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번의 망치질…名品은 그렇게 단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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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수만번의 망치질…名品은 그렇게 단련된다 세계적 경쟁력 銀다도구, 명은아트 박명규 대표

기사입력2015-02-28 07:30

김창훈 기자 (ckim2014@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지난해 중국에서 열린 유명 다도구(茶道具) 전시회. 한눈에도 여유 있어 보이는 현지 참관객 하나가 매일 우리나라 업체 명은아트 부스를 찾아 물끄러미 제품을 둘러보다 돌아갔다. 그러기를 3일째, 이 회사가 낸 은주전자 2개를 구매해 돌아갔다. 바로 옆 부스 중국산보다 한참 높은 가격표가 붙어있는 제품이었다. 그녀는 “벼르고 별러 사는 것, 평소 갖고 싶었던 명은 제품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며 선선히 지갑을 열었다.

명은아트는 이미 명품의 이미지를 굳혔다. 명은 전시품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연신 찬사를 보냈다. 2014년 시 주석 선물세트(아래 작은 사진)를 내놓기도 했다.<사진=명은아트>

다른 일로 전시회장을 찾았던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중국 현지에서 명은아트 제품은 명품 대접을 받는다. 은주전자는 저가 라인 제품이 100만원대 후반, 고가품은 1000만원이 넘는다. 중국 제품보다는 2.5배 이상, 일본 제품보다도 1.5배 이상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지만, ‘명은(明銀, Mingyin)이니까’ 불평은 없다.

“비싸도 산다. 명은이니까…”

<사진=명은아트>

이 회사 박명규 대표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에두른다. 훌륭한 동료직원들을 만난 것도, 중국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도, 협력업체나 총판과 같은 현지 파트너들이 속을 썩이지 않은 것도, 매년 새로 내는 제품마다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모두 ‘운이 좋아서’란다. 파스퇴르가 맞았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미소를 짓는 모양이다. 이 행운을 영접하기 위해 그와 그의 가족, 동료들이 어떤 준비를 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1979년 공예판에 뛰어든 박 대표는, 이미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호돌이 마스코트를 제작할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 이 회사 명은아트는 1992년 세웠고, 은(銀)다도구 제작은 2000년경부터 시작했다. 이름(明銀) 그대로 은 다도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이미 15년 전부터 중국시장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중국시장 매출은 2005년부터 나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부터 중국 사업이 제 궤도에 오른 것 같습니다. 지난해 중국 매출은 2005년과 견주면 100배 이상 커졌습니다. 2011년을 기점으로 잡아도 매년 갑절이상 규모를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 하이엔드 은다도구는 국내 시장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국내에서 월 1개 팔기도 버거운 제품을 중국에는 100개 이상 꼬박꼬박 내보냅니다”

이 지점이다. 명은은 일찌감치 중국시장을 생존길로 잡아놓고도 오랜 시간 뜸을 들였다. 섣불리 현지투자를 하거나 시장을 잡겠다고 저가품을 풀지도 않았다. 치밀하게 계산된 황소걸음 행보를 이어갔다. 전체 공정을 수작업으로만 하는 전수공(全手工) 라인은 기술을 구축하고도 때를 기다렸다. 시장이 익었다고 판단된 2014년에야 출시를 했다. 로드맵에 맞춰 라인업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심지어 제품을 낼 때는 시장의 반응에 응답할 대량생산체제까지 염두에 둔다.

“저만 해도 공예 경력이 35년이 넘는데, 회사 내에는 40년, 60년씩 경력을 가진 분들도 많습니다. 시장의 요구나 고객의 바람에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합니다. 쉽게 말해 새 트렌드를 놓고 아이디어 회의를 열면, 첫 회의에서 바로 결론이 납니다. 어떻게 모양을 내고 어디에 문양을 해야 하는지 ‘선수끼리’ 이심전심 통하는 겁니다. 여기서 비롯된 자신감은 포용력으로 발전합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얼토당토않은 요청을 해 오면 대부분 일본 업체들은 그냥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일리 있는 의견을 받아들이거나 모티프로 활용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고객을 설득합니다”

엔트리 제품에서 최고급 하이엔드까지

인사동 매장.<사진=명은아트>

다양한 제품 라인업도 성공비결의 하나다. 주전자, 다관, 숙우 등 이 회사 은다도구 제품 중 절판되지 않고 ‘살아 있는’ 제품만 250종류다. 각각 제품에는 대중소 사이즈가 구분되니 1000종에 가까운 제품이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박종혁 본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자동차로 치면 엔트리카처럼, 은다도구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분들을 위한 저렴한 가격의 엔트리 아이템도 있습니다. 물론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제품도 있습니다. 금에 상감 입힌 1000만원대 제품에서 외견상 소박하지만 내부는 휘황찬란란 외빈내화(外貧內華)형 3000만원대 제품도 있습니다. 여기에 해마다 신제품을 만들고, 명품 브랜드들처럼 한정판을 내기도 합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예정된 수량을 지켜 희소성을 유지합니다”

고급 가죽케이스와 보증서는 고급화 전략의 기본이다. 물론 짝퉁도 많지만 박 본부장은 “잘 나와서 베꼈다는데 기분 나쁠 이유가 없다”고 웃는다. 그는 박명규 대표의 아들이다. 이 회사에 합류해 4년차를 맞았다. 상경계를 전공한 덕에 마케팅과 회계를 맡고 있다. 그는 이 회사에 ‘경영’의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박 대표의 부인 김정숙씨는 내로라하는 칠보공예 장인이고, 자부 김지영씨는 컴퓨터 전문가로 힘을 보탠다. 가족의 힘은 또 하나의 경쟁력이다. “새 제품을 뽑을 때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품평하듯 차를 마십니다. 말하자면 1차고객인 셈인데, 다도구가 차 맛을 잡아주거나 살려주는 정도를 느껴 보완할 부분을 잡아냅니다”

명품은 망치질을…가족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공정에 따라 다양한 색감과 질감을 갖는 것은 은이 가진 또다른 매력이다. 왼쪽 제품처럼 오돌토돌한 질감을 내는 기법은 지재권을 출원해놓았다. ©중기이코노미

왜 은(銀)이었을까? 박 대표에게 은은 중용의 물성이다. 금처럼 너무 부드럽지도, 동처럼 너무 딱딱하지도 않다. 너무 귀하지도 흔하지도 않다. 은수저나 정수기 필터처럼 세균을 잡고 정화해주는 기능도 있다. 무엇보다 망치질에 따라 강도가 달라지는 것은 최고의 매력이다.

“좋은 은 제품은 망치질을 먹고 만들어집니다. 전수공 제품을 만들려면 은 원판에 수만번의 망치질을 해대야 하는데, 이게 더해질수록 단단해지고 더 깊은 색감을 갖습니다. 물대(주둥이)까지 한몸으로 된 전수공 제품은 그 자체로 세상을 품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은 전수공 제품을 내는 곳은 명은이 유일하다. 품이 많이 드는 고가제품을 팔아내려면 그에 걸맞은 명성과 업력, 그리고 회사의 내구성이 필요해서다.

명은아트는 올해로 24년차를 맞았다. 많은 직원들이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왔다. “같은 분들과 20년 넘게 한솥밥을 먹는 것은 사장으로서 행복한 일”이라고 박 대표는 감사해 한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여든살 가까운 분도 계십니다. 열두살에 망치를 잡았으니 70년 가까이 일하신 분입니다. 40년 이상 된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너무 한우물만 파왔습니다. 망치질만 할 줄 알았지 이재 같은 걸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고민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지난해 이 회사는 첫 성과급을 시행했다. 생색내듯 한 게 아니어서 직원 모두 몇백만원씩 받아갔다. 소규모 기업이 대부분인 업계로서는 당연히 신선한 시도다. “올해는 장사를 더 잘해 더 많이 드려야 한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이와 별도로 전원주택도 짓고 있다.

“이를테면 시중 전세가의 1/3 정도의 가격으로 직원들의 주택난을 덜어주려고 합니다. 그냥 기숙사 같은 개념이 아니라 어엿한 살림집을 마련해 직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일 시킬 때만 ‘가족’처럼 대할 게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도 가족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공헌의 꿈도 그대로다.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고가의 은다구를 쉽게 향유할 수 있는 문화재단을 짓고, 차와 은이 주는 치유의 기쁨을 더 오래,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것. 그는 “거창한 재단이 아니라 시골마을 느티나무 그늘처럼 누구나 오며가며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자리를 꿈꾼다”며 인터뷰를 마무리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