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 재현에만 매달린 예술사진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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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미적 재현에만 매달린 예술사진에 묻다 [장정민 미술평론가의 포토 리뷰]③김윤호의 사진없는 사진전

기사입력2016-03-07 19:13

장정민 객원 기자 (viumgraphy@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장정민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연구원, 미술평론가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사진이다. 필름 없는 사진이 가능해지고 인터넷이 보급되자 사진을 취미로 삼는 사람의 수는 급격히 늘었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공유하고, 사진과 관련된 기술적 정보 등을 나눔으로써 상당한 수준을 가진 아마추어 사진가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이 간과되고 있었다.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그것이었다. 물론 사진을 순수한 취미로 여기는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 작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소위 예술사진은 대상의 미적 재현에만 매달려

Kim Yunho, One Stone, Lightjet print, 142x174cm, 2010

김윤호는 사진을 찍고 전시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무엇보다 그는 사진, 그 중에서도 예술사진이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그는 작업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내고자 애썼다. <사진전>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내보인 그의 2010년 전시는 바로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냉정하게 말해 이전까지는 아마추어 사진가들만이 아니라 순수사진 혹은 예술사진을 전공한 이들조차 사진의 본질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저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대중과 평단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두어온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 자체를 작업으로 풀어낸 그의 전시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사진전>에서 그는 예술사진을 찍는답시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대상을 포획하기에 급급한 사진 촬영방식의 허구성을 재현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소위 언필칭 예술사진이라 일컬어지는 사진들이 지닌 허와 실을 사진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다른 사진가들과 달리 촬영 대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우선 그의 사진을 보면 촬영용 조명 기구가 등장하고 있으며, 그것이 특정한 대상을 비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사진 속에는 나타나지 않는 가상의 사진가가 무엇을 촬영하고자 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해 그 가상의 사진가는 대상 그 자체의 재현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것이 존재하고 있는 주변 환경 및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Kim Yunho, A Pink Lotus Flower, Lightjet print, 62.5x52.3cm, 2010

이처럼 김윤호는 가상의 사진가 뒤에 서서 대상을 프레임에 조형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그것을 아름답고 독립적인 의미의 완결체로 제시하려는 태도를 비판적으로 재현하였다. 소위 예술사진이란 것들이 대상의 미적 재현에만 매달린 채 대상이 지니는 진정한 의미는 외면하고 있음을 드러냈던 것이다.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는 사진전 열기도

사진에 대한 그의 존재론적 고민은 이후로도 더욱 심화되었다. 2013년에 열린 그의 전시 <사진전II>는 바로 사진에 대한 메타 비평적 작업의 또 다른 결과물이었다. 이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전시장 바닥을 가득 채운 노트들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것들은 모두 사진에 대한 대표적인 책 세 권을 꼼꼼히 필사한 결과물들임을 알 수 있다. ‘사진기술개론’, 보먼트 뉴홀의 ‘사진의 역사’,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이 바로 그것들인데, 이 책들은 각각 사진의 기술, 역사 그리고 이론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이 필사본은 그간 김윤호가 얼마나 사진 그 자체에 다가가고자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징표라 할 수 있다. 그는 사진에 대한 책들을 필사하는 수행을 통해 사진의 본질에 닿으려 애썼던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예술사진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녹음한 음성을 수집함으로써 그들이 생각하는 예술적인 사진의 정체를 밝힌다. 실제로 이 음성 기록물에는 예술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표현들이 녹음되어 있다. 그리고 표현은 다르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 개념이 존재함을 쉽게 깨닫게 된다. 대개 사람들이 사진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볼 때 그것을 일종의 ‘그림’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진에 대해 “예술이네요”라는 반응이 “그림같네요”라는 표현과 오버랩된다는 점은 이를 명확히 방증한다.

사진전II 전시정경

김윤호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텍스트(문자)를 캔버스 위에 아로새긴 작업들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는 일차적으로 카메라가 가리키는 대상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해주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사진에 대한 감상자의 반응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관객들이 예술사진에 기대하는 것은 대상을 재현하는 사진의 능력이 아니라 사진 전체의 컬러, 대상의 형태, 전체적인 분위기 따위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김윤호는 특정 주제에 따라 대상을 선택하고 그것을 조형적으로 재현하는 일반적인 사진 작업의 틀에서 벗어나 있다. 오히려 그는 예술사진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그 고민의 과정을 사진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형식들로 재현하는데 기꺼이 모든 것을 바쳤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사진전II>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는 사진전이 되기도 했다. 사진‘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대한’ 전시를 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을 것이다. 사진이 아무리 그림처럼 보인다 한들 사진은 언제나 카메라 앞에 놓일 대상을 필요로 하며, 그것은 분명 이 세상에 존재했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김윤호는 이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수많은 사진전에 대해 묵직한 경종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