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증적 인간 에드바르트 뭉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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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신경증적 인간 에드바르트 뭉크 [그림을 읽다:GREAT ARTIST] ⑦에드바르트 뭉크

기사입력2015-09-14 18:06

류장복 화가 (jangboki@lycos.co.kr) ㅣ다른기사보기

생의 불안을 한편의 심리극처럼 그림의 무대에 올려

뭉크의 그림이 우리의 눈을 파고드는 것은 흙으로 돌아가려는 죽음의 충동이라는 상징적 이미지 때문이다. 그의 이미지는 마음속 깊숙이 쌓여 있는 근원적인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난 절규하는 자연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갑작스럽게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서 선과 색이 몰려 들어 나를 마비시켰습니다. 질식할 것 같은 현실의 한복판에서, 그 풍경이 나를 위협했기 때문에 이 그림을 그린 것은 그 풍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뭉크의 절규를 보고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

뭉크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절규>는 벌겋게 세상을 물들이는 노을을 배경으로 다리 위에서 동행하던 두 명의 일행과 떨어져 혼자 돌아선 채 두 손으로 감싸듯이 귀를 막고, 오그라드는 두 눈을 향해 흐물흐물 거리는 얼굴의 반신상을 전면에 배치했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이미지인데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곧장 파고드는 데가 있다.

뭉크는 생의 불안을 한편의 심리극처럼 그림의 무대에 올렸다. 그의 이미지는 어느 순간 불안 그 자체가 되어 감상자의 마음을 옥죄어 들었다. 현실과 꿈 사이 어디쯤에 있는 그의 그림은 실존세계로부터 비롯되는 심리적 환상을 풍요롭게 드러내고 있었다.

내면과 외면의 경계에서 문명과 섞이기를 거부

“난 무엇이 됐든지 간에 셋이 되는 걸 싫어합니다. 나머지 한 명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어 다른 하나를 소외시키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늘 신경과민 상태였다. 주변에 사람들이 얼쩡거리는 걸 참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밤낮으로 라디오를 틀어놓았다. 기차역 구내식당에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가운데서 혼자 밥을 자주 먹었고, 혼자 떠나는 여행을 즐겼다. 홀로 낯선 곳이나 군중 속에 있을 때 그는 편안함을 느꼈다.

결코 섞일 수 없는 자신을 고수하면서도 외부를 향한 그리움을 어쩔 수 없어서 그는 스스로 외로움을 누렸다. 여성의 몸을 찬미하고 갈구하지만 사랑을 하지는 못하는 식이었다. 누구도 자신의 영역안으로 들어오는 걸 꺼려했으면서도 한편으로 그는 살 냄새 나는 떠들썩한 소음을 자발적으로 찾아다녔다.

“내게 그림그리기는 일종의 중독성 있는 질병입니다!”

뭉크는 내면과 외면의 경계지역에 거주하며 문명과 섞이기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는 오직 그림으로만 세상과 최소한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그림은 생의 불안 자체였다. 그는 건축물의 벽장식 띠로 스스로 기획한 작품 ‘생의 프리즈’에 기초하여 사랑, 병, 죽음과 번뇌를 그렸다. 그의 붓끝은 원초적인 본능으로 끓어오르는 마음을 겨냥하여 무표정한 일상을 째고 들어가 어둠 속에서 벌떡이는 내면의 동물성을 수시로 건드렸다.

수천여점에 달하는 유작, 오슬로 시에 기부

뭉크의 마돈나를 보고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

뭉크는 종교적 신념으로 빈민촌을 돌보던 의사와 활달한 성격의 젊은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날 때부터 병약했던 그는 평생 죽음의 검은 천사와 함께 살았다. 5살 때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잃었고 14살 때 한 살 많은 누이를 같은 병으로 잃었다. 20대 파리 유학시절에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사별해야 했다. 30대에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동생을 지병으로 떠나보내야 했고 여동생을 정신병원에 보내야 했다.

전통과의 단절을 시도하는 아나키즘의 자유주의가 널리 퍼져있었던 세기말과 세기 초를 지내오면서 뭉크는 늘 사랑에 실패했다. 보헤미안 기질이 다분했던 연상의 유부녀와 6년 동안에 걸친 사랑으로 몸부림을 쳤지만 20대의 젊은 뭉크는 결국 휑한 가슴을 안고 파리 유학길에 올라야 했다.

30대에 들어서서는 베를린의 젊은 무리들 가운데 빛나는 한 여인에게 구애를 했지만 시인이었던 친구에게 사랑을 빼앗기고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어쩌지 못해 방황했다. 39세의 뭉크는 여인의 격정적인 구혼에 휘말려 그녀의 총기오발로 인해 손가락 한마디를 잃는 부상을 당했다. 큰 충격에 빠진 그는 이 사건 이후로 신경증적 피해망상에 시달려야 했다. 거의 매일 술에 절어 있는 상태에서 폭력사건에 자주 노출되었다. 그는 정신과 치료와 요양을 번갈아가면서 40대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다.

50대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나름대로 혼자 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정신적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그의 그림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핏줄이라고 유일하게 남은 여동생과 이따금 만나는 일을 제외하고 거의 그림에 파묻혀 살았다. 극소수의 사람들만 그의 작업실에 드나들 수 있었다. 뭉크의 삶은 시종일관 단조의 우울함이 지배했다. 그의 삶은 의문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삶의 평범한 기쁨을 누릴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그림 안으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그림은 일기였다. 뭉크는 끊임없이 기억을 되새김질했다. 같은 그림을 여러 해에 걸쳐

다시 여러 장 그렸다. 같은 기억 속에서 퍼 올린 감정이 그림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그는 자주 유화를 석판화나 목판화로 옮겼다. 그는 궁핍하지 않은 이상 평소에 그림을 잘 팔지도 않았다. 그림으로 남아 있는 과거의 추억 속에 묻혀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회화 1,008점, 판화 15,039점, 드로잉과 수채화 4,443점, 조각 6점을 남겨 고스란히 오슬로 시에 기증했다.

프랑스 혁명이 부르주아의 승리였다면 이제는 노동자들의 차례라고 말했던 뭉크는 늘 소수자 편에서 그들을 옹호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군에게 점령당했을 때 늙은 뭉크는 시를 떠나지 않았다. 적대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칩거하고 있던 1943년 겨울, 탄약고에서 대폭발사고가 일어나 그의 집 유리창이 모두 박살났다. 그때 80세의 생일을 막 지낸 뭉크가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랫동안 우두커니 계단에 서있었다고 사람들은 증언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기관지염으로 악화된 감기가 원인이 되어 그는 세상을 떠났다.[글=류장복 화가 jangboki@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