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는 없다? 명실(名實) 논쟁 속 한국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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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한국화는 없다? 명실(名實) 논쟁 속 한국화하기 [그림을 읽다:한국화] ①Korean way of Painting

기사입력2015-12-23 10:33

최익진 객원 기자 (ikchois@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최익진 작가, 중앙대학교 미술학부 겸임교수

최근 한국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그 관심의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한국화는 안된다고 하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출발한다.

사실 이런 논의는 비단 최근의 일도 아니며, 이미 삼십여년 전부터 시작되어 거의 4, 5년마다 미술 저널에서 특집으로 다루어 왔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러한 부정적 상황을 뛰어넘는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문제를 제기한 이론가들이나 이미지 생산자 모두 애써 외면하기 바빴다.

이론가들은 새로운 형식에 주목했으며, 화가들은 막연한 낙관론에 기울어 있었다. 혹자는 그것이 한국 그림의 적자(嫡子) 가리기에 대한 동, 서의 갈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 같은 우려의 바탕에는 한국화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온실 속 행보에 마침표를 찍는 일로, 자신의 존재적 기반에 대한 진지한 반성의 장이 적었던 것에 대한 비판적 바라보기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성의 차원에서 한국화의 실재를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강세황, 무이구곡도(부분 1, 6, 7곡), 25.5x406.8cm, 종이에 수묵담채, 조선 1753년

‘Korean Painting’이 아닌 ‘Korean way of Painting’으로

그같은 우려의 밑바탕에는 ‘한국화에는 한국화가 없다’는 명실(名實) 논쟁이 있다. 그런데 종종 명칭이란 기본적으로 개념으로서 실제 대상의 여러 내용 중에서 특징적인 일부분만 나타낼 뿐 전체를 있는 그대로 표상하지 못한다. 한국화도 먼저 어떤 포괄적 의미의 명칭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는 그림을 분류했던 것이 아니라, 전달 편의상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한국화라는 이름의 계보를 살펴보면 조선시대까지는 서화(書畵)로 불렸으며, 식민지 시기인 1922년 문화통치의 핑계로 조선미술전람회라는 제도 속에서 만들어진 동양화(서양화), 그리고 1983년 개정된 미술 교과서 이래로 현재까지 한국화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화라는 명칭의 탄생은 우리에게 민족 담론이 강조되는 시기인 1970년대에 형성되었다. 이렇게 민족 담론이 강조되는 시기는 원래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비슷한 시기에 전통적인 형식에 기반을 둔 그림을 중국에서는 ‘국화(國畵)’로, 일본에서는 ’일본화(日本畵)’로 북한에서는 ‘조선화’로 명명하였다. 그러한 지점 연장선에서 ‘한국화’라는 명칭은 자못 위태로워 보일 수 있다.

변관식, 금강산삼선암, 31x41cm, 종이에 수묵담채, 대한민국 1968년

‘한국화(동, 서양화)에는 한국화(동, 서양화)가 없다’는 명제가 참인 것으로 간주하기에는 ‘한국화(동, 서양화)’의 범주를 지역 즉, 공간적 사고로만 제한하는 경우에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 중심에서 바라본 동쪽과 아시아 중심에서 바라본 서쪽으로, 사실상 실체가 없는 가상적인 공간 개념일 뿐이다.

하나의 명칭이 생겨나는데는 시간 축적이 필요하다. 따라서 한국화의 범위를 지역적 상대개념만이 아니라 문화라고 하는 시간적 축을 함께 연계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명제는 참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화의 영역은 ‘Korean Painting’이 아닌 ‘Korean way of Painting’으로 해야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로썬 한국화란 이름이 오독될 여지가 있지만, 대체할 만한 이름이 아직은 없다.

‘한국화하기’는 현실에 기반을 둔 상상력의 결과물이어야

‘한국화하기’에 대한 비판적 시선에는 우리의 삶에서 전통적인 부분이 적어지고 있다는 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리 삶과 연계되지 못하는 전통가치는 그만큼 현실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전통적인 것이 주는 의미는 사라져 가는데, 그 사라져 가는 것에서 근본적인 모티브를 가져와야 하는 한국화 전공자들은 우리 화단의 역설적 조건을 온몸으로 안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자세히 관찰하면 전통적인 것이 근대적인 시공간의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해석되고, 새롭게 구성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통과 근대는 완전히 단절된 두 가지의 세계구성 방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화해(和解)되고 있다.

전기, 매화초옥도, 29.6x33.3cm, 종이에 수묵담채, 조선 19세기

‘한국화하기’는 어떤 고정된 원형의 전통에 대한 무작정의 집착이기보다는 어떻게 한국적인 삶의 양식(Korean way of Life)이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어 가는가에 대한 내적 성찰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본다.

장자는 ‘도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행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사물들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道行之而成物謂之而然 - 莊子齊物論)’라고 말했다. 주자는 ‘시중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존재한다(蓋中無定體隨時而在 - 中庸章句)’라고 했다.

한 번 정해졌다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전통은 없다. 우리가 우리 시대에 맞게 발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전통이다. 과거의 것을 그대로 지키기만 하는 것은 전통이 아니라 인습이다. 따라서 전통의 본질은 어떤 고유한 것에 대한 수동적 지킴이 아니라, 일상의 구체적 삶 속에서 우리의 것이라는 맥락을 역동적으로 상상해 낼 결과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화하기’는 전통적인 미술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일 수는 없다. 우리의 현실에 기반을 둔 오늘날의 삶 양식에 대한 상상력의 결과물들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