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돌이’에서 영업사원, 이 사람의 강철 단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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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공돌이’에서 영업사원, 이 사람의 강철 단련법 화학제 에어로졸 전문업체 이레산업 박병진 대표

기사입력2014-12-27 00:00

김창훈 기자 (ckim2014@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자식같은 제품들과 함께. 박병진 대표가 들고 있는 것이 머플러 코팅제다. ©중기이코노미

스물두 살 논산 촌놈, ‘공돌이’ 되다

스물두 살 논산 청년이 50만원 달랑 들고 상경한 것이 1989년, 공장 생산직 자리였다. ‘폼 나는’ 화이트칼라는 아니었지만 어엿한 기숙사가 딸린 회사, 목돈 들 일 없어 좋았다. 고졸에 변변한 자격증 하나 없으니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공돌이’. 그의 표현이다.

“용 꼬리보다 뱀 머리.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내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좀 더 깨끗하게 차려입는 서비스업 자리도 알아볼 수 있었겠지만, 기름밥 먹으며 진득하게 일을 배워보자 싶었다”

자동차 및 산업용 화학용제 에어로졸 전문기업 이레산업 박병진 대표의 경력이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1992년 에어로졸 충진 임가공업체 우주산업 영업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프레이와 무스 등 모발 에어로졸 시장이 막 뜨던 시절이었다. 태평양, 한국, 나드리 등 화장품 원청사가 원액과 부자재를 대주면 용기에 충진만 하면 되는 임가공 물량이 80% 이상이었다. 꽤 괜찮은 자체 브랜드 방청제(철 등의 부식을 방지하는 물질)도 있었지만 큰 비중은 아니었다.

“1997년 하반기에 우주산업이 넘어갔는데, 인수한 새 회사에서는 임가공에 집중하겠다고 하더라. 방청제나 다른 산업용 에어로졸 제품군은 무주공산인 셈이었다. 이때다 싶어 이레산업을 연 것이 1998년 1월이었다. 히브리말 뜻 그대로 고객을 위해 준비된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서른한 살, 강철은 이렇게도 단련된다

회사명에도 잊지 않고 갖다댈 만큼이나, ‘준비’는 그가 좋아하는 말이다. 고객을 위한 준비는 물론, 스스로 ‘제 사업’을 위한 준비도 꽤나 공들여 한 모양새다. 영업사원이었지만 퇴근 후에도 공장이 돌아가면 남아서 일을 도운 것은 그 중 하나다. 생산현장에 대해 ‘빠꼼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공돌이’로 경력을 시작한 것부터가 그랬다.

“몸을 써서 일을 하면 공장 돌아가는 물정이 몸으로 알아진다. 쇠를 다루는 일을 한 것은 우주산업 영업사원 할 때 여러 모로 도움이 됐다. 철판을 자르거나 드릴로 구멍을 뚫고 탭을 내다보니 윤활용제에 대해 ‘사용자’의 시각을 갖게 됐다. 머리가 아닌 근육으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회사에서 영업사원 교육을 받으면 장점만 외워야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제품을 써 본 사람은 단점과 한계, 대처방안까지 생각해 낼 수 있다. 당시로서는 생소하던 ‘기술영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거래처 사장님들이 자주 전화를 걸어왔다. 니네 제품 이러이러해서 안되겠다는 식이다. 어느 제품이나 적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태핑유는 주로 철의 강도에 따라 적용범위가 달라진다. 이러저러 전화 통화만으로도 대충 원인이 나오고, 거기서 바로 조치법을 알려주거나 다른 제품을 추천했다.”

우주산업이 파는 다른 제품을 추천하거나 아예 다른 회사 제품을 사다 쓰라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이 전술은 효과가 꽤 좋았다.

“우리 제품도 더 많이 팔 수 있었고, 우리 걸로 안되는 부분만 다른 회사 제품을 추천했다. 결정적으로는 단점이나 한계를 명확히 알려주다보니, 박병진이는 틀림이 없는 사람이다, 매출 올리자고 장난치는 사람은 아니다 라는 식의 믿음을 준 것 같다”

1998년 1월 우주산업이 하던 자체 브랜드 제품군을 타깃으로 덜컥 회사를 차렸다. 두렵지는 않았다. ‘공돌이’에서 영업사원까지, 젠체하지 않고 담금질을 해낸 8년여의 세월이 있었다. “박병진이 만드는 제품이면 믿고 살 수 있다”는 시장의 믿음을 확인한 덕도 있었다.

이레산업은 산업용, 자동차용은 물론 생활용까지 망라하는 50여종의 에어로졸 제품을 내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소비자 입장, 가장 빨리 반영하는 회사

이레산업은 산업용에서 자동차용을 아우르는 화학용제 에어로졸을 낸다. 쉽게 말하면 공장이나 자동차정비업체 같은 데서 화학용제를 ‘에프킬라’처럼 분사해 쓰도록 만드는 제품군이다. 금속끼리 혹은 금속과 공구간에 절삭·가공 등을 할 때 생기는 마찰·열·마모 등을 줄여주는 윤활유 제품과, 금속이나 제품을 부식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방청제 및 코팅제 제품이 많다. 물론 윤활·방청·코팅의 기능을 복합시키는 경우도 많다. 흔히 ‘시다바리’라고 하는 차량 하체의 부식을 막는 언더코팅제는 대표상품의 하나다. 그뿐이 아니다. 자전거, 트레드밀(러닝머신), 전동공구, 릴낚시 등을 위한 생활용품 관련 제품도 많다.

“원액 개발에서 완제품 충진까지 전과정을 통제하기 때문에 문제발생의 소지를 최소화할 수 있다.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불만이 접수되도 즉각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우리가 안에서 다 처리하니 원가 절감도 가능하다. 가격경쟁력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그가 밝히는 이레산업의 3대 경쟁력이다. 충진 공정에 파견나간 직원을 합해봐야 총 10명에 불과한 소기업이 25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비결이다. 여기에 그가 추가하는 것은 ‘소비자 입장’이다.

“차량용 언더코팅제가 반응이 좋았다. 근데 실제로는 자동차 하체보다 더 취약한 머플러는 내열도의 차이 때문에 떼놓고 코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소비자라고 해도 불안할 지경이었고 차주 쪽에서도 몇 번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머플러 코팅제를 개발하게 된 계기다”

국내 최초로 머플러 금속코팅제를 개발한 이유다. 이 제품은 이레의 효자상품 중 하나가 됐다. “사장이 공장과 영업현장 밥을 다 먹어봤기 때문에 잽싸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직원이 얼마 되지 않아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뚝딱이다. 소비자 쪽에서 의견이 접수되면 제품으로 반영하는 기간이 그만큼 짧다는 의미다”

‘작다’는 것은 이런 미덕도 갖는 모양이다. 열린 마인드에 빠른 피드백이 결합하면서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직원들은 모두 가족이다. 현장의 부부 직원은 10년 넘게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워낙 웅숭깊은 분들인데다 부부가 함께 있으니 가족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처럼 챙겨주지 못하니 기회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마음을 표현하려 애쓴다”

그 스스로 ‘진부한 표현’이라면서도 굳이 “가족같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것이 박 대표가 꼽는 또 하나의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