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아닌 ‘좋은 술’이라야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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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우리 술’ 아닌 ‘좋은 술’이라야 경쟁력 김동교 신평양조장 부사장 겸 셰막 대표

기사입력2014-09-16 00:00

김창훈 기자 (ckim2014@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김동교 신평양조장 부사장 겸 셰막 대표 ©중기이코노미

“셰막은 신평양조장의 외연을 외식산업으로 바꾸는 시도가 아니라, 양조장 사업의 새 판을 짜기 위한 안테나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마시고 노는지, 그들이 전통술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술도 술도가도 술파는 집도 변해야 하니까요”

청와대 만찬주로 명주의 자리를 꿰찬 ‘백련막걸리’를 내는 신평양조장 김동교 부사장의 설명이다. 고려대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한국리서치와 삼성전자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던 그가 2010년 홀연히 신평양조장에 합류할 때 아버지 김용세 신평양조장 사장은 그닥 달가와하지 않았다. 잠깐 붐이 일기는 했지만 막걸리는 여전히 사양산업, 장기적으로 비전이 있는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양조장집 손자, 결국 양조장으로 돌아가다

강남역 셰막으로 올라가는 계단. 오른쪽 아래의 이가 김용세 사장이다. ©중기이코노미

“1933년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가업이었습니다. 표는 안냈지만 저는 저대로 아주 오랫동안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백련막걸리뿐 아니라 신평양조장이라는 콘텐츠가 승부를 걸어볼만한 아이템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틀이 갖춰져 있고 업무가 분장돼 있는 대기업 일을 하다가 양조장에 뛰어들었을 때는 ‘정글에 던져진 것’ 같았다. 대부분의 일들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었고, 배웠다는 머리로도 다음 단계를 예측하거나 큰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결국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치면서 배워나갈 수밖에 없었다.

막걸리 만들기부터 배달에 알음알음 영업까지 계란 바위치는 심정으로 부딛쳤지만 녹록한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 막걸리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청와대 만찬주와 장수막걸리, 이들이 같은 출발선에 서서는 승산이 나기 힘들었다.

고심 끝에 낸 첫 작품이 막걸리 바 ‘셰막’이다. 2011년 6월 신사동 가로수길에 1호점을, 다음해 2월에는 강남역에 2호점을 냈다. ‘셰막’은 ‘집’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셰(chez)’에 막걸리의 ‘막’을 조합한 말이다. 막걸리를 마시는 집, 혹은 집에서 마시듯 즐기는 막걸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백련막걸리와 막걸리 칵테일 등이 인기를 끌면서 젊은 층, 특히 여성 고객들이 크게 늘었다. “운이 좋았는지 초창기 화제가 됐던 시절보다 1년이 지난 후에 손님이 더 늘어난” 덕택에 어렵지 않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셰막은 외관부터 ‘막걸리집’의 이미지를 벗어난다. 무심한 듯 벽돌로 마무리한 내외관, 깔끔하되 넘치지 않는 인테리어, 국적을 넘나드는 메뉴 구성까지… 술에 방점이 가는 ‘바’보다는 내공 가득한 메뉴 몇 개는 숨겨놓았을 것 같은 ‘비스트로’나 ‘펍’에 가깝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퓨전 떡볶이, 닭볶음, 순대볶음, 스테이크, 숯불구이 등 ‘배부른’ 것들이다. 막걸리에 고기 안주? 이곳에선 어색하지 않다. 어차피 ‘술을 마시기 위해’ 안주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메뉴를 고르는 판이다. 접시나 테이블웨어도 마찬가지다.

막걸리에 브랜드를 입히자

강남역 셰막 내외관. 벽돌과 원목으로 무심한 듯 마무리해 ‘막걸리 집’에 대한 기대를 깼다. ©중기이코노미

셰막은 신평양조장의 브랜드화를 위한 첫 발걸음이었다. 프랑스나 스페인의 와이너리처럼 고급한 문화,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문화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이 양조장의 가야할 곳이라고 본 것이다.

“당진 신평양조장의 ‘찾아가는 양조장’ 프로그램처럼 막걸리에 문화와 스토리를 입히고, 시음 및 제조과정 체험을 묶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상품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제품은 고급스런 이미지를 덤으로 얻게 됩니다. 셰막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곳을 통해 막걸리는 ‘냄새나는 농주’가 아니라 트렌디한 젊은 여성들이 찾는 알코올음료로 포지셔닝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개월 정도의 바이럴 마케팅 이후에는 자생력이 생겼다. 분위기, 술, 음식을 찾아 고객들이 늘기 시작했다. 신평양조장이라는 자생적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매출에 탄력이 붙더니 2곳 점포를 합한 월 방문객이 1만명을 수월하게 넘겼다. 그가 “운이 좋았는지”라며 눙치는 이면에 그만의 계산이 숨어 있었다.

“결국 우리 신평양조장의 고객으로 이끌어야 할 젊은이들에게 ‘우리 것’이니 아끼고 사랑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 그들이 즐기는 것, 그들이 싫어하는 것들을 정확히 관찰해 생산과 마케팅에 적용해야 합니다. 스토리가 됐건, 자부심이 됐건, 호기심이 됐건 그들이 원하는 것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셰막은 마케팅 도구일 뿐…증류주 라인업에 눈독

©중기이코노미

아무리 수익이 나도 셰막은 신평양조장이 가진 여러 ‘마케팅 툴’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3호점을 낼 계획도 프랜차이즈 사업을 펼칠 계획도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고급스러운 브랜드로 자리잡기 위해 프랜차이즈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그는 선을 긋는다.

오히려 이 양조장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증류주다. 스카치를 비롯한 서양식 증류주 기술과 소주 등 일본식 증류주 기술을 벤치마킹해 고급 증류주 라인업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일가를 이룬 발효주 기술과 혼합·가공 기술이 증류주 분야에서도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막걸리를 위시한 전통주가 다시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만, 이것이 끝은 아닙니다. 그동안 거품도 빠지고 젊은이를 겨냥한 신제품도 출시되는 등 자구노력도 강화됐습니다. 산업 전체가 살아날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해도, 착실히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춰가는 기업에게는 충분한 기회가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인가 기회가 현실화될 때 놓치지 않도록 내공을 쌓는 것, 그것이 저희가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