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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투명한 야생성 앙리 마티스(Henry Matisse)
[그림을 읽다:GREAT ARTIST] ④앙리 마티스
- 기사입력2015-06-07 15:00
(주)예술만세 객원 기자 (artmanse21@naver.com)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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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나를 덮쳐왔다. 하지만 선뜻 그림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구경꾼처럼 서성였다. 구경꾼은 그림이라는 사건 안에 속하지 않는다. 멀뚱거리며 물끄러미 한참을 둘러보다가 알 수 없는 감동이 일어났다. 순간 그림과의 거리가 사라졌다. 그림 안에 정중동의 고요가 있다. 그 속에 춤이 벌어진다. 허공 속에서 손에 손을 잡고 군무를 춘다. 실바람에 날리는 깃털 같은 서로를 붙들고 세속에서의 고단함을 위로한다.
마티스의 춤을 보고,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주홍으로 번지는 붉음과, 희끄무레 피어오르는 청색과, 노랑과 파랑이 한바탕 뒤엉킨 후에 오는 차분한 푸름이 있다. 녹색 땅이 붉은 색의 열정을 부르고 청색 하늘이 오렌지의 따스함을 부르며 서로를 맴돈다. 한없이 가벼운 춤사위가 중력을 벗어나 무위공간의 진공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얼핏 보기에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일획(一劃)을 마티스는 어떻게 저리도 조심스럽게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음악에서 음 하나는 그림에서 색 하나입니다. 음악에서 음향을 보존하듯 색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보존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대부분의 여정이 색의 신선도를 보존할 수 있는 특정한 배열을 찾아서 조직하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검은 윤곽선에 색을 가두는 순간 아름다운 색의 고유함은 파괴됩니다. 진동하는 색의 확장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규정된 범위를 넘어서는 색의 확장성이 한계에 도달할 때쯤에 이르러서야 이웃의 색이 스며들 수 있는 중립지대가 생깁니다.”
마티스는 그림의 모든 요소를 색으로 환원시켰다. 그는 밤의 상상력을 펴는 대신 낮의 공간에서 불확정적인 눈앞의 지각세계를 탐구했다. 그에게 색은 자연의 빛을 반사하는 물고기의 비늘 하나하나와 같았다.
빨강, 파랑, 노랑으로 사람들의 관능을 자극해
“지난 50년 동안 한순간도 작업을 중단한 적이 없습니다. 아침 아홉시에서 열두시까지 작업을 한 다음 밥 먹고 잠깐 낮잠 잡니다. 그리고 다시 오후 두시에 붓을 잡아 저녁까지 계속 그립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말입니다.”
앙리 마티스는 늘 신중하고 예민했다. 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그가 법학공부를 중단하고 요양하던 중에 소일거리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다른 유명한 화가들과 달리 그는 일찌감치 천재성을 보이지는 못했다. 몇 차례의 낙방을 거쳐 파리의 보자르에 입학했고, 결국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를 이유로 학교 스튜디오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 독립해야 했다. 이후 전개된 그의 삶에 크고 작은 굴곡이 있지만 평범한 수준을 넘지 않았고, 그것은 그림의 안쪽에서 그림 자체를 탐색했던 그의 미학적 태도와 특별히 상관있어 보이지 않았다.
마티스의 꿈을 보고,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나는 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고집스러운 마티스는 늘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언성을 높이지 않았지만 가부장적 태도로 긴 설명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모든 것의 정해진 자리가 있었다. 그의 야수적인 감성조차도 자연의 흐름을 신중하게 따랐다. 그런 마티스를 두고 피카소는 말했다.
“내 그림에서 붉은 점 하나는 그리 중요하지 않지. 그걸 지워도 그림은 여전할 거야. 하지만 마티스는 그럴 수 없어. 아무리 작은 점 하나라도 없애버리면 그림 전체가 무너져버리기 때문이야.”
허약한 체질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던 마티스는 명료한 감각으로 자연의 고요한 인상을 좇았다. 그는 불안한 심연을 두려워하면서도 설렘으로 날것의 이미지를 길어 올렸다. 그에게 그림은 생성의 기운을 향해 반복적으로 거행되는 묵상의 수행이었던 셈이다.
마티스는 사물의 야생성을 감각적으로 좇았다. 상징과 의미작용은 관람자에게 맡겨두고 문학으로부터 회화를 독립시켜 또 다른 자연으로 취급했다. 미술사가 잭 플램은 마티스의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티스의 그림은 초점을 맞추려고 할 때마다 초점이 빗나가지요. 어떤 것이 다른 것을 돋보이게 하도록 섬세하게 구성된 그림은 초점을 거부하며 어디를 보든지 간에 동시에 다른 곳을 보게 합니다.”
“빨강, 파랑, 노랑으로 사람들의 관능을 자극해서 깨우려고 합니다. 그들이 내 그림을 보고 마음의 평정을 찾길 원합니다.”
마티스의 정신적 편집증은 무의식의 영역에 잠겨있는 야생성을 고통스럽게 긁어댔다. 갱년기에 이르러 고갈된 감성을 되살리기 위해 그는 남프랑스의 니스에서 10년 가까이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관능적으로 생동하는 누드 드로잉은 대부분 이 시기에 생산되었다. 살아있는 누드를 앞에 두고 그는 바람에 흔들리는 연기처럼 매번 다르게 그렸다.
80세의 늙은 마티스는 위험한 수술 끝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왔다. 제2의 인생을 살면서 그는 가위드로잉에 몰두했다. 가위드로잉의 간결한 색면은 그것과 그것이 아닌 경계를 남기고 모든 걸 사라지게 했다.
‘가위드로잉’의 정갈한 이미지가 뱅스 성당을 장식하자 사람들은 그가 평생 추구해온 생성의 영속성을 눈으로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화가들이 바라보는 화가였던 그는 그림 자체의 꼴과 색채의 울음소리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었다. 노년의 육체적 쇠락을 가위드로잉의 놀이로 승화시키면서 종이처럼 가벼워진 마티스는 1954년 85세의 나이로 생을 접었다.[글=류장복 화가 jangboki@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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