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섬’에서 안식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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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죽은 자들의 섬’에서 안식을 기원합니다 아놀드 뵈클린 ‘죽은 자들의 섬’, 로렌조 로토 ‘피에타’

기사입력2022-12-15 10:50

코로나가 서서히 끝나가는 연말 분위기와 새해에 대한 희망을 적절히 섞어 미술산책을 가볍게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믿기 힘든 참사로 인해 나라 전체가 슬픔에 잠겼고, 망연자실한 마음에 손에 일이 잡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안타까운 죽음들을 맞이했습니다.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며 죽음을 애도하는 미술작품을 펼쳐 보았습니다.

10월에 갔던 베를린 국립미술관에서 꼭 보고 싶은 그림이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현대미술작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가 사후세계에 대해 영감을 받았다는 작품 바로 ‘죽은 자들의 섬’입니다. 이 그림은 스위스 화가 아놀드 뵈클린(Arnold Bocklin, 1827~1901)의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아놀드 뵈클린은 독일 상징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가라앉은 색채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양식 안에 특유의 침묵과 고요를 표현하는 인상적인 화가입니다.

아놀드 뵈클린의 독창성은 1800년대 말 혼란한 유럽 역사를 대변하는 듯 합니다. 초기에는 풍경화를 즐겨 그리다가, 파리로 건너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와의 색채와 드라마틱한 화풍에 매료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시절에 다시 고향인 스위스 바젤로 돌아왔을 때, 그는 외국 생활에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의 미술 양식에 중요한 영향을 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스위스 바젤대학 교수 야콥 부르크하르트입니다. 그의 예술학 강의는 학생들에게 매우 인기가 없었지만,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를 통찰력있게 저술한 명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라는 책을 남겼습니다.

그가 아놀드 뵈클린에게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배우도록 조언합니다. 그렇게 뵈클린은 1850년 처음으로 로마에 갔고, 이후 이탈리아 미술여행을 다니다가 피렌체에 정착합니다. 르네상스 미술을 배우며 그는 곧 들라크루와의 화려한 색채를 버리고, 내면을 표현하는 깊이있는 색채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죽은 자들의 섬’은 죽은 자의 여정을 동행하는 그림입니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죽은 자들이 머무는 섬을 향해 가는 망자의 뒷모습은 죽음의 고독과 쓸쓸함을 내뿜는 듯 합니다. 배 위에 홀로 서서 거대하고 어두운 섬에 도착한 순간 그는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영혼의 불멸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어둠을 간직한 곳, 죽음의 바다를 건너 온 망자는 그저 자신의 운명을 고요한 물결에 맡기고 있습니다. 뵈클린이 만들어 낸 ‘섬’은 마치 현실같은 공간이기에 죽은 영혼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공간으로 떠나는 듯 보입니다. 이탈리아 시인 단테가 망각의 강을 건너 또 다른 공간을 여행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놀드 뵈클린, ‘죽은 자들의 섬’

아놀드 뵈클린은 삶과 죽음이 우리들의 인생에 공존한다고 여겼습니다. 이 그림 옆에 걸린 그의 자화상에는 화가 자신 뒤에서 죽음의 연주를 하는 해골이 동행합니다. 죽음을 두려움과 이별의 세계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의 운명에 공존하는 세상이라고 말하는 뵈클린의 죽음에 대한 철학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러시아 음악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교향시 ‘죽은 자의 섬’을 작곡했습니다.

‘슬픔을 뒤로 한 채 깊이를 알 수 없는 죽음의 심연 앞에 고개 숙이며 고요히 죽음을 맞이하라’

형이상학파 미술을 창시했던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는 죽은 자들을 맞이하는 뵈클린의 섬을 보며 사후 세상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깰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살아서는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죽은 자들이 머무는 세계는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닮았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그는 익숙한 공간 안에서 느끼는 낯설음을 통해 가본 적 없는 죽음의 세상을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의 섬이 우리 세상과 닮았다고 한들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고요한 침묵의 ‘섬’은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곳처럼 보이지만, 정작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순간 살아있는 자들의 섬은 고통과 슬픔에 물듭니다.

수많은 피에타(Pieta) 작품에서 우리는 남은 자의 고통을 목격합니다. ‘피에타’는 예수의 죽음을 신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믿음과 동시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아픔이 공존하는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는 서양미술의 주제입니다.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에서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피에타 작품이 이탈리아 화가 로렌조 로토(Lorenzo Lotto, 1480~1557)의 그림입니다.

로렌조 로토, ‘피에타’,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화가 로토는 ‘피에타’에서 아들의 죽음 앞에서 혼절한 어머니 마리아의 고통을 표현합니다. 자신의 몸을 가눌 수조차 없을 만큼 크나큰 슬픔 속에서 정신을 잃은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꺾인 팔의 통증으로 전달되는 듯 합니다. 이 순간 어머니의 고통은 자기 팔을 꺾어버릴 만큼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화가는 표현하죠.

너무 울어서 얼굴이 붉어진 사도 요한이 기절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축하는 모습에 슬픔을 위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때로는 뜨겁게 통곡하고 때로는 차갑게 얼어버리는 슬픔조차 서로 부둥켜안고 부축해주며 위로를 나누는 것이 남은 자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바티칸 피에타’를 참고로 한 작품이지만,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슬픔을 고전적이지 않고 진솔하게 표현한 마니에리즘 작품입니다. 인간의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할 때, 우리는 그 표현에 공감하면서 잠시 울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 것 같습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죽은 자들이 휴식하는 섬’이 있습니다. 베네치아인들은 바다 한 가운데 섬에서 태어나 일생을 바다 위에서 살다가 바다 위의 섬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이 사는 공간과 뚝 떨어진 섬에 무덤을 만든 것은 흑사병 예방 차원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성 미켈레 섬은 베네치아인들의 안식처입니다.

언젠가 40세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한 음악가의 장례식을 지켜 본 적이 있습니다. 빨간 배 안에 관이 놓이고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노를 저었습니다. 아놀드 뵈클린의 그림 속 섬보다 더 푸르고 싱싱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성 미켈레 섬으로 그의 영혼이 영원한 휴식을 취하러 떠나는 장면을 한없이 지켜보았습니다. 뵈클린의 섬처럼 사람들은 살아있는 영혼 안에 담긴 슬픔과 고통을 침묵 속에서 다스리며 배웅하였습니다. 그날의 인상으로 나는 죽음과 삶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을 향해가는 여정은 육체의 고통과 두려움이 공존할 수 있지만 뵈클린의 섬처럼, 죽은 자를 맞이하는 섬은 고요한 휴식을 주는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이다 미술역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