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콘텐츠 “황금알 아닌 거위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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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모바일 콘텐츠 “황금알 아닌 거위를 키운다” 웹소설로 성가높인 (주)북팔 김형석 대표

기사입력2014-12-13 00:00

글 김창훈·사진 이혜원 기자 (ckim2014@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모바일을 포함한 온라인 기반의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유료화 논쟁은 ‘방 안의 코끼리’ 같은 존재다. 지금도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고 앞으로도 쭉 거기에 있을 테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애써 무시하고 투명망토라도 걸친 양 못 본 척 하기 일쑤다. 이는 내로라하는 국내외 언론사들도 속 시원히 해내지 못한 일이다. 뉴욕타임즈와 파이낸셜타임즈마저 힘겹게 유료화의 걸음마를 떼고 있다. 성공가도를 달린다는 스마트폰 기반의 게임도 마찬가지다. 유료화라는 정공법보다는 아이템 판매와 같은 우회법으로 수익모델을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북팔 김형석 대표 ©중기이코노미

온라인 세상에서 디지털 콘텐츠 자체를 팔아 돈을 버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인지, 웹소설로 성가를 높이고 있는 (주)북팔 김형석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결론을 먼저 공개하자면 이 회사의 매출곡선은 괄목상대 중이다. 올 상반기에는 4개월 연속 ‘기하급수적 성장’을 시현하기도 했다.

자기계발서보다 스낵컬처가 돈이 된다

김형석 대표는 이미 콘텐츠 비즈니스로 고배를 마셔본 적 있는 ‘패자부활전’ 출신이다. 2007년의 일이다.

“파워블로거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방식의 미디어를 꿈꿨습니다만, 메이저 포털업체들이 무료로 제공하는 콘텐츠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유료화 모델은 시기상조였습니다. 쿨하게 접었습니다. 그러다 2010년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스마트폰 플랫폼이라면 콘텐츠 사업

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직장인을 타깃으로 자기계발용 콘텐츠에 주력했지만 결론은 ‘역시나’ 였다. 스마트폰 안에 ‘욱여넣은’ 종이책을 위해 지갑을 열 소비자는 없었다. 방향을 돌렸다. 짧은 시간 간편하게 소비해버리는 스낵컬처(snack culture), 웹툰과 웹소설을 정조준했다.

웹소설 프로모션<자료=북팔>

“소위 국민 게임이라고 불리는 스마트폰 기반 게임의 성공에 자극을 받았습니다. 외국어, 업무능력, 교양 같은 자기계발에는 뜨악해하던 사람들이 게임 캐릭터나 아이템을 위해서는 기꺼이 결제버튼을 누르는 겁니다. 우리가 아니라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지갑을 여는 곳, 우리의 놀이터는 바로 여기였습니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자들이 ‘즐기기’ 위해 몇천원의 구매 버튼을 거리낌 없이 눌러 줄 만큼 시장이 익어줬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게임에 시간과 돈을 쓰는 사람’ 이라는 평판에 대한 사회적·개인적 내성이 획득됐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종류의 결제에 거부감을 갖지 않을 정도로 피싱을 비롯한 보안 문제에 자신감이 들기 시작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디지털 플랫폼을 달구는 아날로그적 감성

물론 전자책 시장을 놓고 아마존이나 예스24와 같은 거인들과 자웅을 겨룰 생각은 없었다. 거인들의 뭉툭한 손가락으로는 건드리기 힘든, 혹은 귀찮아할 그런 종류의 섬세함을 찾기로 했다.

“스마트폰의 문학은 종이책의 문학과는 달라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야기보따리만 풀어낼 수 있다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도록 출판의 문턱을 낮춰보고 싶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디지털 플랫폼이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만난다. 일반적으로 에디터 프로그램을 쓰는 셀프 퍼블리싱(self publishing) 시장에서 북팔은 ‘작가지원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다.

인기작가 '오즈'의 웹소설 표지<자료=북팔>

“자신들의 귀중한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유·무료를 막론하고 독자는 이것만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냉정한 존재들입니다. 1인 출판이니까 참고 읽어주자, 이런 생각을 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까탈스런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아주 섬세한 공정이 투입돼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프로그램에 의존하지 않고 저희 PD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웹소설 PD’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작가를 관리한다. 작가를 근접관리하던 출판사 편집자, 혹은 고객사를 전담하는 광고회사 AE와 유사하지만 업무의 스펙트럼은 더 넓다. 교열부터 삽화, 레이아웃, 표지 같은 기술적 요소는 물론 기획이나 캐릭터 설정, 트렌드 공유같은 크리에이티브까지, 심지어는 세무 문제까지 전방위 지원을 펼친다. 이를 통해 작가들에게는 안정적인 창작환경을 제공하고, 시장에는 ‘먹히는’ 콘텐츠를 내놓는다. 또 하나, 이 바닥에도 ‘생태계’가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이 분야에도 다양한 직업군이 생태계처럼 존재합니다. 플랫폼이나 디지털 기술 관련 전문가, 작가군들, 일러스트 및 디자인 관련 인력들이 전업 혹은 부업으로 매달려 있습니다. 북팔이라는 회사는 이들의 재능과 노력이 만나고 교환되는 마켓플레이스이자, 장기적으로는 정교하게 고안된 인공 생태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4개월 연속 기하급수 성장’ 신화

모바일은 별도의 특성을 가진 독립적인 매체다. 종이책 한 페이지에서 20~30초는 참아주던 독자들도 스마트폰이라면 5초 이상 봐주지 않는다. 그 안에 ‘승부’를 내야 한다. 이야기도 밋밋해서는 곤란하다. 상승과 하강을 쉴 새 없이 이어붙이고, 전개도 대사 위주로 휙휙 ‘날라가야’ 한다. 여러 명이 보고 다음날 출근해 ‘소회’를 나누는 TV의 미니시리즈와 달리 혼자 보고 되새김질 하는 ‘아침 드라마’적인 요소도 강하다.

무엇보다 이 바닥에서 변화는 숙명이다. 트렌드는 변덕 심한 시어머니처럼 예측불가다. 이런 모바일 소설의 특성들을 감안해 콘텐츠에 반영하는 역량이 이 회사가 가진 자양분이다. 그리고-세간의 예상에 비하면- 열매는 생각보다 빨리 맺어졌다.

“2011년에는 매출이 전혀 없다가 2012년에는 1억2000만원, 지난해에는 4억원을 했습니다. 올해는 35억원에서 38억원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상반기에는 4개월 연속 전월대비 2배 이상 성장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모바일에서의 유료화 모델이라는 자신감을 갖

기에는 충분한 숫자입니다”

매출 성장세만큼 자본시장의 구애도 뜨겁다. 이 회사는 최근 몇 군데 벤처캐피털에서 35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애면글면 투자유치에 끌탕을 한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다. 김 대표는 “모바일 콘텐츠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일 뿐이며, 유사한 사업모델을 가진 업체들도 이 정도 자금유치는 모두 성공했다”고 담담하게 받는다.

북팔 사무실 내부<사진=북팔>

앱 누적 다운로드 400만건, 월단위 실제 사용자 60만~70만명, 일평균 콘텐츠 열람 횟수 50만회, 일평균 유료 열람 횟수 10만회, 주당 신간 500종, 누적콘텐츠 2만종…매출의 저변이 되는 이런 수치들에 김 대표는 관심을 둔다.

“특히 사용자당 평균 결제액(ARPU)이 작년말 3000~4000원에서 1만8000원으로 수직상승했습니다. 기업 교육서비스 시장을 경유하는 자기계발 B2B 비즈니스보다는 철저하게 B2C에 치중한 엔터테인먼트가 더 쉽게 시장에 안착했다는 증거입니다. 이 추세는 앞으로도 확

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황금알 아닌 거위를 키운다

이 회사와 함께 하는 작가들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필명 ‘오즈’는 부산의 대학생이었다. 필력은 좋았지만 북팔 연재에 적합한 체질은 아니었다. 북팔과 손잡고 기획과 재연재를 시작했다. 시쳇말로 대박이 났다. 그를 ‘관심작가’로 등록한 독자만 3만명이 넘는다. 탄력이 붙자 그 다음부턴 뭘 해도 ‘되는 집안’이었다. 물론 작가가 이 방식의 글쓰기에 눈을 뜬 탓도 컸다. ‘월수입 1000만원’으로 유명해졌다.

필명 ‘꿈꾸는이’도 평범한 주부였다. 전형적인 문학소녀였지만 거기까지였다. 글로 돈을 벌거나 책 한권 내본 적 없었다. 북팔과 함께 아이템을 잡고 시놉시스와 캐릭터를 연구하면서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3개월 연속으로 월수입 2000만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돈 버는 작가들만큼 저희도 기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스타작가를 만들면서 저희들의 역량도 함께 커졌습니다. 이제는 속칭 ‘말맛’이라고 하는, 대사 만들고 분량을 끄는 능력만 있는 분이라면 언제라도 스타작가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이렇게 소속사 개념으로 ‘정식작가’ 계약을 맺은 사람은 50여명, 이보다 더 느슨한 상태로 연재를 하는 ‘관리작가’는 300명 내외다. 이 회사가 ‘콘텐츠’ 회사가 아니라 ‘매니지먼트’ 회사를 지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금알이 아니라 거위를 키우자는 것이다.

“저희 비즈니스의 무대는 무한대입니다. 소설이나 만화에 그치지 않고 모바일 플랫폼을 이용하는 모든 콘텐츠를 다룰 것입니다. 물론 콘텐츠보다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 과정을 가능케 하는 생태계. 이것이 저희가 바라보는 대상입니다”

‘하고 싶은 일 있다면 마음 놓고 저지르세요. 책임은 경영진이 지겠습니다…’ 이 회사에서 농담처럼 통용되는 말이다. 새로움과 도전에 대한 갈망이 이렇게 표현된다. 김 대표는 비전제시와 재무 등의 업무에 치중하고 업무는 실무팀에 전권을 줬다. 조변석개하는 환경에 제대로 반응하기 위한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