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시각예술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은 사진 발명 초기와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 사진을 가리켜 예술사진이라 일컫는 것인지 딱 잘라 말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예술사진이란 그림 같은 사진, 다시 말해 현실을 재현하되 현실을 초월한 듯 보이는 어떤 것이란 고정관념도 팽배하다. 사진을 다른 시각예술 분야보다 유독 회화에 비견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사진은 20세기 이후 전개된 레디메이드, 오브제, 개념미술, 대지미술, 퍼포먼스 등과 같은 다양한 흐름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므로 사진의 예술성을 오직 대상에 대한 기계적 재현 능력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이제 매우 순진한 생각이 되고 말았다. 이제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박형렬의 땅과 대지에 대한 작업을 살펴보자.
대지를 소유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인간의 태도 직설적으로 묘사
The Captured Nature_Tree#4, Pigment Print, 144x180cm, 2011
방금 이야기했듯 박형렬의 카메라는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땅을 재현한다. 대중에게 자신을 알린 (2010~2012) 연작으로부터 현재 계속되고 있는 그의
(2013~ )까지 그동안 그는 땅이라는 공간 혹은 개념에 대해 탐구해 온 것이다. 사실 땅 혹은 대지에 대한 작업들은 수많은 도시사진들을 통해 이미 충분히 다루어져 왔기에 그다지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박형렬은 단순히 특정한 유형의 땅을 찾아내 기록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는 적극적으로 땅에 개입해 그것의 의미를 따져 물으며, 그 결과를 사진으로 기록해 남겨왔던 것이다.
우선 에서 그는 대지를 소유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인간의 태도를 직설적으로 묘사한다. 그의 사진 속에서 사람들은 스티커, 끈, 비닐봉투, 천 등을 포획 장치 삼아 자연-대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특히 안개 낀 바닷가에 꽂힌 수많은 액자들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자연’은 액자 속에 담기자마자 ‘풍경’이 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인간이 소유하여 향유하는 대상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인간중심주의적 사유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인간을 자아로 그 밖의 모든 것을 타자로 설정하는 이분법적 세계관, 그리하여 모든 타자를 정복과 소유의 대상을 설정하려는 태도에 대한 비판적 성찰까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대지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작업과 맥락을 같이 하지만, 더 이상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러한 변화는 두 연작의 제목에서부터 명백히 드러난다. 기존의 작업이 대지를 포획(capture)하려는 인간의 행태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말 그대로 형태(figure)에 대한 탐구임을 언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를 품은 대지의 모습을 재현한 는 매우 ‘정적’으로 보이며, 이는 포획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동적’인 분위기와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이 작업 역시 대지와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작가가 땅에 의도적으로 만든 기하학적 형태들은 ‘인위적’인 것이며, 그것은 땅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박형렬이 도입한 기하학적 도상들은 형태가 없는 것에 형태를 부여하고, 쓰임이 없는 것에 쓰임을 부여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동시대 시각예술에서 사진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반추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그는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그러하듯 발견과 기록이라는 단순한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대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그 결과물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전략은 과거의 대지미술을 떠올리게 한다.
가령 로버트 스미드슨의 <나선형 방파제>는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지만, 오늘날 그것은 오직 사진이라는 형태로만 감상된다. 장소 특정성에 발목 잡힌 예술작품은 결국 사진을 통해서만 유통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사진만을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소 특정성은 사진과 달리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관객이 실제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시각적 체험 자체도 사진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은 박형렬의 작업을 통해 ‘지금, 여기’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 되어버린 사진이라는 대상을 동시에 감상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사진은 단순한 복제의 도구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장정민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연구원, 미술평론가
The Captured Nature_Tree#4, Pigment Print, 144x180cm, 2011
Figure Project_Earth#18, Pigment Print,144x180cm, 2013
Figure Project_Earth#21, Pigment Print, 144x180cm,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