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자율규제’가 오히려 신뢰를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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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플랫폼 ‘자율규제’가 오히려 신뢰를 무너뜨렸다 막을 수 있었던 티몬·위메프 사태, 안일한 대처가 피해 키워

기사입력2024-08-05 10:01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누구나 예측 가능했던 문제입니다. 중소상인단체와 소비자단체가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음에도 현정부와 플랫폼업계는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 입법이 필요없다고 자율규제를 고집해왔는데, 그 혁신의 결과가 이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티몬·위메프 정산지연 사태로 인한 입점업체의 피해사례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온플법 제정에 반대했던 공정거래위원회와 티몬·위메프, 쿠팡, 네이버, 11번가 등 국내 주요 이커머스 기업들이 포함된 한국온라인쇼핑협회 등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태로 소비자와 판매자의 피해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큐텐의 다른 자회사인 인터파크나 AK몰에서도 정산지연이 우려되면서 피해규모를 가늠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가치가 상실된 지분을 매각해 사태를 해결하겠다던 공허한 약속은 몇 시간 후 신청한 기업회생 절차에서 결국 국민을 속이고 시간끌기용에 불과한 약속이었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큐텐그룹 구영배 대표는 큐텐그룹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 자금이 800억원에 불과하며, 이 또한 전부 정산자금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대 수개월의 정산대금이 묶인 입점 판매자들은 암담한 상황에 놓였다.

대규모의 판매자와 소비자가 모이는 플랫폼의 특성상 이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규모가 엄청나고 여러 피해자를 양산하게 된다. 따라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에 대비한 소비자 보호와 판매자 보호는 반드시 마련돼야 할 안전장치다. 그러나 플랫폼 업계는 ‘자율규제’를 앞세워 그 의무는 회피하고 자유로운 경쟁만을 주장하며 선량한 소비자와 판매자의 피해를 키워온 셈이다.

플랫폼 업계는 온플법 제정을 반대해왔다. 규제 도입은 시장을 경직시켜 플랫폼 사업자는 물론 소비자에게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시장의 자율적 혁신과 자정작용을 통한 소비자 보호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온플법 폐기를 주문했으며, 현행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해결이 안될 경우 자율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그러나 플랫폼사들의 입맛에 맞게 마련된 자율규제 안은 소비자도, 판매자도 지켜내지 못했으며, 플랫폼 기업의 신뢰도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특히 이번 사건을 통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커머스 플랫폼사들의 불합리한 정산주기 문제와 정상자금의 임의 사용 문제는 입법을 통해 규율을 해야 함에도, 공정거래위원회는 판매대금 정산주기 문제는 당사자 간 계약을 통해 정하도록 하는 자율규제를 추진해 위험을 키웠다는 비난을 받는다.

정부의 부실한 관리와 안일한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감독원은 티몬·위메프를 상대로 두차례에 걸쳐 경영개선협약(MOU)을 맺었음에도 형식에 그쳤을 뿐 제대로 관리감독 하지 않았음이 국회 정무위 질의를 통해 드러났다. 공정위 또한 큐텐의 티몬·위메프 인수 당시 경영난에 허덕이던 티몬·위메프가 안정화되지 못하면 소비자나 판매자의 대규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번 사태도 이미 수개월부터 시그널이 있었음에도 관계당국은 이에대한 경고를 보내지 않았다.

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망각하고, 파트너사의 판매대금을 안전하게 관리하지 못한 큐텐, 티몬, 위메프 경영진에 대한 엄벌과 정부 당국의 업무 태만에 대한 책임추궁도 뒤따라야 한다. 이미 큰 피해가 발생했지만, 이제라도 온라인 플랫폼 생태계가 공정하고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는 온플법 제정 등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