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주의와 외모 그리고 ‘여성의 일상적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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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소비주의와 외모 그리고 ‘여성의 일상적 노동’ 초콜릿과 라드 덩어리 그리고 러빙 케어…재닌 안토니㊦

기사입력2024-07-12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바하마 태생의 미국 예술가 재닌 안토니(Janine Antoni)의 작업 중 비슷한 시기에 여성을 향한 시선과 소비주의의 행태,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비슷한 작업으로 1993년 퍼포먼스 작업 ‘러빙 케어(Loving Care)’를 들 수 있다.

◇싸구려 사랑스러운 관리=그녀는 시중에서 저렴하게 판매되는 염색약에 자신의 검고 긴 머리카락을 적신 후 이를 붓처럼 휘두르며 갤러리 바닥을 기어다녔다. 이 과정에서 염색약으로 물든 머리카락은 바닥에 흔적을 남기며, 관람객들을 점차 전시실 밖으로 밀어냈다. ‘갉다’와 마찬가지로, ‘러빙 케어’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미적 기준과 이를 위한 소비 행태의 허망함을 강조하며, 특히 여성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사회적 압력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제목인 ‘Loving Care’는 염색약의 상표명으로, 미용과 관련된 소비제품의 상징이다. 그녀는 저렴한 염색약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함으로써 소비주의와 미의 기준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비판하고,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박과 그로 인한 자존감 손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이 퍼포먼스는 여성성과 가사 노동, 그리고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탐구한 작품이다. 자기 머리카락을 사용해 바닥을 칠하는 행위는 역으로 바닥을 닦는 청소 행위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여성인 작가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여성의 일상적 노동을 시각화하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청소라는 일상적 노동을 예술적 퍼포먼스로 전환해 여성의 노동이 가진 가치와 중요성을 재조명한 것이다.

재닌 안토니, ‘러빙 케어’, 1993. 퍼포먼스. <출처=www.janineantoni.net>

이런 면에서 ‘러빙 케어’는 1973년 7월23일 와즈워스 아테니움 미술관(Wadsworth Atheneum Museum of Art)에서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Mierle Laderman Ukeles)가 선보였던 ‘하트포드 청소:길청소하기, 메인터넌스 아웃사이드’를 떠올리게 한다. 유켈리스는 그날 미술관의 안팎을 여덟 시간 동안 쓸고 닦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이 퍼포먼스가 바로 ‘하트포드 청소’다. 그녀는 이 행위를 통해 저임금의 관리직 근로자가 대중의 눈에 띄지 않게 행했던 유지관리(maintenance) 노동을 공개적으로 드러냈고, 은폐되어 있던 여성, 노동, 가치에 관한 논쟁적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와 행위가 유사한 안토니의 ‘러빙 케어’는 소비주의와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면서, 내재적으로 여성의 가사 노동을 상기시킨다. 관객들은 안토니가 바닥을 칠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작품의 의미를 체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작품의 일부가 되며, 여성성, 여성의 노동, 신체성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이 퍼포먼스는 작가가 자신의 신체를 직접적인 예술매체로 활용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미적 억압과 자기 착취적인 행위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여성의 주체성과 자율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유켈리스의 퍼포먼스가 은폐된 노동, 특히 여성의 노동에 초점이 있었다면, 안토니의 퍼포먼스는 외모에 대한 압박과 은폐된 여성의 노동을 동시에 드러내면서 여성을 대하는 다층적인 태도를 우리에게 느끼게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