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뒤에 숨은 카메라의 초상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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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거울 뒤에 숨은 카메라의 초상사진 [장정민 미술평론가의 포토 리뷰]⑤전민혁의 인물사진

기사입력2016-05-06 17:41

장정민 객원 기자 (viumgraphy@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사람들이 살면서 가장 많이 보는 사진은 아마도 사람을 찍은 사진일 것이다.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가족 앨범 속 사진, 각종 신분증과 서류들에 사용하는 증명사진, 넘쳐나는 광고에 사용되는 사진까지 사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무궁무진하다. 동시대 시각 예술에서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 작업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인물 사진들은 앞서 언급한 사진들에 비해 어딘지 난해한 첫인상을 풍기는 경우가 많다. 전자의 인물 사진들의 촬영 의도는 명백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걸린 인물 사진들은 추억이나 증명 혹은 소비의 촉진이라는 명백한 목적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당신이, 당신을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_중년남성, 80X100cm, 피그먼트 프린트, 2010/Not for Nothing_이쁜이, 피그먼트 프린트, 114 x 91.5 cm, 2011

얼핏 보기에 전민혁의 작업 또한 여느 인물사진 작업처럼 난해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우선 흰 바탕에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증명사진과 유사한 형식을 지니고 있어서 이것이 과연 ‘작품’ 사진인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게다가 인물들 사이에 어떠한 공통분모도 없어 보인다는 점은 이런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의 사진과 유사한 형식의 사진들이 대개 특정 집단이나 공동체를 다루는 유형학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 의도를 비교적 쉽게 드러냈던 것과는 달리, 그의 사진 속 인물들 사이엔 어떠한 동질적 요소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인물들의 자세나 표정이 일반적인 증명사진에 비해 조금 더 자유로워 보이고, 사진 곁에 수기로 작성한 듯 보이는 텍스트가 함께 배치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의 작업은 서서히 감춰졌던 의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이 텍스트는 사진 속 인물들이 어떻게 촬영되었고, 왜 촬영되었는지에 대한 명쾌한 정보를 제공한다. 텍스트를 읽자마자 그것이 사진 속 인물에 의해 직접 작성되었고, 촬영 당시 자세히 관찰한 자기 얼굴에 대해 기술하고 있음이 밝혀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특정한 분류 체계에 따른 집단의 초상이 아닌, 자신의 얼굴을 집요하게 탐구하는데 몰두 중인 사람들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사람들에게 평소보다 오래, 그리고 집중해서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볼 것을 주문했고, 이를 사진으로 촬영했다. 이를 통해 그는 한 개인에게 수많은 자아가 공존하고 있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집단의 유형을 드러내려 했던 초상 사진의 통상적 어법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거울을 응시 중인 사람의 얼굴을 도대체 어떻게 정면에서 촬영할 수 있었는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극을 즐겨 봤던 이라면 이 수수께끼를 비교적 간단하게 풀 수 있을 것이다. 외부에서 내부는 보이지만 내부에서 외부는 볼 수 없는 취조실의 유리를 곧장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전민혁은 한쪽은 거울이고 다른 한쪽은 유리인 하프미러를 통해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 이를 통해 촬영 대상은 거울을, 작가는 거울 뒤에서 그들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초상사진의 새로운 가능성 보여줘

당신이, 당신을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_윤혜, 80x100cm, 피그먼트 프린트, 2010/Not for Nothing_생명 유지기, 피그먼트 프린트, 114 x 91.5 cm, 2011

대상의 정면을 담기 위한 기술적 목적 외에도 하프미러는 작업의 본질적 목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그의 말처럼 이 작업의 목적은 “촬영자가 인물을 탐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피사체가 되는 인물이 자신을 탐구”하는 모습을 포착하는 데 있었다. 그가 하프미러뿐만 아니라 사방이 막힌 세트 속에서 인물들이 거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만약 피사체가 된 인물들이 카메라의 렌즈를 의식했다면 자신의 얼굴과 자아에 집중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 뻔하다. 렌즈를 의식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표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민혁의 초상사진은 기존의 초상사진이 보여준 전통적 틀을 교묘히 벗어나는 시도를 실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는 특정한 집단을 향해 카메라를 겨누지 않았고, 동시에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람들의 초상을 재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초상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독자들에게 자신이 찍힌 수많은 사진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 보기를, 그리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한동안 꼼꼼히 살펴보기를 권유해본다.[장정민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연구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