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해리포터? 조앤 롤링 먼저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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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한국판 해리포터? 조앤 롤링 먼저 키워야” 웹소설 연재사이트 운영 (주)문피아 김환철 대표

기사입력2015-06-13 00:00

80년대 무협소설 꽤나 읽었다는 독자라면 ‘금강’이라는 작가 이름 한번은 들어봤을 터다. 1981년 25세의 나이에 작품 ‘금검경혼’을 들고 혜성같이 등장한 이 작가는 한국작가의 창작무협이 태동하던 80년대에 등장한 1세대 무협작가 중의 한명으로 꼽힌다. 한국사를 접목한 무협소설 ‘발해의 혼’ 등 수많은 히트작으로 유명하다. 무협작가 중 4대천왕이나 쌍두마차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가 금강의 본명은 김환철, 현재 웹소설 연재사이트 ‘문피아’의 대표다. 장르소설 독자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문피아는 9000여명의 작가가 3만6000여종의 장르소설을 연재하는 웹소설 연재 사이트다. 지난 2013년에는 벤처기업인증을 받기도 했다.

(주)문피아 김환철 대표 ©중기이코노미

김 대표 스스로도 지난해까지 네이버에서 웹소설을 연재하던 현역작가였으며, 문피아를 운영하면서 출판업계의 변화를 누구보다 일찍부터 느끼고 있었다. 한국의 전자출판 시장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데, 김 대표는 장르문학 쪽에서는 이미 웹소설과 전자출판이 종이책 시장을 역전했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일반문학 쪽에서는 웹소설이나 전자출판이 더 커질지 알 수 없다. 시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고 말했다. 장기간 연재되고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되는 장르문학의 특성이 웹소설이나 전자출판에 보다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2002년 무협소설 연재 사이트로 10년 넘게 온라인 시장 이끌어

사실 온라인 소설 연재는 인터넷보다 앞선 PC통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PC통신 문학의 최대 스타인 이영도 작가가 아직 아마추어였던 시절, 김 대표를 비롯한 종이책 출판계의 인기 작가들도 PC통신에 소설을 연재했었다. 김 대표는 “프로 작가들은 유료 연재를 하던 통에 상대적으로 접근성은 떨어졌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지난 2002년 연재사이트 ‘고무림’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웹소설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고무림은 무협소설을 전문적으로 연재하는 사이트였다. 김 대표는 이후 모든 장르를 다 포괄하는 연재사이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2006년 ‘글들이 모인 유토피아’라는 뜻의 문피아로 사이트 이름을 바꾸고 웹소설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지난 2012년 말 법인으로 전환했고, 2013년부터는 유료서비스를 도입했다. 현재 문피아 사이트에는 유료와 무료 웹소설이 각각 별도의 카테고리로 서비스된다.

김 대표 자신이 무협소설의 유명작가다 보니 문피아하면 ‘무협소설 연재 사이트’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김 대표 역시 “무협이 제일 잘 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현실은 달랐다”고 술회한다. 막상 뚜껑을 여니 무협보다 현대물이 압도적으로 강했다는 것이다. 종이책과 웹소설은 독자층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레전드 오브 레전드<사진=(주)문피아>

“문피아에서 가장 히트를 친 작품을 그대로 출판해 대여점에 내놓으면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에 따라 문피아가 시장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가장 큰 사이트에서 가장 많은 독자들이 찾는 글이 실제 시장에 나가면 반응이 약하다는 괴리가 왜 생겼을까요? 많은 독자들은 대여점에서 보여지는 획일적인 소설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새로운 것을 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김 대표는 유료 웹소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이런 현상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료로 1만2000여건씩 결제가 이뤄지는 소설들은 대개 무협이 아니었다.

김 대표는 독자층의 차이를 유통구조의 차이로 설명했다. 종이책 시절 장르문학은 개인에게 판매되는 양보다 대여점에 판매되는 양이 훨씬 많았다. 그 결과 대여점에서 환영받는 작품이 득세했고, 대여점을 출입하는 독자들이 원하는 것이 대세가 됐다. 그러나 웹소설 시대 독자들은 대여점을 찾는 독자들과 성향이 달랐다. 특히 “이전에 많이 봤던 형태의 소설 보다는 새로운 것, 그동안 잘 안 본 것, 참신한 것에 대한 욕구가 많았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종이책 시대부터 웹소설 시대까지 폭넓게 경험하다보니 시대의 변화를 짚는 눈이 남달랐다.

웹소설 비즈니스 역시 짧은 역사 사이에 변화를 겪었다. 초창기에는 웹소설 형태로 무료 연재되던 작품들도, 종이책 출판이 결정되면 연재가 중단되곤 했다. 지금은 웹 내에서 연재가 시작된 작품들은 웹소설로 끝까지 연재가 된다. 김 대표는 “문피아가 여전히 무료사이트로서 기능을 하고 있지만, 유료 웹소설 서비스를 통해 타 사이트와의 차별점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점”이라고 강조했다.

웹툰도 마찬가지지만 유료 서비스 도입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피아는 10년이 넘은 역사와 탄탄한 독자층이 있기에 이것이 가능했다. 김 대표는 “독자가 작가가 되고, 이 작가들이 새로운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낸 것”이 문피아의 힘이라고 말했다.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이 온당하게 자기 몫을 받아가는 풍조는 김 대표가 강조하는 바이기도 하고, 문피아가 좋은 작가진을 확보·양성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문피아는 작가들이 자기 아이디로 로그인하면 자신이 쓴 글이 얼마나 팔렸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하루에 얼마나 팔렸는지 정도를 넘어서, 독자의 연령대 나이와 성별 등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작가를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춘 셈이다.

“독자들이 어떤 책을 원하는지 알아야” 출판업계 애로 극복

플레이 더 월드<사진=(주)문피아>

최근 출판업계는 시장 축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갈수록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풍조가 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에 앞서 출판계 내부의 문제점을 먼저 짚었다. 독자들이 원하는 책을 내지 못해 위기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에 비해 젊은 사람들이 책을 덜 보긴 합니다. 이건 교육의 문제죠. 공부하느라 책을 볼 시간이 없어서 책과 덜 친해진 것이 있겠죠. 이들이 쉽게 책과 친해지기 위해 출판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김 대표는 “웹소설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문학들을 스낵컬처(snack culture)라고도 하는데,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이며 전에 안 보던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잠재적 독자들을 독서의 세계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낵컬처란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스낵처럼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트렌드를 말한다. 잠재적인 독자들이 책과 친해지는데 장르문학이 기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저작권 침해 역시 웹소설계가 겪는 어려움 중 하나다. 김 대표는 “일반문학에서는 저작권 침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소설류 저작권 침해의 90% 이상이 장르문학에서 발생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설업계는 상대적으로 저작권 보호에 관한 지원을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다고 김 대표는 토로했다. 영화·음악·만화의 경우 업계 전체가 저작권 침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반면, 일반소설을 출판하는 업계에서는 장르문학 업계에 비해 저작권 문제로 인한 피해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공동대응이 어렵다고 분석했다. 해법은 불법 다운로드 받을 곳을 없애는 것이다.

정부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일반문학 쪽에 있다는 점도 장르문학계의 어려움이다. 김 대표는 “문피아를 경영하기 전까지 정부의 지원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스티븐 킹이나 댄 브라운 등은 외국의 장르문학 작가로 존중해 주면서, 한국 작가들에 대한 대접은 그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한국에도 해리포터 못지않은 글을 써낼 능력 있는 작가들이 있다”며 작가 융성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은 정부의 창작지원금을 받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었다.

문피아는 웹소설의 영어와 중국어 번역사업을 준비 중이다. 우리 시장 규모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해외로 나갈 필요가 있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K-pop 등 소위 한류가 게임, 드라마, 영화, 음악 등에 지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류에 소설은 들어가 있지 않아요. 텍스트는 원천 콘텐츠이기 때문에 여기서 영화, 게임, 드라마 등으로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가 가능해진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세계 시장 진출을 통한 소설 한류의 시작, 후배작가 육성, 웹소설과 전자출판 등 새로운 시장 개척까지…. 김 대표는 늘 크고 높은 꿈을 향해 한발 빠르게 움직여 왔다. 그와 동료들이 구축해 놓은 토대와 패러다임 위에 젊은 작가 및 출판업 지망생들이 새로운 그림을 그려 주기를, 그래서 청출어람의 전자출판과 1인 출판이 탄생하기를 김 대표는 소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