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토렛토는 왜 지옥 빼고 오직 ‘천국’만 그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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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틴토렛토는 왜 지옥 빼고 오직 ‘천국’만 그린 걸까 ‘최후의 심판’을 심판하다…역사적으로 시대를 보는 작가 세상 담겨

기사입력2022-07-24 00:00

이다 미술역사가 (meundaisy@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베네치아 듀칼레 궁전에 있는 틴토렛토의 ‘천국’, 1577년 작품.

베네치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는지 생각해 보니, 듀칼레 궁전에서 본 틴토렛토(1518~1594년)의 거대한 그림 ‘천국’이 떠올랐습니다. 출렁이는 베네치아의 바다를 볼 수 있는 산 마르코 광장에서 분홍빛 카페트를 씌운 듯 고풍스럽게 서 있는 듀칼레 궁전 안에 이렇게 강렬한 그림이 있다는 건 상상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베네치아 화가 틴토렛토는 1500년대 당시에는 베네치아의 거장 티치아노의 명성에 가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화가였습니다. 이 작품이 오랜 인내 끝에 마침내 티치아노의 그늘을 벗어나 틴토렛토에게 불멸의 명성을 얻게 한 그림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실물을 직접 보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 그림의 거대한 크기때문일 것입니다. 22미터 폭 7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이라 하죠. 베네치아의 전성기가 얼마나 화려했는가를 짐작케 하는 천장의 멋진 금장식과 거대한 그림들 사이에서도 자신만의 단단한 포스를 뿜어내는 틴토렛토의 천국은 최후의 심판의 일부인 천국편을 그린 것입니다. 천국으로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어 그들의 행렬을 바라보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하죠. 틴토렛토는 천국이 또한 얼마나 큰 곳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구름 속에 쌓인 공간으로 표현합니다. 이 곳이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라는 것을 알수 있도록 틴토렛토는 사람들의 표정에 벅찬 환희를 그려 넣었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심판의 날,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최후의 심판 그림이 등장하는 곳에는 천국과 지옥이 모두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최후의 심판 중 ‘천국’만 그려져 있죠. 틴토렛토의 의도가 궁금해집니다. 왜 틴토렛토는 이 거대한 공간에 지옥을 빼고 오직 ‘천국’만 그린 걸까요?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1543년 작,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최후의 심판은 세상의 시작을 보여주는 창세기와 함께 기독교 미술의 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는 주제입니다. 세상은 신에 의해 시작되었고 신에 의해 끝난다는 기독교 교리를 담았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화가들이 이 작품을 창세기와 함께 그렸지요.

그런 형식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 미켈란젤로가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에 그린 최후의 심판입니다. 파올로 3세 교황 시절에 그려진 이 작품은 천정에 그려진 창세기 그림과 함께 역시 세상의 시작과 끝을 보여줍니다. 율리우스 2세 교황 재임 시절인 1512년 완성된 천정화의 ‘천지 창조’가 미켈란젤로의 젊은 시절 열정으로 창조된 것이라면, 1543년 그려진 최후의 심판은 중년의 미켈란젤로가 본 현실의 세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그린 최후의 심판에는 미켈란젤로 시대에 살았던 거만한 체세나 주교가 지옥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그림이 성스럽지 않다고 비난한 주교에 대한 그의 소심한 복수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런 사소한 감정 뿐만 아니라 위대한 화가가 작품에 담은 예술정신, 즉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심판은 정의로운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 메시지를 담은 것입니다.

천국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모습도 재밌습니다. 미켈란젤로 자신을 천국에 그렸지만 언제든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신세라는 사실을 그려 넣은 장면은 누구를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은 천국에 갈 자격이 있는지를 생각한 미켈란젤로의 마음가짐이 느껴집니다. 이렇듯 특히 최후의 심판이라는 주제는 역사적으로 시대를 보는 작가의 세상이 담겨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 중 기억할 만한 또 다른 작품은 중세화가 조토(1267~1337년)가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그린 것입니다. 그는 이 예배당 전체를 그렸는데 독특하게도 세상의 시작을 창세기로 보지 않았습니다. 조토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마리아의 생애’와 ‘예수의 생애’ 그리고 ‘최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조토가 한계지은 세상의 시작은 창세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날입니다. 그날을 위해 어머니 마리아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신을 낳은 어머니의 기묘한 출생의 비밀과 성장과정을 먼저 깔아서 신이자 인간의 성질을 가진 예수의 특별함을 상세하고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미술을 선보였습니다. 조토 시절에는 예수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라는 교리가 무엇보다도 강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조토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파도바의 부호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아버지의 천국행을 기원하며 후원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심판에는 후원자 엔리코와 함께 아버지가 예배당을 봉헌하는 장면을 중앙에 그려 넣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예배당을 봉헌한다는 것을 강조한 이유는 조토의 오랜 친구 단테 때문입니다.

조토 스크로베니 예배당 ‘최후의 심판’ 1303~1305년, 파도바.

단테는 그의 역작 ‘신곡’에서 엔리코의 아버지를 지옥에 보내버렸기 때문이죠. 신곡의 지옥편 17장에서, 단테는 리날도 스크로베니를 지옥에서 만납니다. 무거운 열쇠꾸러미를 목에 매고 고통스러워하는 리날도 스크로베니는 예배당의 주인 엔리코의 아버지로 파도바에서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모은 인물인데, 그가 돈을 모은 방식이 너무 고약했었나 봅니다. 높은 이자를 받는 것은 서민의 피를 빨아먹는 것이라는 경고를 위해 리날도 스크로배니를 지옥에 보내 버린 신곡이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든 동기가 되었으니, 신곡은 단순한 문학작품 이상이었다는 것을 다시한번 증명한 셈이기도 하죠.

지금도 이탈리아 사람들은 신곡의 정신으로 선과 악, 윤리에 대한 죄의식과 인간 욕망에 대한 연민을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조토 미술이 왜 현대에도 사랑받는지 짐작이 갑니다.

조토의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지옥은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성당에서 더욱 사실적으로 되살아납니다. 타데오 디 바르톨로(1362~1422년)라는 화가가 1393년 그린 최후의 심판은 단테의 신곡을 우화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마을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의 두오모 성당에 그려진 이 작품은 지옥을 제대로 맛보게 하죠. 게으른 자들은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 형벌을 받음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게으름을 끝없이 맛보게 하는 고통을 보여줍니다. 식탐에 대한 형벌을 감상하고 있으면 몸이 부르르 떨립니다. 음식에 식탐을 보이는 자들에게는 배가 터지더라도 계속 음식을 먹게 해 그토록 탐하던 음식을 그렇게 먹어치우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생생하게 맛보게 하기 때문이죠. 살을 빼고 싶다면 이 그림이 특효가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그림입니다.

‘최후의 심판’이라는 주제는 중세시대에는 지옥을 더욱 강조해 왔습니다. 지옥은 과연 어떤 곳인가를 상상하며 사람들에게 지옥에 가지 않도록 사는 것이 삶의 기준이 되도록 의도적으로 유도해왔다는 것을 보여주죠.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 보면 지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 이성적인 선택이 삶의 기준으로 바뀌어 갑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지옥에도 가고 천국에도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그래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지옥에 대한 자세한 묘사보다 천국이나 지옥에 있는 인물들의 현실적인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1577년에 그려진 틴토렛토의 그림이 왜 천국만 있는지 짐작이 갑니다. 오랜 시간 티치아노의 그늘에서 경쟁하며 살았던 자신의 고단한 삶, 흑사병으로 자식을 잃은 슬픔과 손주를 잃고 괴로워하는 딸을 지켜봐야 했던 자신의 삶이 곧 지옥의 어두움이 드리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창조할 때 틴토렛토는 현실이 아닌 꿈꾸는 현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듀칼레 궁전의 아름다운 대회의실에 그는 굳이 지옥을 그려넣지 않았습니다. 그가 꿈꾸는 현실인 천국을 그려 현실 속의 어두움을 밝혀주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이다 미술역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