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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앙트완 부르델 “건축적인 덩어리”
[그림을 읽다:GREAT ARTIST] ②앙트완 부르델
- 기사입력2015-03-29 15:56
(주)예술만세 객원 기자 (artmanse21@naver.com)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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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트완 부르델(Antoine Bourdelle 1861-1929)은 석회암 지형에 숲이 별로 없는 척박한 땅 몽토방에서 태어났다. 32살에 뫼동의 로댕 작업실로 들어갔고 15년 동안 조수로 일했다. 39세에 스테파니 반파리스에게 늦장가를 들었고 47세가 되어서야 스승의 곁을 떠나 독립했다. 2년 후 제자 클레오파트르 세바스토스와 재혼했다. 그 후 1929년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의 사생활은 지극히 평범했고 묵묵히 조각가의 삶을 살았다.
조각에는 인상주의가 필요치 않아!
부르델은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뭔가를 끌쩍거리거나 드로잉을 한 다음 작업실로 향했다. 작업실의 문이 열리자 작업대 위에 웅크리고 있던 흙더미가 아침햇살을 받아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움직거린다. 조각가는 작업대 앞에 서서 흙더미를 덮고 있는 헝겊을 천천히 걷어낸다. 서너 걸음 떨어진다. 부릅뜬 커다란 눈으로 바라본다. 커피 잔을 손에 집어 든다. 커피향이 흙냄새와 뒤섞여 작업실에 퍼져나간다. 그는 중얼거린다.
거대한 물결처럼 솟아 오른 부르델의 페넬로페,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몽토방의 전사! 절망감에 못 이겨 두 팔로 허공을 할퀴는 인간의 급박한 움직임. 곧 닥쳐오는 운명을 향해 던져진 투쟁의 몸짓 위로 죽음도 덮어버리는 고요. 무시무시한 공포로 몸서리치는 침묵의 아우성.”
부르델은 순간적인 감정을 뒤로 하고 구조의 본질을 향해 보편적인 리듬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전적인 건축의 요소를 조각에 끌어들여 스승인 로댕과 다른 길을 걸었다. 그에 따르면 공간 속에서 조각은 건축이 되어야 했다. 그는 조각의 윤곽이 공간의 여백과 어떻게 긴장을 유지하며 균형을 잡을지 늘 궁리했다. 실물 주조가 유행했던 당시에 부르델의 건축적인 조각은 상투적인 매끈한 다른 조각들과 완연히 구별되었다. 부르델의 조각은 거칠게 공간을 압도하며 우뚝 솟아 시선을 사로잡았다.
부르델은 기하학적 엄격함을 바탕으로 샹젤리제 극장의 벽을 조각적으로 형상화했다. 건축의 벽감과 조각의 받침대를 벗어난 조각은 건축의 윤곽과 결합하여 건축의 벽이 된다. 그는 조각의 받침대를 조각으로 편입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조각은 그 자체로 벽이 되고, 스스로 땅 위에 솟아오른 건축이 되어야 한다며 조각의 건축적인 존재감을 강조했다.
“조각에는 인상주의가 필요하지 않다. 빛과 그늘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윤곽으로 나아가야 한다. 언제나 윤곽, 모든 것이 집대성되는 윤곽으로 나아가야 한다.”
부르델은 덩어리의 안쪽으로부터 표출된 영혼을 바깥공간에 건축물처럼 굳건하게 세우려고 했다. 그는 바위덩어리 같은 무게감을 가진 매스를 추구했다. 로댕은 부르델과 자신을 명쾌하게 구분했다.
“나에게 중요한 일이 모델링이라면 부르델에게는 건축이다. 나는 감정을 근육 속에 가두지만 그는 양식 안에서 치솟게 한다.”-로댕
마이욜과 부르델
후세대에게 로댕은 넘어야 할 시대적 과제였다. 특히 오랫동안 로댕의 조수로 일했던 부르델은 스승을 넘어서야 했다. 그런 그가 추구했던 매스의 조각은 거대한 바위가 공기를 밀어내고 존재하는 것처럼 건축이 되는 것이다. 그는 고대 조각의 건축적 본질을 추구했다.
고요 속으로 사라지는 마이욜의 지중해,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모델의 세부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본래 거기 있었던 바위처럼 흙더미채로 건축이 되어야 해. 뼈대를 세워 골격을 만드는 것으로 이미 작품은 존재하기 시작하지.”-앙트완 부르델
부르델은 가구제조공인 아버지로부터 목공의 건축적인 감각을 얻었고, 돌을 쪼는 숙부에게서 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석공의 귀를 얻었다. 또 옷감 짜는 외숙모로부터 색채의 흐름을 배웠고, 양치기 할아버지로 부터 피리소리의 리듬을 익힐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마이욜이 추구한 볼륨의 조각은 몸통전체로 부풀어 올라 정중동의 움직임으로 공간을 호흡하려고 했다. 로댕이 빚어낸 조각이 치열한 살갗의 감정으로 살아있다면, 부르델의 건축적인 매스는 바위처럼 굳건하고, 마이욜의 숨 쉬는 볼륨은 태초의 고요함으로 돌아간다. 마이욜의 볼륨은 바다처럼 밀려온다. 그는 해부학적 사실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안에서 볼륨의 팽창력을 극대화시켰다.
“우리들의 시대에는 이미 신을 필요로 하지 않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자연을 따르는 것뿐이야. 난 인체의 조화로운 형태와 건축적인 균형을 통해 지고한 미를 발견할 때 진리의 위대함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부르델과 동갑내기인 마이욜은 종교적인 주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는 드라마틱한 종교적 서사 대신 태고의 고요함을 추구했다. 그는 여체만을 작품으로 조각했다. ‘지중해’의 웅크린 여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에게 여성은 소우주였다. 풍만한 여인의 조각상을 통해 그의 바람이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목격했던 야만적인 광란과 문명의 퇴락 반대편으로 투영되었다.
십여 년 전 파리에서 연이어 체험했던 두 거장의 입김이 지금도 따스하게 느껴진다. 마이욜에겐 가볍게 부풀어 오르는 볼륨의 팽창감이 있었고, 부르델에겐 바위 같은 매스의 묵직함이 있었다. 그들의 조각 작품 위로 두 조각가의 두툼하고 부지런한 손이 어른거린다.[글=류장복 화가 jangboki@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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