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가장 큰 ‘홈런’은 야구장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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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내 인생 가장 큰 ‘홈런’은 야구장 밖에서 스포츠용품 전문 메이드스포츠 서민기 대표

기사입력2015-02-14 00:00

김창훈 기자 (ckim2014@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메이드스포츠 서민기 대표. 야구선수 아닌 사업가로 ‘홈런’을 준비한다. ©중기이코노미

“원단이니 박음질이니 자수니 단 하나도 그냥은 못 넘어가고 꼭 까탈을 잡는 분들이 있습니다. 영업을 하다보니 이런 분들이 오히려 좋아지더군요. 1차 관문을 통과하고 신뢰만 쌓으면 어느새 단골이 되고 새 고객도 흔쾌히 소개해 주거든요”

스포츠용품 판매를 주력으로 하는 메이드스포츠 서민기 대표가 스스로 멋쩍다며 웃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로 이 일에 뛰어든 지 겨우 3년만에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단다.

‘맨 땅에 헤딩’…그래도 답은 나온다

“야구도 알았고, 그와 관련된 비즈니스 생태도 알 만큼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유니폼은 아니었습니다. 경력있는 직원을 고용했지만 결국 사장이 모르면 도로아미타불입니다. 할 수 없었죠. 전문가들이며 공장 사장님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하나하나 물어가며 배웠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유니폼들과 말문을 텄습니다. 지금요? 어디서건 누구에서건 질문이 나오면 바로 전문가의 견해를 달아줍니다”

서 대표는 엘리트 체육인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선수를 시작해 영동중, 경기고, 영남대까지 야구 특기생으로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경기고 동문으로 구성된 경기다이아몬드 팀은 지난해 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사진=서민기 대표>

“지금 제 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대롭니다. 나보다 작던 아이들이 어느새 머리 하나는 더 커지더군요. 기술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체구와 체력의 문제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견딜만 했는데 대학 가서는 더 이상 힘들겠다 싶더군요”

사정이 좀 달라졌다지만 1980년대만 해도 운동부원은 학교에서 열외의 존재였다. 수업에 들어갈 이유도, 공부를 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운동을 그만두려니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하고 무작정 호주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일부러 우리나라 사람 없는 곳을 택해 어학연수를 시작했습니다. 영어가 안되니 힘들더군요. 음식 달라는 말을 못해 꼬박 3일을 굶기도 했습니다. 사전을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되건 안되건 떠들고 부딪치기를 3개월, 비로소 말문이 좀 트이더군요. 됐다. ABC 한 번 제대로 안 배우고도 이렇게 영어를 하는 판에 못할 게 없겠다 싶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유명한 야구인이 대표로 있던 야구정보 회사였다. 야구선수로서의 경험과 열정,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신감이 뭉쳐지면서 재미있게 일했다.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로 시작되는 야구정보 제공을 15년 했습니다. 야구와 정보가공이 합쳐진 분야라고 할까요? 발품도 팔아야 하고 머리도 써야 했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미래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더군요”

그는 이 회사를 나왔다. 퇴사 과정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청춘을 바친 대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메이드스포츠를 차렸다. 유니폼을 비롯한 스포츠용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회사다. 재개발이 한창인 서울 흑석동 산비탈의 조그마한 ‘가게’에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

“폼 나는 사무실을 얻어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만 제 여건에 맞는 곳이라 마음이 편했습니다. 시쳇말로 맨 땅에 헤딩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습니다. 발로 뛰는 것 외에는 없더군요”

단 한 벌도 직접 배달…“답은 언제나 현장에”

흑석동 산비탈에 ‘폼’ 나지 않게 자리잡은 회사지만, 메이드스포츠는 빼곡한 납품일정만큼 분주하게 돌아간다. ©중기이코노미

그는 한 벌의 유니폼도 직접 배달한다. 현장에 가서 물건을 전달하고 불만사항이 생기면 그대로 받아들고 돌아와 수정을 한 후 다시 배달을 간다. 비효율적일 것 같았지만 은근히 효과가 있었다.

“일단 고객들이 서민기라는 이름을 믿게 됩니다. 야구선수가 아닌 장사꾼의 입장에서 제 안목도 높아졌습니다. 처음에는 한 달 100만원 매출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월매출액의 ‘단위’가 달라졌습니다”

선수생활 한 것도 도움이 됐다. 메모리, 스판덱스 등 원단에 따른 특성의 차이를 착용감이나 플레이 스타일에 맞춰 적용하고 제언하는 것은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선수나 팀 운영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달라집니다. 제가 한걸음 더 빨리 움직이면 경우에 따라 보름 이상 빠르게 유니폼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가격이나 디자인도 마찬가집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원재료 즉 원단이다. 그 다음은 자수와 박음질 같은 공정이고 요즘엔 디자인도 보는 눈이 생겼다. 이게 모두 ‘현장의 힘’이다. 발품은 배신을 하지 않는 법이다.

“세탁기 한 번 돌리면 유니폼은 품질이 바로 나타납니다. 변색되거나 울거나 하는 식으로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옷에 들어간 원가는 속일 수 없다는거죠. 유니폼을 몇 벌씩 갖고 있는 유명 동호인 구단들은 유니폼을 한 군데 맡기지 않고 여러 업체로 분산시키는데, 한 곳으로 시나브로 물량이 쏠리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품질이 판가름 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야구장 밖에서 야구를 바라보다

마운드나 배터박스에 서지 않더라도 야구는 계속된다.<사진=서민기 대표>

우리나라도 스포츠 동호회 활동이 부쩍 활발해졌다. 야구는 대표적인 종목 중 하나다. 서 대표도 사회인야구에 몸담고 있다. 영등포리그에서 매주 메인심판을 보고 있고, 모교인 경기고 출신 동호회 팀인 경기다이아몬드의 수석코치도 맡고 있다. 이 팀은 지난해 대표적 동호인 리그인 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도봉구 야구연합회 감독을 맡기도 했다.

“4~5년전 붐이 일면서 사회인야구가 도약할 기회가 있었는데, 리그 운영하시던 분들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푸념을 하시곤 합니다. 사회인야구도 제대로 하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심판이나 기록원 같은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관건은 야구를 제대로 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드는 겁니다. 장기적으로 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동호인야구는 ‘진짜 동호인’ 격인 4부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3부, 2부로 올라가는데 2부의 경우 한 팀에 ‘선출’(봉황대기 및 황금사자기 출전경력 있는 선수 출신)이 3명 이내여야 한다. 이 정도만 돼도 상당한 수준의 야구를 구사한다. 1부는 실업팀들, 직업야구선수 못지않다. 야구는 여전히 그의 가장 큰 관심사다. 그가 대학병원 의사, 피트니스 클럽 운영자 등과 손잡고 꾸며나가는 일도 야구와 관련된 일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야구를 하는 어린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 어린이들에게 의료와 재활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제공해주고 싶습니다. 좋은 분들을 만나 지금까지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만간 결실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그는 야구장 밖에서 또다른 ‘홈런’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