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볼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프린트

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신성한 볼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그림을 읽다:GREAT ARTIST] ⑨미켈란젤로

기사입력2015-10-28 19:39

류장복 화가 (jangboki@lycos.co.kr) ㅣ다른기사보기

“그저 돌덩어리에 불과한 하얀 대리석을 뚫어지게 보십시오. 그리하여 완전한 상(像)이 돌에 투영되면 그때 정을 들어 불필요한 돌을 떼어냅니다. 돌을 깨고 나온 볼륨의 덩어리에 최종적으로 신의 입김을 훅 불어넣으면 영원한 생명의 조각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회화는 조각처럼 입체적으로 그릴수록 좋지만 조각은 회화처럼 납작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조각이 더 우월하다고 미켈란젤로는 주장했다. 그는 교황 율리시스 2세의 주문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를 그리며 바티칸에 머물고 있었을 때도 늘 피렌체의 조각가 아무개로 서명하며 조각가로서의 자긍심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그린 그림들은 채색된 조각 같다.

“이번에 그려야 할 리비아의 실비아는 예수의 도래를 알린 무녀다. 지혜를 상징하는 남성적인 몸과 커다란 책을 결합하여 인문주의의 덕목을 강조하면 무녀의 미신적인 이미지를 없앨 수 있을 거야.”

미켈란젤로의 시빌라의 무녀를 위한 밑그림용 소묘를 보고,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

미켈란젤로는 젊은 남자를 모델로 세워 놓고 무녀 시빌라의 이미지를 찾아 그리기로 했다. 미술가에게 해부학은 필수적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선 인체의 동작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많은 화가들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위해서 실제로 거의 불가능한 인체의 포즈를 만들어서 그렸다. 미켈란젤로 또한 신성으로 충만한 영혼의 몸짓을 찾아 골몰했다. 그는 얼마 전 발굴된 위대한 고대 석상 라오콘을 보고 받은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천정화를 그리고 있었다.

“신성한 품위를 지니고 있는 유려한 동작이 되려면 몸이 더 비틀어야겠어. 옷의 주름은 많지도 적지도 않아야 해. 전체적으로 밝은 감청색과 붉은 오렌지색이 대비되도록 처리하면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미켈란젤로는 중얼거렸다. 그는 지푸라기로 만든 허수아비에 천을 씌워 적당한 주름을 만들어 놓고 여러 장을 스케치했다.

신플라톤주의에 심취한 미켈란젤로

신중하게 구상을 마쳤으면 제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러가지 준비 작업을 해야 한다. 먼저 실제 벽화 크기의 밑그림용 종이를 준비하여 격자모양으로 기준선을 긋는다. 기준선을 바탕으로 작은 스케치의 원화를 확대하여 전체의 윤곽선을 구한다. 그런 다음 윤곽선을 따라 무수히 많은 바늘구멍을 낸다. 한편 벽에는 회반죽을 발라 바탕 작업을 해둔다.

프레스코는 젖은 회벽에 스민 물감이 함께 마르면서 착색되는 벽화기법이기 때문에 회반죽이 촉촉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 따라서 바탕 작업은 그날의 작업 분량만큼만 해두어야 한다. 바탕 작업이 다 되었으면 젖은 벽에 밑그림을 붙여 놓고 바늘구멍을 따라 해먹으로 톡톡 친다. 그러면 벽에 점선의 윤곽이 생긴다. 이 윤곽을 바탕으로 화가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구름다리 모양의 비계(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를 타고 올라가 임시로 여러 개의 촛불로 만든 샹들리에를 밝혀두고 그 밑에서 작업했다. 그는 조수들의 솜씨를 못 미더워 해서 늘 그 혼자 묵묵히 그림을 그렸다. 바가지 모양의 천정은 바닥으로부터 20미터나 높았고 창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작업대가 있었기 때문에 작업 환경은 항상 컴컴했다. 그는 어른거리는 촛불 아래에서 시종고개를 뒤로 젖힌 채로 그림을 그려야 했다. 물감은 눈과 입을 가리지 않고 뚝뚝 떨어졌다.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로 그려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리비아의 시빌라를 보고,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

“진리를 향한 길에 진리에 대한 생각이 있다. 저기 풀밭으로 가는 길에는 풀밭이 없지만 사유의 힘으로 풀밭의 가장자리에 닿을 수 있다. 진리를 향한 여정 속에서 진리에 대한 생각으로 진리의 실마리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는 신플라톤주의에 심취했다. 신플라톤주의는 신과 인간의 조화로운 연결을 시도한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 때문에 결코 신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한다. 신의 정신세계는 완벽하지만 인간의 물질세계는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장인의 몸으로 단련된 미켈란젤로는 매번 작업에 들어갈 때마다 자신과의 싸움을 감행했다. 모든 건 신의 뜻이므로 매 순간, 밑그림에 맞추어 물감이 잘 스며드는가를 살피면서 붓을 놀릴 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기꺼이 고난에 임하는 수도사의 수행과 다름없었다.

거액의 재산 남겼지만 정작 자신은 소박하게 생활해

강직한 성품으로 검소하게 살았던 피렌체의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돌가루 날리는 거친 작업장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는 일감을 받아내고, 조수들을 부리며,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언제나 열정을 다해 작업했다. 부러진 코와 짧은 머리, 곱실거리는 수염과 움푹 들어간 눈을 가진 그는 다부진 몸에 두툼한 손으로 마치 돌 속에 갇힌 사람을 파내기라도 하듯이 온 힘을 쏟아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를 파고들었다. 그는 성격이 괴팍해서 주변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진 못했지만 주문받은 작업만큼은 완벽하게 완수했기 때문에 교황을 비롯한 당대 세력가들의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곳 바티칸에서 나는 나를 더 많이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걱정거리도 많고 몸도 힘든 데 친구도 없습니다. 하지만 친구를 사귈 생각도 없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몰락한 관료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부모형제와 떨어져 지내면서도 늘 그들을 걱정하며 편지와 돈을 부쳤다.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삶의 무게를 덜기 위해 곧잘 시를 썼다. 자신을 위해서 한 것이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그는 죽어서 많은 부동산과 은행예금, 거액의 현금을 남겼지만 정작 자신은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했다. 1564년 2월 18일 오후, 나흘 전까지만 해도 석조장에서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다듬고 있었던 그는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