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청장 낙수효과 종언 “中企 중심으로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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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산업뉴스 중기청장 낙수효과 종언 “中企 중심으로 가야” 기업인 출신 주영섭 청장 “R&D 등 지원정책, 기업 일부 부담하도록”

기사입력2016-05-20 00:00

이혜원 기자 (dipsy@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은 19일 서울 과총회관에서 열린 ‘중소·중견기업 R&D 혁신방안’ 포럼에서 “중소·중견기업이 우리경제의 버팀목으로 수출을 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대기업이 잘 되면 중소기업도 잘 된다는 낙수효과가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 대기업이 못해서가 아니라 세계시장으로 가고 있어서다. 대기업은 계속 세계로 가고, 중소기업은 과거 대기업들이 해온 (고용창출, 수출 등) 역할을 해야 한다”

부임 5개월 차를 맞은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이 대기업 낙수효과에 종언을 고했다. 대기업이 잘돼야 중소기업도 잘되고 나라경제가 발전한다는 논리가 더 이상은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주 청장은 19일 서울 과총회관에서 열린 ‘중소·중견기업 R&D 혁신방안’ 포럼에서 “대기업이 해외에서 물건을 만들고, 개발하고, 영업을 하면서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반면 중소·중견기업은 우리경제의 버팀목으로 수출을 견인하고 있다”고 했다.

대기업의 해외투자 비용은 최근 20년간 10배 가까이 늘었다. 1995년 23억1000만달러였던 대기업의 해외투자금액은 2015년 218억8000만달러로 증가했다.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고 현지 투자를 늘리면서 매출도 해외에서 대부분 나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삼성전자는 88.9%, LG전자는 75.1%, 삼성디스플레이는 91.3%, LG디스플레이는 90.1%의 매출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소·중견기업의 수출기여도는 매해 높아지고 있다. 2012년 32.1%였던 중소·중견기업의 수출기여도는 2015년 35.9%까지 늘었고 올해 1분기에는 38.5%를 기록했다. 주 청장은 “내년에는 40%, 2020년 이전에 50%를 돌파할 것”이라며 “명실공히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중견 중심으로 구조가 바뀌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이혜원 기자> ©중기이코노미

우리 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2014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사업체의 99.95%(354만2000개)가 중소·중견기업이다. 상호출자가 제한되는 대기업 집단은 전체 기업의 0.05%(1671개)다. 노동시장에서 보면 전체 종사자의 87.9%가 중기업, 소기업에서 근무하거나 소상공인이다.

중소기업의 위상이 달라진 만큼 R&D 등 지원정책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주영섭 청장의 생각이다. 지금까지 보호의 대상이었던 중소기업에 고기를 가져다 줬다면 앞으로는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단순지원에서 중점육성으로 바꿀 생각이다. 중소·중견정책에 공짜는 없다. 공짜에는 성과가 따라오지 않는다.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라도 기업들이 직접 비용을 부담해야 성과가 나온다. 정부 정책을 공짜지원책이라 생각하게 해선 안 된다”

“R&D 사업 평가시 산업체 민간 비중 확대”

중소기업 R&D 사업 평가 때는 민간위원의 비중을 확대할 생각이다. 기업인 출신 청장다운 대목이다. 주 청장은 “중소기업 R&D 과제는 시장과 직결돼 있어 원천기술보다는 상용화 비중이 높다”며 “시장을 잘 아는 산업체 평가위원의 비중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했다.

고급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의 현실을 감안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출연연 인력을 중소기업에 파견해 직접적인 도움을 줄 생각이다. 이를 위해 판교테크노밸리, 마곡산업단지, 양재첨단R&D단지에 R&D 특화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미래 먹거리와 관련해서는, 신산업을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력산업을 고도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폈다. 주 청장은 2010년 지식경제부 시절 3년간 R&D전략기획단에서 정책과 예산 편성 업무를 맡은 경험이 있다. 당시 경험한 바로는 신산업 지원에만 몰두하니 깊이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기존 주력산업 고도화, fast follower도 미래 먹거리”

주 청장은 “국내 R&D 정책을 독서로 따지자면 1장만 열심히 읽는다. 책을 많이는 읽는데 모두 1장만 봐서 깊이가 약하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것을 심화시키려는 노력도 중요하다”면서 “주력산업에도 먹거리는 많다. 새로운 것에 대한 대비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것과 안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신산업 선도자(first mover)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나 현실적으로도 어렵고,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주 청장은 “한국은 신산업을 창출하기보다는 남이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강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존재감이 없던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데는 이러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 유효했다”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잘할 수 있는 산업에 대해선 선도자 전략을 쓰고 그렇지 않은 산업에서는 추격자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섭 청장은 대우전자, GE, 현대모비스 등 경제계에 몸담은 기업인 출신이다. 지식경제부 R&D 전략기획단 주력산업 총괄 MD,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 국가과학기술심의회 미래성장동력 특별위원,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등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