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배상 결정…더 큰 손실 입은 국민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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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엘리엇 배상 결정…더 큰 손실 입은 국민연금은 “국민노후자금 손실 발생…이재용·박근혜 등에 손해배상 청구해야”

기사입력2023-08-03 09:38

신동화 객원 기자 (hwa@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신동화 간사

보건복지부는 올해 5월 참여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로부터 ‘국민연금이 (구)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비율 합병에 찬성하게 만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부당국의 책임자 등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의사가 있는지’ 질의를 받았고, 지난 6월12일에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엘리엇-메이슨캐피탈 ISDS 중재사건이 계속 중이고, 해당 사건에서 ‘합병에 따른 삼성물산 주주들의 손해’ 등 쟁점(손해배상청구 소의 쟁점과 유사)을 다투고 있습니다…. ISDS 중재판정부의 판단이 확정된 이후, 손해배상청구를 위한 소 제기 여부를 검토할 예정입니다.”

이로부터 10일이 채 지나지 않아 국제 상설중재재판소(PCA)는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S,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에 대해 최종결론을 내려, 대한민국 정부가 손해배상금 5358만6931달러(한화 약 690억원)와 엘리엇 측 법률비용 및 이들 비용의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를 모두 더하면 우리 돈 약 1300억원에 근접한다.

이에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사태의 원인이 된 정경유착·국정농단의 당사자인 이재용 당시 삼성 부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 문형표 전 장관 등에게 책임을 물어 국고 손실을 회수할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삼성물산 불법합병 당시 엘리엇보다도 더 큰 지분을 갖고 있었던 국민연금 또한 이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 주장 중 전자는 법무부가 ISDS 불복절차에 돌입함에 따라 언론지상에 수차례 언급되었는데, 몇몇 보수 경제지들은 시민단체가 정부가 초국적 투기자본에 대항해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기는커녕, 나랏일을 방해하고 국익을 저해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 외에도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을 제외한 대다수 주요매체는 이 문제를 ‘대한민국 정부 VS 엘리엇’ 구도로 피상적으로 다루고, 애초에 이 ISDS가 제기된 근원이 삼성물산 부당비율 합병과 정경유착에 있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미디어오늘, 2023.07.20. 기사 참고). 당연히도 국민연금은 손실에 대해 어떻게 보상받을 것이냐, 시민사회의 질문은 여론화되지 못하고 현 언론환경이 만든 천장 아래에서 사그라질 뿐이다.

엘리엇보다도 더 큰 손실을 입은 국민연금은 왜 가만히 있는가

(구)삼성물산은 2015년 합병 당시 삼성그룹의 핵심 회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4.06% 보유한 기업이었다. 그래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기 위해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당시 총수 이건희 회장은 (구)삼성물산 주식을 1.37%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곧 가업(?)을 물려받을 이재용 부회장은 유의미한 지분을 아예 갖고 있지 못했다. 이에 이재용 부회장은 본인 일가가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제일모직에 (구)삼성물산을 합병시켜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하고,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려 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국민연금이 말한 대로 이제 엘리엇이 제기한 ISDS 결과가 나왔으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게 손해배상청구 소 제기를 검토할 의향이 있는지 다시 질의했다. ©중기이코노미

문제는 합병비율이었다. 총수 일가에게 합병회사의 지분을 더 많이 보장해주기 위해서 제일모직 가치는 절상하고 (구)삼성물산은 가치는 절하돼야 했다. 이에 조직적인 회계조작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산출된 합병비율은 (구)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주식 0.35주 가치밖에 교환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구)삼성물산은 제일모직보다 자산규모가 3배 이상 큰 기업이었다.

당연히 ISS, 글래스루이스 등 주요 의결권 자문회사는 삼성물산 주주에게 이 합병비율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 제공한 뇌물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응답했고, 정권은 (구)삼성물산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이 합병비율에 찬성하도록 외압을 가했다.

2015년 상반기말 당시 (구)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었던 엘리엇은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즉각 행동에 나섰다.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서 삼성물산과의 합의에 따라 659억원 추가지급금을 받았고, 비록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불복절차로 바로 돈을 받지는 못하나 ISDS를 통해 배상 결정을 이끌어냈다. “국가원수로부터 발생한 범죄적 부패에 기반한 주권에 대해 주주 행동주의에 참여한 투자회사가 거둔 아시아 최초의 승리”라는 엘리엇의 자평은 그 덤이었다.

그러나 (구)삼성물산 지분을 11.21% 보유했던 최대주주 국민연금은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집요하게 돈을 받아내는 것을 보면서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이 입은 손실은 당연히 엘리엇보다 훨씬 더 클 터인데도 말이다.

국민노후자산 수탁자 국민연금, 적극적 주주권 행사로 책임 다해야

국민연금은 지난 2018년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을 도입하면서, “심각한 기업가치 훼손으로 국민의 소중한 자산에 피해를 입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수탁자로서 주주가치 제고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문제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나 주주대표소송은 물론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에 나선 적도 없다.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970조 이상의 자산은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낸 연금보험료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 기금의 장기적 가치를 제고해야 할 책임이 있다. 여기에 더해 국민연금은 시장의 주요 행위자이므로,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주권은 비공식적인 정치적 외압 없이 오직 기금의 장기적 이익의 기준에서 실행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연금기금 운용은 독임제 기관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를 통해 이해관계자의 견제와 균형에 따라 결정되도록 정해져있다.

이번 엘리엇 ISDS 사건이 국민연금에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이재용 현 삼성전자 회장이 자신의 사익을 위해 뇌물을 써서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을 동원했고, 이에 국민노후자금에 손실이 발생했다. 그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은 당연히 손실을 발생시킨 이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엘리엇과 달리 2015년 삼성물산 합병 당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았으나, 제대로 된 가치평가가 이뤄졌다면 현재 합병된 삼성물산 지분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국민연금은 정당하게 확보했어야 할 자산의 상당수를 증발시켜버렸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지난 7월31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국민연금이 말한 대로 이제 엘리엇이 제기한 ISDS 결과가 나왔으니 이재용 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게 손해배상청구 소 제기를 검토할 의향이 있는지 다시 질의했다. 국민연금은 또다시 대한민국 정부가 엘리엇 ISDS에 대해 불복절차를 시작했다는 이유로 답을 미룰 것인가? 2년만 지나면 삼성물산 부당비율 합병이 이루어진 지 10년이 된다.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그로인해 발생한 막대한 국민자산 손실을 영원히 만회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신동화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