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음이자(同音異字), 고사 인용, 우의(寓意)적 표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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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동음이자(同音異字), 고사 인용, 우의(寓意)적 표현 방식 [그림을 읽다:한국화] ④서화를 읽는 세 가지 방법(書畵讀畵三法)

기사입력2016-03-11 10:11

최익진 객원 기자 (ikchois@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청자 모자 원숭이 연적, 지름6x높이10cm, 청자, 고려(12세기)

2016 병신년(丙申年)은 붉은 원숭이의 해다. 서양에서 원숭이는 간사하고 잔꾀가 많아 성실하지 않은 부정적인 동물로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동양에서 원숭이는 예부터 민첩하고 영특한 동물이라고 생각해 왔다. 특히 도교에서 영향을 받아 원숭이들이 서식하는 곳이 무릉도원의 상징으로 묘사됐다.

목계가 그린 <원후도>와 명나라 선종이 그린 <희원도>,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 원숭이 모자 연적>을 보면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인 후(侯)와 제후를 지칭하는 후(侯)와 발음이 같아 배배봉후(輩輩封侯) 즉, 대를 이어 고관대작이 돼라는 뜻의 길상 의미를 작품에 담고 있다.

동·서양의 미술은 같은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와 화면 구성법 역시 달랐다. 묘사하고자 하는 내용의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의미에 관심이 많았던 서양미술에 비해 동양미술은 나타내려는 의미를 상징화시켜 표현하는 방식이 지배적이었다.

전통미술을 읽어낼 수 있는 상징의 체계에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이전에 있었던 고사(古事)나 유명한 글귀에서 유래된 이야기로 구성하는 법과 우의(寓意)를 적용해 구성하는 방식, 그리고 발음상 유사한 한자에서 유추할 수 있는 동음이자(同音異字)의 방식이 그것이다.

변상벽, 묘작도(猫雀圖), 비단에 채색, 93.7x43cm, 조선후기

동양 미술은 재현적인 방식으로 대상을 드러내기보다는 이미지가 갖는 상징성 또는 이미지 전후좌우에 있는 텍스트에 의한 맥락을 드러내는 방식이 많았다. 붓을 다루는 방식에서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을 주장한 장언원이나, 전달할 의미를 그려내는 방식을 강조한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畵中有詩)’를 설파한 소식처럼 글(書)과 시(詩) 모두 문학적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이미지에 선행하는 그 이야기를 알아야 온전히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상징1:동음이자(同音異字) 방식으로 표현

그림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의 뜻을 전달하고자 하는 창작자의 입장을 알아야 한다. 옛 그림인 서화는 화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문구로 미리 정하고, 이 문구와 발음이 같은 사물을 선정하여 그림으로 구성하는 방식이 많았다.

예를 들면 조선 시대 변상벽이 그린 <묘작도(猫雀圖)>를 보면 참새들이 나뭇등걸에 폴짝 올라탄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정답게 노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사실적이지 않다. 이 그림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면 고양이 묘(猫)자와 70세 노인 즉 고희(古稀)를 뜻하는 모(耄)자와 중국의 발음이 같고, 참새 작(雀)은 까치 작(鵲)과 발음이 같아 기쁨을 상징한다. 중국에서는 노란 참새인 황작(黃雀)이 기쁨을 뜻하는 환락(歡樂)과 음이 유사하여 노란 참새 6마리와 암수 고양이를 그린 것으로 <묘작도> 혹은 <모질도(耄耋圖)>라 부른다.

이 그림의 원뜻은 6명의 자식을 가진 부부가 나란히 맞는 고희연을 축하하기 위한 그림이다. 동음이자의 방식으로 그린 다른 그림으로는 안중식의 <노안도>가 있다. 갈대(蘆)와 기러기(雁)를 그린 그림으로 발음상 老安과 같아 늙어서 평안하게 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그림이다. 이 노안도에 달이 함께 그려진 경우는 老安樂을 의미한다.

상징2: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우의(寓意)적 방식

이도영, 기명절지도, 한지에 수묵담채, 34x168.5cm, 조선말기

서화를 읽는 두 번째 코드는 우의(寓意)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이러한 방식의 대표적인 예가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이다. 이 그림은 자칫 잘못 읽으면 서양의 정물화쯤으로 오인하기도 하여 몇몇 대학에서는 아직도 입시 미술에서 정물화의 대용으로 파악하고 있다. 기명절지도에서 등장하는 여러 소재는 모두 각각 의미하는 바가 있다.

구리그릇은 평안(平安)을, 그 아래 불수감(佛手柑)은 복(福)을, 그 옆 백합꽃 뿌리는 백 가지(百)를, 모란꽃은 부귀를, 불로초는 여의(如意)를, 땅콩은 장생(長生)을, 뒤편 큰 접시에 담긴 큰 귤(橘)은 대길(大吉)을, 그 앞에 수석은 수명(壽)을, 국화꽃은 유유자적한 생활을, 벼루 앞에 있는 밤과 대추는 일찍 손자를 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안중식, 도원문진도, 비단에 채색, 164.4x70.4cm, 1913년

이 그림의 소재들은 학문을 닦는 선비 방에 어울리기보다는 부귀, 평안, 백가지 복(百福), 늙지 않음(不老), 만사여의 등 지극히 세속적인 영화를 바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징3:고사(古事)나 유명한 글귀를 인용해 표현하는 방식

서화를 읽는 세 번째 코드는 고사(古事)나 유명한 문장을 인용하여 구성하는 방식으로 조선 시대에 가장 널리 유행한 주제는 ‘도원(桃源)’이라는 이상화된 공간이었다.

도가(道家)에서는 세속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을 따라가는 삶을 이상으로 여겼다. 이러한 삶은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유래한 것으로, 진나라 때 한 어부가 우연히 복숭아꽃 숲을 따라가다가 작은 마을에 발견하였는데, 그곳은 당시 전쟁을 피해 이주한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따뜻한 대접을 받고 돌아온 어부는 다시는 그곳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도화원기에서 파생된 도원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낙원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조선시대 많은 선비가 암송한 이백의 시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을 그린 ‘도화문진도’가 있다. 이 시를 보면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기에, 다만 웃음으로 답하니 마음이 한가하다. 복숭아꽃 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니, 이곳은 인간세계 아닌 별천지라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