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나라한 연봉공개에 기업들 ‘화들짝’

프린트

오피니언 ㅣ 칼럼 적나라한 연봉공개에 기업들 ‘화들짝’ 정보 비대칭성 해소 vs 개인정보…꾸준한 토론으로 사회적 합의 도출해야

기사입력2016-09-11 09:53

국민연금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업 연봉정보와 퇴사율을 공개해 파장을 일으킨 스타트업 ‘크레딧잡’이 8일 서비스를 잠정중단했다. 일부 기업들이 국민연금에 항의를 해, 국민연금 쪽에서 “민원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동안 서비스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크레딧잡 사태는 구직자와 기업의 정보비대칭성, 빅데이터, 개인정보 등 여러 방면에서 논쟁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구직자들이 크레딧잡에 열광한 건 기업의 실제 연봉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서다. 구직자들이 얻을 수 있는 기업 정보는 제한적이다. 대기업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나 중소기업은 인터넷을 검색해도 제대로 된 정보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구직자들이 회사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연봉조차 ‘회사 내규에 따름’으로 대신한다.

반면 기업이 구직자들에게 요구하는 정보는 A부터 Z까지다.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구직자의 신체사항과 종교, 가족들의 학력과 회사명까지 묻는다. 구직자와 기업의 정보 비대칭성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때 취업포털들은 기업 연봉정보로 짭짤한 수입을 챙겼다. 기업 연봉을 맛보기로 살짝만 공개하고 전부 보고 싶으면 유료결제를 하라는 식이었다.

이제 시장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연봉정보와 기업리뷰를 무료로 제공하는 ‘잡플래닛’이 등장하면서다. 요즘 주변의 구직자들을 보면 입사지원 전 잡플래닛을 확인한다. 기업의 현직자, 퇴직자가 자신이 수령하는 연봉과 회사에 대한 리뷰를 적어놓은 사이트다. 기존 취업사이트는 구직자들에게 돈을 받고 기업정보를 파는 반면 잡플래닛은 돈 대신 당신이 알고 있는 기업정보를 내놓으라 요구한다. 잡플래닛에서 연봉과 기업리뷰 전체를 보려면 자신이 근무했던 직장에 대한 정보를 반드시 입력해야 한다. 성의없게 쓸 경우 퇴짜를 놓고 다시 쓰라고 한다. 질좋은 기업정보를 축적한 비결이다.

잡플래닛 이후 이번에 나온 크레딧잡은 기업이 납부하는 국민연금 납부액을 기준으로 연봉 데이터를 만들었다. 잡플래닛에선 근로자가 자진해서 연봉정보를 입력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의 연봉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크레딧잡은 입력 여부와 관계없이 공단 데이터를 활용하니 중소기업 연봉 정보도 적나라하게 뜬다. 국민연금 신고 내역을 기반으로 입사자와 퇴사자 현황도 알려준다.

법적인 이슈에 대한 준비도 미리 해 뒀다. 크레딧잡 조경준 대표는 국민연금공단 데이터 활용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이 아이디어로 장려상을 탔다. 사업화 단계에서 국민연금공단의 도움도 전폭적으로 받았다. 공단은 국민연금 자료를 전부 제공하는 한편, 기업 연봉정보가 개인정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놓고 6개월간 법률적 검토를 거쳤다. 1~2인 기업인 경우 근로자 개개인의 연봉을 짐작할 수 있어 개인정보로 취급될 소지가 있으나, 3인 이상일 경우 개인정보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오며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논쟁의 여지는 여전히 있다. 기업이 아닌 일부 현직자들의 반발이다. 대기업은 관계없지만 5인이하 소기업 근무자들은 회사 연봉이 공개될 경우 주변에서 자신의 연봉을 거의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레딧잡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이같은 상황을 우려하는 댓글이 올라와 있다. 비단 이번 사건만의 얘기는 아니다. 빅데이터 기반의 신사업 등장으로 유사한 논쟁은 앞으로도 활발할 전망이다. 개인정보와 공익을 위한 정보공유 중 어느 것이 더 중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누군가 얻는 것이 있으면 누군가는 잃는 것이 있다. 그러니 정답이란 없다. 꾸준한 토론을 통해 최적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