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배경은 ‘경제’

프린트

Live 중기 ㅣ 경제일반 ‘김정은’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배경은 ‘경제’ 한반도 신경제의 세 인물 ①김정은…정상국가의 문을 두드리다

기사입력2018-10-22 10:30

최민식 객원 기자 (newway40@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최민식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장

북한에서 지난 1995년 한여름 3주일 간, 하루 평균 600밀리미터의 폭우가 쏟아졌다. 이른바 ‘100년 만의 대홍수’다. 농경지와 공장들이 침수됐고, 국가기간시설도 재앙을 면치 못했다. 산업이 멈췄다. 1996년에 또다시 수해가 북한 전역을 휩쓸었고, 1997년에는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극심한 식량난으로 이어졌고, 아사자가 다수 발생했다. 1998년과 1999년에도 홍수와 가뭄이 반복됐다.

UN 조사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0년까지 굶어죽은 이가 85만명에 이른다. 미국정보기관은 200만명, 한국정보기관은 300만명이 북한에서 굶어죽었다고 파악했다. 북한 인구의 10분의 1, 적어도 20분의 1이 대재앙의 희생자가 됐다. 영화 ‘공작’에서 굶어죽은 시체가 산을 이룬 모습은 단지 영화적 과장이 아니었다.

같은 한반도인데, 왜 북한의 피해가 치명적이었나. 80년대부터 시작된 식량난으로 북한은 산림을 농경지로 전환하는 경사지 개발을 대대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러나 호우 때마다 산사태가 발생해 쓸려내려간 토사가 강하천에 쌓이면, 많지 않은 비에도 강하천이 쉽게 범람해 농경지를 훼손했다. 그로 인해 식량난이 생기면 다시 산림을 훼손하면서 경사지 개발을 촉진해야 했다.

식량난은 민둥산을 만들었고 민둥산은 식량난을 만들었다. 작금의 남북 산림협력은 따라서 만성적인 식량난의 원인중 하나인 민둥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6년. 이 6년은 북한의 폐쇄적 사회주의 자립경제체제를 되돌아 보게 하는 시기였다. 직전의 1989년 소련의 해체와 이어진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 더불어 중국의 개혁개방과 쿠바의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같은 대변화도 있었다. 그와 달리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을 치르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사회주의 자립경제체제란 달리 선택할 수 없는 외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19일 밤 평양 5·1경기장에서 환호하는 평양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김정일은 2001년 1월, 중국 상하이를 방문해 변화된 모습을 ‘천지개벽’이라 표현하고 같은 해 10월 ‘경제관리 개선방침’을 채택한다. 수익 위주의 기업평가, 실적주의에 입각한 분배, 과학기술과 생산의 결합 등이다. 경제개혁을 위해 특별팀을 구성하고 전세계에 인력을 보내 시장경제를 탐사했다. 2002년 7월1일 이른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선포한다. 전국적으로 300여개의 종합시장을 신설하고, 화폐경제와 시장적 교환에 입각한 새로운 경제체제를 도입했다.

한마디로 ‘공짜, 평균주의는 없다’이다. 나진·선봉 지역 실내시장의 경우, 원래 900여대의 매대를 설치한다는 계획이었던 것이 2013년에 이르러 6300개의 매대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몇 분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장마당에서 종합시장으로 이미 탈바꿈을 끝냈다고 한다. 7·1 경제개혁은 북한을 이전과 다른 길로 나아가게 했다. 다만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대북제재와 외교적 고립으로 인해 내부적 경제개혁의 한계 역시 분명했다.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 시기였던 1997년부터 5년간 스위스 로잔에 있었다. 84년생 김정은은 청소년기를 유럽에서 보냈다. 그의 이탈리아 친구는 그를 농구를 좋아했던 재미있는 친구로 표현했지만, 그의 내면에는 ‘왜 조국 북한은 못살까’라는 근원적인 의문이 있었다. 세계에서 개인이 가장 부자들인 나라 스위스에서 문명국을 체험했다. 전세계의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었고 세계의 흐름을 체감했다. 프랑스로 잠시 유학을 가서 중국경제에 대한 공부도 했다. 세계를 알아갈수록 조국 북한의 현실은 너무도 가슴 아팠을 것이다.

김정은은 2012년 4월15일 첫 공개연설에서 주민들에게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2013년 신년사에서는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2013년 1월29일 당세포비서대회에서는 ‘경제강국건설과 인민생활에서 전환을 일으키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4월15일 첫 공개연설에서 주민들에게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진은 지난 9월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앞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2014년에는 시장경제 요소를 한층 강화하고 적용범위를 확대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의 확립’(5·30노작)을 발표한다. 이 조치에 따라 북한에서 기업과 협동농장의 잉여생산물 처분 권한이 커졌고, 근로자의 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인센티브 격차도 확대됐다. 기업들은 시장을 통해 원료를 사들여 생산하고, 이를 다시 시장에 팔아 이윤을 확보한 뒤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파격적인 개방조치도 내놓았다. 북한은 2013년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한 뒤 19개의 경제개발구와 5개의 경제특구를 지정했다. 최근에는 경제개발구가 더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대북제재 탓에 외자유치는 거의 없다.

김정일은 중국식 개혁을 ‘통제할 수 없는 자본주의’로 보았다. 하지만 김정은은 중국과 유사한 ‘사회주의 시장화’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덩샤오핑의 중국은 80년대에 적극적인 개혁개방을 이뤘다. 당시 대만의 경제전문가를 초빙해 중앙정부의 경제개혁과 경제특구의 경제개발을 지도하도록 했다. 미국과의 국교수립 이후에 미국의 기업들이 중국을 신천지로 여기고 활발하게 뛰어들었다.

최근 유럽과 미국의 관광기업이나 곡물회사 등이 북한을 연일 방문하고 있다. 자신에게 북한 투자를 원하는 기업들의 문의가 많다고 트럼프가 이야기한 것은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6·12 센토사 합의의 1항은 ‘북미관계 정상화’다. 2항 ‘체제 안정’과 3항 ‘완전한 비핵화’는 1항을 향한 조건과 환경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북미 수교와 더불어 북한은 ‘정상국가’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배경은 바로 경제다. 김정은의 북한이 김정일식 선군주의를 넘어 젊은 전문가 그룹으로 당 핵심을 교체했다. 김정은의 북한이 김정일식 강성대국이 아니라 정상국가를 택했다. 젊은 지도자 김정은의 선택은 ‘경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