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이란? 좋아하는 일 ‘마음껏’ 하는 것

프린트

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창업이란? 좋아하는 일 ‘마음껏’ 하는 것 16년간 9번 창업한 ‘창업 권하는 남자’ 창업멘토 형용준 씨

기사입력2015-04-25 00:00

윤주희 기자 (jooheey15@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싸이월드 창업자로 유명한 형용준 씨는 16년간 9번을 창업한 베테랑 창업전문가다. ©중기이코노미

창업 천국인 미국에는 창업을 직업으로 삼는 연쇄창업가(serial entrepreneur)가 드물지 않다. 이들은 자신이 창업한 기업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이를 다른 조직에 매각하고 자신은 다시 창업을 시도한다. 테슬라 모터스를 만든 엘론 머스크, 트위터 창업자인 에반 윌리암스 등이 대표적인 예다.

창업 환경이 열악한 우리나라에선 어떨까. ‘한 번 쓰러지면 영영 재기는 힘들다’는 대한민국에도 연쇄창업가는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싸이월드 창업가로 잘 알려진 형용준 씨. 지난 16년 동안 9개의 온라인 비즈니스 기업을 창업, 매각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최근 새로운 직함을 달았다. ‘창업멘토’다. 형씨는 4월 둘째 주부터 경기도여성개발센터에서 경력단절여성들의 창업을 컨설팅해주는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시간을 이용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아이템 발굴부터 판로개척 방법까지 일대일 맞춤형 상담을 해준다. 지난 21일 오전, 그런 형씨를 센터에서 만났다. 다른 사람의 창업까지 거들고 나선 그에게 ‘창업 권하는 이유’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창업을 “회사 만드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창업의 본질이 재미(fun)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청년 창업이 잘 안 되는 이유도 창업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창업은 별 게 아니다.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가진 일들을 둘러보고 그 안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부족한 게 무엇인지 찾아 만들어 보라. 그 과정에서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투자자들도 생기고 창업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싸이월드부터 미쉬팟까지 16년 창업 원동력은 ‘재미’

형씨는 자신의 창업도 대부분 이같은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1999년 카이스트 산업경영대학원 박사과정 중 싸이월드를 개발했을 때도 그랬다. 그는 “당시엔 창업이란 말도 생소하던 시절”이라며 “인터넷으로 믿을 수 있는 정보를 나눌 수 없을까 고민하다보니 ‘신뢰기반의 정보공유’ 사이트를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형씨는 곧 이같은 아이디어를 ‘1촌’이란 개념으로 발전시켰고, 코딩을 잘하는 군대 후배 정영식 씨를 끌어들여 싸이월드를 탄생시켰다.

형씨의 두 번째 사업 역시 자신의 필요를 충실히 따랐다. 2000년 개발한 성인남녀 커뮤니티 사이트 ‘세이큐피드’가 그것이다. 형씨는 “군대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여자친구를 사귀는 데 관심이 많았다. 다른 친구나 선후배들을 봐도 다들 여자친구를 사귀고는 싶어 하는데 어디서 만나야할지 기회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더라. 그런 걸 보면서 싱글 커뮤니티 사이트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그의 재미와 필요 찾기는 계속됐다. P2P 솔루션 전문업체 이인프라네트웍스, SNS 앱 개발회사 미쉬팟 등을 창업하며 2013년까지 총 9개의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쫓는다지만, 이렇게 자주 창업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형씨는 “내게 창업은 ‘첫사랑’ 같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찾아가서 만나지 않나. 창업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새로운 일에 대한 욕구도 창업의 동력으로 꼽았다. 그는 “어떤 것이든 할 만큼 했다고 느껴지면 다른 걸 하고 싶어진다”며 웃었다.

그러나 연속된 창업에는 타의도 절반쯤 있었다. 적시에 투자를 못 받아 기존 사업을 접어야 했던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같으면 회사 성장에 따라서 여러 번 투자를 받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5년 전까지만 해도 벤처에게 그런 시장이 전무했다”며 “특히 2002년 말 2003년 초쯤 우리나라 투자시장이 굉장히 얼어있었다. 2002년 차렸던 쿠쿠박스 같은 경우도 오픈한지 6개월 만에 NHN(네이버)에 매각했는데, 서비스는 잘 됐지만 투자가 안 됐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어찌됐든 16년간 9번의 창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지금껏 창업과 매각을 반복해 오며 그의 마음속엔 어떤 깨달음이 있었을까. 형씨는 “창업에 기복은 있을지언정 성공과 실패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하면 창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창업을 하면서 부침을 겪는 건 당연하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예상치 못한 장벽을 만나 노심초사할 때도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모두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게 일에 대한 열정이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모두 사업화하기 좋은 아이템이 될 수는 없다. 그만의 창업 아이템을 가려내는 비법은 무엇일까. 그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창업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문장이라고 말한다. “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절실하게 골몰하다 보면 기발한 아이템을 발굴할 수 있다. 최근에 장애인들을 위해 오토바이 바퀴를 장착한 휠체어가 개발된 걸 봤는데, 이런 것도 결국 휠체어를 타고 빨리 달릴 순 없을까 같은 실생활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서 출발한 것”이라고 조언했다.

©중기이코노미

앞으로 ‘제조업’ 뜰 것…공장 없이도 시제품 제작 가능해져

그는 창업 환경은 앞으로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우선 인터넷 환경이 발달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평가받을 수 있는 길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형씨는 “요즘엔 SNS 등에 동영상이나 사진을 올리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전문투자자들이 먼저 알아보고 찾아온다”며 “슈밤 베너지라는 미국 학생은 레고로 시각장애인용 점자 프린터를 개발해서 인텔로부터 투자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싼 값에 시제품을 만들어 주는 온라인 제조 공장이 등장한 것도 창업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형씨는 “예전에는 무엇을 만들어보고 싶어도 제조업체를 찾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엔 시드(www.seeedstudio.com) 같은 사이트에 디자인 파일 하나만 보내면 질 좋은 제품을 싼 값에 만들어 집까지 배달해준다”며 “지금까지는 SNS, 모바일 앱 쪽의 창업이 강세를 보였지만 앞으로는 제조 창업이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이런 제조 창업을 도와주는 소셜네트워크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제조자들끼리 정보교류를 좀 더 쉽게 하고, 제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영감이나 인적 네트워크를 얻어갈 수 있는 제조자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며 “3~4개월 정도 후면 시중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