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전산망 ‘먹통’ 반복…발생 원인 명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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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행정전산망 ‘먹통’ 반복…발생 원인 명확해야 1월 종합대책에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기사입력2023-12-27 13:00

지난 11월17일, 공무원 전용 행정전산망인 ‘시도 새올행정시스템’과 정부의 온라인 민원서비스인 ‘정부24’가 마비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민원서류 발급이 전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시스템이 완전 정상화되기까지는 56시간이 걸렸다. 이어 22일에는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정보시스템에 오류가 생겨 민원서류 발급에 차질이 생겼고, 23일에는 조달청의 ‘나라장터’ 시스템 접속이 중단됐다. 24일에는 정부 전자증명서 발급이 일시 중단됐으며, 정부의 ‘모바일 신분증’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이 먹통이 됐다. 29일에는 공무원의 회계시스템인 ‘e호조’가 마비됐다. 이어 12월12일, 조달청 나라장터 시스템에 1시간 넘게 접속장애가 발생했다.

정부는 연이어 발생한 행정전산망 장애와 관련해 TFT를 꾸리고, 오는 1월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행정전산망 잇따른 장애…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행정안전부는 각각의 서비스 장애가 전부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시도 새올행정시스템 먹통의 원인은 라우터 포트 불량이며, 해킹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또 조달청의 나라장터 먹통의 경우 해외 접속량이 과다하게 폭증하면서 접속이 지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국민 입장에서는 이러한 설명에 의문이 남는다. 이재용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은 “해당 라우터 장비는 2016년에 도입돼 아직 사용기한이 만료되지 않은 장비다. 따라서 노후가 장비 고장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불량이거나 오류를 일으킨 것일까? 해외 접속량 역시 왜 과다하게 폭증한 것일까? 또한 이러한 문제를 선제적으로 발견하는 모니터링 체계는 없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여파를 최소화하는 대응체계 역시 없는 것인지도 의문이 든다. 당시 국민은 재난 메시지조차 받지 못했다.

올해 정부 전산망이 먹통이 되는 사고는 또 있었다. 지난 3월에는 법원전산망이 마비됐고, 지난 6월에는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나이스)이 먹통이 되며 전국 학교의 업무가 멈췄다. 디지털 전환이 필수인 시대인데, 정부의 행정전산망에 이토록 문제가 자주 생기고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것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잇따라 발생한 행정전산망 장애와 관련해 TFT를 꾸리고,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1월에 나올 종합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너진 국민의 신뢰 회복이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에다, 여당은 애꿎은 중소기업 탓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다. 국회가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와 관련해 정부를 상대로 11월23일 현안 질의를 실시할 때,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프랑스 순방에 합류한다는 명목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대신 참석한 행정안전부 고기동 차관은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에 거듭 사과하면서도, “디지털 재난 수준으로까지는 보지 않는다”라고 답변했다.

이는 지난해 10월에 일어난 카카오 먹통 사태 당시 정부의 태도와는 온도차가 난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나서서 카카오를 질타했다. 이후 국정감사에 카카오 김범수 의장과 SK그룹 최태원 회장, 네이버 최수연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소환됐다. 남궁훈 당시 카카오 대표는 서비스 장애에 사과하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정부는 카카오에 먹통 재발방지와 피해 보상계획을 1개월 내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의 주요 정보를 담은 전산망이 잇달아 마비됐다. 과연 이 사태가 사기업의 서비스 먹통보다 가벼운 일일까? 사기업에 책임을 물었던 것과 비교하면, 정부의 태도가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여당의 시각도 다소 우려스럽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11월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마비 사태와 관련해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첫 번째 문제가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 제한”이라고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현재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은 예외적인 사항이 아니면 국가기관이 발주하는 소프트웨어 사업에 참여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를 목적으로 2013년 도입된 제도다. 여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행정망 먹통 사태의 책임을 중소기업의 기술력 탓으로 떠넘기는 것과 다름 없다.

기업의 규모와 소프트웨어 역량은 비례하지 않으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가 공공 소프트웨어의 사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종합적인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행정안전부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채, 행정전산망 관리 업무를 모두 외주로 넘기기만 하고 기업을 탓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전산망 장애 발생을 대비한 모니터링 체계와 대응 방침을 마련하는 것 역시 외주기업이 아닌 행정안전부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행정전산망 관리를 질적으로 개선하려면, 이를 위한 유지·보수 예산을 납득 가능한 수준으로 책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고급 인재를 투입하거나 공공 소프트웨어의 품질을 끌어올리기 어렵다. 정작 행정안전부의 디지털 정부 혁신 관련 예산 중 전자정부 지원 부문은 올해 493억원에서 내년 126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행정정보 공동이용시스템의 유지보수 예산 역시 올해 127억원에서 내년 54억원으로 삭감됐다. 정부가 행정전산망 문제를 개선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우려된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 회복’…원인 규명부터 명확해야

정부는 이러한 행정전산망 장애와 관련해 TFT를 꾸리고 내년 1월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12월3일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었다. 당정은 단기적으로 노후장비 전수점검, 정보시스템 인프라 이중화 및 등급제 개선, 예방·대응 컨트롤 타워 구축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공공·민간의 다양한 클라우드 방식을 활용하고, 공공부문의 디지털 관리 역량을 개선하기로 했다. 아울러 소프트웨어 단가 현실화, 분리발주 및 조달평가 제도 개선, 기술력 높은 기업의 공공 정보화 사업 참여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1월에 나올 종합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너진 국민의 신뢰 회복이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디지털 행정에 문제가 거듭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국민이다. 정부가 책임 있는 태도로 대책을 세우길 바란다. 중기이코노미 안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