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문화적 영역 사이의 관계와 복합적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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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다양한 문화적 영역 사이의 관계와 복합적 정체성 혼종적 정체성이 감성으로 나타날 때…미코 벨드캄프 ㊦

기사입력2024-10-16 16:3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혼종적 정체성을 회화로 보여주는 미술가 미코 벨드캄프(Miko Veldkamp, https://www.junggi.co.kr/article/articleView.html?no=32907)의 그림에서 우리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 남긴 공동체의 감정까지도 느끼게 된다.

벨드캄프가 태어난 수리남은 1975년에 독립했으나, 그 이전까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 19세기에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지역을 식민 지배하면서 수많은 인도네시아인을 수리남으로 이주시켰다. 네덜란드계 인도네시아인 벨드캄프는 수리남과 네덜란드, 그리고 인도네시아라는 복잡한 식민지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가 표현하는 꿈과 같은 기억의 풍경은 개인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집단의 기억이 스며 있는 심리적 공간으로, 이는 칼 융(Carl Jung)이 말한 ‘집단 무의식’의 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서로 다른 문화적 영역의 몽환적 조합

미코 벨드캄프, ‘Influence’, 2023, 캔버스 위에 오일, 아크릴릭, 잉크, 122×178cm. <출처=BB&M Contemporary Art Gallery>

2020년 벨드캄프는 “그림자, 반사, 투영, 그리고 다른 세계를 향한 창과 같은 칼 융의 은유를 통해 나는 내 자신의 심리와 트라우마 속으로 뛰어든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저술자이자 편집자인 칼 리벨리-칼더(Cal Revely-Calder)는 ‘아트포럼(Artforum)’에서 그의 작업을 융의 ‘집단 무의식’으로 해석했는데, 이는 그의 작품이 공동체의 무의식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벨트캄프의 회화에는 수리남과 인도네시아의 특정 식물과 과일, 네덜란드와 미국의 소, 잉어, 자전거, 나무 스크린, 선풍기, 흑백 타일, 레이스 커튼, 나이트클럽의 조명, 햇살, 창문 등 매우 구체적인 상징물로 가득하다. 이러한 요소들은 인도네시아와 수리남, 네덜란드, 뉴욕, 그리고 북반구와 남반구, 지구의 동쪽과 서쪽이라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상징하는데, 이 요소들이 그의 회화 속에서 몽환적으로 조합되어 다양한 문화적 영역 사이의 관계와 복합적인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상징적 조합은 공동체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거대한 흐름에 의해 옮겨진 일상적 장소와, 그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받았던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미코 벨드캄프, ‘Halfling’, 2023, 린넨 위에 오일, 아크릴릭, 101.5×152.5cm. <출처=BB&M Contemporary Art Gallery>

작가는 거실이나 욕실 같은 사적 공간을, 공원이나 정원, 나이트클럽과 같은 공적 공간과 대비시키며, 그 안에 담긴 역사적 갈등과 모순을 부각한다. 이와 동시에, 노스탤지어적인 감성적 표현을 통해 작가의 내밀한 감정까지도 표출한다. 화면 속 인물들 주변의 빛 반사와 그림자, 기하학적인 패턴은 선형적인 시공간의 개념을 뒤섞으며, 새로운 시각적 질서와 리듬을 만들어낸다.

벨드캄프의 작업은 개인적이면서도 공적인 서사,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혼종적 정체성의 예술적 탐구다. 작가는 식민지라는 역사적 상흔이 혼종성의 밑바탕이 된다. 이 때문인지 그의 회화는 감정적이고 습기를 머금고 있는 듯 느껴진다.

1982년생 미코 벨드캄프는 로테르담의 빌럼 데 쿠닝 아카데미에서 학사를 취득했고, 암스테르담의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프린스턴 대학교의 호더 펠로우십을 이수했으며, 뉴욕의 헌터 컬리지에서 회화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작가는 BB&M(서울), Nathalie Karg Gallery(뉴욕), Southwark Park Galleries(런던), Workplace(런던)에서 개인전 및 2인전을 가졌다. 또 The Here and There(뉴욕, 2023), Workplace(영국 뉴캐슬, 2023), Long Story Short(뉴욕, 2023), Althuis Hofland(암스테르담, 2022), Workplace(런던, 2022), BB&M(서울, 2022), Swivel Gallery×Regular Normal(뉴욕, 2021)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23년에는 ‘New American Paintings’에 선정되는 등 국제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