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도 근거도 없는 ‘총수 구속, 경제위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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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실체도 근거도 없는 ‘총수 구속, 경제위기론’ 죗값이 권력·자본의 크기와 반비례한다면 세상은 결코 나아지지 않아

기사입력2017-08-29 18:45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회장도 없는데 부회장 아들마저 징역 5년이래. 삼성이 걱정이야. 이러다 경제위기 다시 오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달라는데 안 내놓을 사람이 어디 있어.”

횡령, 뇌물공여, 해외재산도피 등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두고 경로석의 두 노인이 설왕설래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압 때문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등등의 얘기가 오갔다. 이어 ‘불쌍한 이재용’, ‘정치보복 같은 재판’이라며 국가경제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결론과 함께 혀 차는 소리로 끝을 맺었다. 한참을 듣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기업 총수의 구속이 기업활동 위축으로 이어지고, 결국 국가위기로 직결된다는 이른바 ‘CEO 리스크, 경제 위기론’이다. 실체도 근거도 없지만, 이번에도 예외 없이 등장했다. 법원입구에 모인 일부는 실형 5년의 선고가 너무 가혹하다고 성토했고, 정치보복이라며 문재인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다수 경제지와 보수언론도 이와 유사한 논리를 활자화하고, 방송에서는 검증된 사실인양 보도하고 있다. 심각한 여론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선고공판 전, 이들은 한국경제의 운명이 법원의 손에 달렸다며 기업임원과 곡학아세하는 일부 지식인을 내세워 중형 불가를 주장했다. 5년의 실형선고가 있자, 이번에는 대한민국 심장박동이 멈췄다며, 벌써 상급심을 압박하는 주장까지 쏟아내고 있다. 특검이 기소한 5가지 혐의사실 모두를 인정했음에도, 12년의 구형을 5년 선고로 줄인 재판이 공정했는가를 묻는 언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보수신문 뿐만이 아니었다. 경제지 대부분이 그랬고 공중파 방송이나 종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틀렸다. 지난 2월 이 부회장의 구속을 앞두고도 경영 차질, 국가경제의 위기를 내세우며 ‘이재용 구하기’에 대부분의 언론이 뛰어 들었다. 그러면서도 구속 몇달 후 이들은 삼성전자가 인텔과 애플을 제치고 사상 최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냈다고 환호했다. 이번엔 징역 5년의 선고가 있자, 또다시 오너 리스크, 경제 위기론을 꺼내 들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냉온탕을 오가는 논조이고 설득력도 전혀 없는 낮 뜨거운 주장이다. 삼성전자는 국내경기와 상관없이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고, 주식도 상한가의 연속이다.

그리고 삼성총수가 뇌물공여 등 범죄를 저질러 수감됐더라도, 이는 삼성의 임원이나 주주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국가와 국민 모두가 사회정의를 외면하고, 헌법의 존엄성까지 훼손하며 나설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동계올림픽 성공적 유치, 고령과 사회적 기여도, 경제위기를 내세워 관행처럼 행해졌던 기업총수들의 특별사면이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또 특별사면이 기업의 성장, 좋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특별사면이 더 거대하고 치밀한 정경유착의 범죄를 만들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이 세간의 합리적 의심이다.

법정에는 재벌총수에게 적용된다는 3·5법칙이 있다고 한다. 1심에서 5년을 선고받으면,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고 풀려난다는 말이다.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3·5법칙이 적용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촛불혁명 이전의 국민과 문재인정부의 국민이 다르다는 사실이고, 이를 법원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후안무치한 주장이다. 돈이 많든 적든, 권력이 있든 없든 만인이 법앞에 평등하다는 ‘정의’를 현실에 구현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이유중 하나다. 주권재민이 관철되는 민주주의국가에서 그 어떤 국민도 경제회생을 이유로 범죄자인 기업총수의 형량을 감경해 줄 수 있는 권리를 위임하지 않았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결탁된 정경유착의 범죄, 그 죄의 크기는 보통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권력·자본의 크기와 비례되는 범죄다. 범죄로 치러야 할 대가가 권력·자본의 크기와 반비례한다면 세상은 결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