생산자, 후원자 등 다중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하는 조합이 협동조합 모델로는 추천할 만하지는 않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운영해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됐다고도 첨언했다.

‘아름다운 수학교실 협동조합’은 여러 가지 수학 체험프로그램을 지역 학생들에게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또 수업 시간에도 과학실험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창의력과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체험식 수학교육을 진행 중이다. ©중기이코노미

이런 노력 덕분에 ‘아름다운 수학교실’ 학원은 입시를 위한 수학이 아니라 지역에 있는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에 대한 이해와 지원이 함께 이뤄지도록 운영되고 있다.

또 지역사회에 대한 참여도 하고 있다. 협동조합 준비에 도움을 준 분들 덕분에 매년 양천공원에서 열리는 ‘가을한마당’ 참여 의뢰를 받은 조합은 축제기간에 수학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좋은 반응을 확인한 조합은 방학기간 동안 여러 가지 수학 체험프로그램을 지역 학생들에게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또 수업 시간에도 과학실험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창의력과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체험식 수학교육을 진행 중이다.

박 대표는 “특히 초등학생들은 교과과정만으로 하는 것 보다는 다양한 체험식 교육을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여러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학교육이라는 것이 “성적 올리는 것도 그 나름 갖고 있는 의미가 있지만, 수학 하나의 과목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공부라는 게 이런 것이다’라는 맛을 느끼게 한다”며 “어려움이나 힘든 일, 실패를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길러주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지난해 6개월여 동안 준비를 하며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협동조합연구소, 과학기술협동조합지원센터 등 다양한 기관에서 많은 교육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개념적인 수준에서, 방향설정이나 당위성, 필요성 등에 대한 좋은 교육이 있었다. 큰 틀을 잡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실질적인 부분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직 협동조합에 대해 무엇을 지원해줘야 하는지도 연구하는 과정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아도 시행착오는 불가피하죠.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 과정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 개발돼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교육과 사교육, 학교와 학원을 떠나서 수학교육 나아가 한국교육 전반에는 아직 다양한 문제점들이 많다. 해결방안에 대한 말의 성찬 속에서 실천은 부족한 상황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돌봄’과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는 지역에서 박 대표와 ‘아름다운 수학교실 협동조합’이 하나의 대안을 창출해낼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