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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茶, 나무를 심고 미래를 거둔다
차에서 ‘6차산업’ 일구는 다희연 박영순 대표
- 기사입력2014-01-02 20:27
글 김창훈 기자/사진 이창호 기자 (ckim2014@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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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보기, 그리고 모으기
“차농(茶農, 1차), 차 파생 공산품 생산(2차), 관광 서비스업(3차)까지 ‘6차산업’은 기틀이 잡혀 있습니다만, 차 문화관과 같은 지식 기반의 문화사업(4차)을 키워 손색없는 ‘10차산업’의 성공사례를 만들어 보이고 싶습니다”
‘동굴카페’로 유명한 다희연 박영순 대표(68)의 첫 마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다희연에서 내는 5월 녹차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3무’로 유명하고, 녹차 발효액이나 녹차 국수도 반응이 좋다. 여기에 더해 차밭 체험, 동굴카페, 집라인(zip line) 등 관광 서비스 아이템은 제주 관광의 주요 코스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무엇보다 박영순 대표. 같은 지점에서 다른 면을 발견하고 연관된 것들은 하나로 묶는 그의 ‘융복합’ 성향과 이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내 최대 1500여 회원약국을 가진 온누리약국체인을 만든 이가 박영순 대표다.
“원광대에서 생약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방 지식을 밑천으로 공부 모임을 운영했습니다. 이 모임이 커지면서 약국 체인에 대한 자신감도 커졌습니다. 그냥 규모의 경제만 누릴 것이 아니라 약국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다희연 박영순 대표 ©중기이코노미당시 설립 모토 또한 ‘종합’과 ‘원스톱’이었고, ‘약을 짓는 곳’이기만 했던 약국은 ‘종합건강백화점’의 새 옷을 입었다.
“약사 입장에서는 양약, 한약, 영양요법 등 다양한 방법을 종합적으로 적용해 환자를 돌보고, 고객 입장에서는 의약품, 건강보조식품, 건강기구 등 건강과 연관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받으면 좋겠다 싶었지요”
이후 온누리약국체인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약국 경영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약국에 ‘종합’과 ‘백화점’이라는 새 옷을 입힌 그가 녹차에는 어떤 색깔을 덧입힐지 기대되는 이유다.
사부곡(思夫曲) 그리고 인생 제2막
다희연(茶喜然)은 ‘차는 자연의 기쁨’이라는 의미로, 그가 대표로 있는 농업회사법인 경덕(주)의 브랜드다. 제주도 4대 곶자왈의 하나인 조천-함덕 곶자왈 지대 20만㎡ 부지에서 녹차부터 관광까지 6차산업, 박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10차산업’을 시현하고 있다. 서울에서 ‘잘 나가던’ 사업가였던 그가 이곳 제주도에 차밭을 일군 것은 사부곡(思夫曲)에 힘입은 바 크다.
“2004년 남편이 소천하면서 인생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혼 전부터 ‘산 자가 죽은 자 곁에서 해로하기로’ 서약한 터라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그 사람 곁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녹차라면 박사학위 하면서 효능에 대한 확신도 있었고, 만성질환이 급증하는 이 시대에도 맞겠다는 생각에 전국을 돌며 후보지를 물색했습니다”
6개월여의 부지 선정과정에서 최종 낙점된 곳이 조천읍 선흘리 곶자왈이다.
'천혜의 입지'를 녹차 재배지로 바꾸는 첫 단계 개간작업<사진= 다희연>“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하지 않습니까? 곶자왈은 ‘자갈 위의 숲’이라는 제주 토속어 의미처럼 표토가 얇아 식생이 옮겨오기 힘든 지형입니다. 숲은 있으되 농경이 힘드니 농약을 칠 일이 없었겠지요. 본의 아니게 태초의 순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화산암으로 투수가 좋고 공중습도가 높아 녹차 재배에는 최적의 입지였습니다. 농사를 짓지 못해 저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온 셈이지요”
천혜의 입지는 곧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처녀림을 의미하기도 한다. 2005년 3월부터 개간에 들어갔다. 박 대표가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흙먼지 맡으며 허리 펼 새 없이 무던히도 땅에 매달렸습니다. 몸은 피곤하고 피부는 그을렸지만 힘들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집 앞 5미터에 남편 묘소를 모시고 ‘함께’ 해로할 수 있어 좋고, 저는 또 인생 제2막을 열어서 좋았습니다. 농담 삼아 ‘제주 보톡스’라고 부르는데요, 제주의 바람과 천연의 흙냄새로 몸과 마음은 물론 피부까지 젊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테아닌, 마음의 건강
이런 과정을 겪으며 2006년 ‘젓가락 같은’ 차나무를 심었고 2009년 시험생산을 거쳐 2010년 본격적으로 녹차를 출하할 수 있었다. ‘3무’ 유기농에 기르는 이의 정성이 더해져 품질만큼은 자신있던 차였다. 그러나 시장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메이저 업체를 앞세운 커피전문점의 급증세, 가정의 원두커피 수요증가세가 무서운 속도를 내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변화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것이어서 녹차만으로는 한계를 피하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진가가 나타난다. 녹차에서 국수를 비롯한 공산품(그는 이를 파생상품이라고 부른다), 개간 과정에서 발견한 동굴을 이용한 카페, 집라인과 다원 관광, 차문화관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다원 명칭도 경덕원에서 다희연으로 바꿨다. ‘기쁨’이라는 뜻처럼 ‘즐김’에 초점을 맞췄다.
'제주 보톡스' 바람과 노동이 그의 건강비결이다. ©중기이코노미“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에만 그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먹고(음식점), 마시고(카페), 타고(집라인과 카트), 체험하고(녹차 덖기, 다례체험), 배우는(다례교실) 오감을 통해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했습니다. 특히 동굴카페나 집라인은 신선한 주제로 호응을 얻었습니다”
특히 그가 직접 강사로 나서는 다례교실은 특별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생약으로 박사학위를 했으니 과학적 저변이 탄탄하기도 했거니와, 차에 대한 그의 독특한 신조가 돋보이는 때문이다.
“불교에서 참선하기 전에 차를 마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아미노산의 일종인 테아닌이 풍부해 뇌파를 알파(α)파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이타심과 자비심이 충만해지는 것이지요. 차마심, 혹은 찻자리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자비와 화합,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차도구와 차실을 잘 갖춰놓고 자세나 분위기를 갖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보다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카테킨, 몸의 건강, 그리고 ‘파생상품’
테아닌이 마음의 건강을 읽는 키워드라면, 몸의 건강을 읽는 단서는 카테킨이다.
“5월 차부터는 그윽하고 담백한 맛이 덜해지고 떫은 맛이 강해집니다. 카테킨이 많아지기 때문이지요. 특히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Epigallocatechin gallate, EGCG)는 아주 강력한 항산화·항염·항알레르기 물질입니다. 현대 질병 중 90퍼센트가 산화작용이 원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산화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현대인의 건강에 녹차, 특히 5월 차 이후의 녹차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생약 전문가이자 ‘잘 나가는’ 사업가다운 그의 풍모는, 그가 ‘파생상품’으로 지칭하는 녹차 기반 공산품의 사업화에서 빛을 발한다. 잎차, 가루차, 티백, 녹차라떼, 녹차 발효액, 국수와 같은 기존 음식료 제품에 더해 샴푸 린스 치약과 같은 청결용품,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건강기능식품까지 외연을 넓힌다는 것이다. 황기나 산삼처럼 유효성분이 규명된 천연물과 녹차를 합친 제품의 개발도 포부 중의 하나다.
“천연물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수많은 학술논문으로 증명이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중에도 녹차 성분의 제품들이 나와 있습니다만, 많은 경우 함유량이 많지 않습니다. EGCG를 다량 함유해 최적의 항산화 효과를 갖되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파생상품은 수탁생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물적·지적 토대를 강화해 직접 생산할 수 있다면 더욱 효율적이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희연 동굴 카페<사진=다희연>약의 전문가이자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해 본 사람답게 그의 답변은 거침이 없다. 그렇지만 넘어야 할 고비는 아직도 많다.
“살면서 많은 역경을 만났지만 주저앉아 본 적은 없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아이디어를 실행할 현실적인 토대가 없다는 것은 고민입니다. 하지만 부단히 모색하면 진로는 찾아지기 마련입니다. 인생의 기나긴 길을 어떻게 걸어갈지 미리 그려보는 것보다는 한발 한발 내딛는 편입니다. 어느 순간 더 가고픈 길이 생기면 그때 발걸음을 돌릴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둬야지요”
그는 작고한 남편을 ‘평생의 스승’으로 삼았다. 남편이 어린시절의 그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안개가 껴 있으면 한 치 앞밖에 안 보이지만 일단 한 치를 가고나면 또 한 치가 보이고 그러다 보면 100리 길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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