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게 질린 사람들은 모여서 무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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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파랗게 질린 사람들은 모여서 무얼 하는 걸까 피렌체에서 만난 마니에리즘 걸작 ‘그리스도의 매장’

기사입력2022-09-08 09:06

2022년도 어느덧 절반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3년 동안 우리를 집안에 가두어 두었던 코로나의 기세가 확실히 꺾이고 있습니다. 코로나 변종의 출현은 이어지고 있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활동적인 생활을 되찾게 된 건 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가 처음 발생했던 2020년 초, 나라마다 매일 발표되는 높은 사망자수는 전세계를 깊은 슬품과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며 장례식조차 치를 수 없는 끔찍한 재앙을 경험해야 했으니까요.

당시 뉴욕 타임지에 실린 사진 한 장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남편의 장례식을 지켜보던 중에 코로나 확진을 받고 응급실로 실려가는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코로나가 그야말로 도시의 재앙이 되었던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 베르가모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발병 초기에 훨씬 무자비했던 코로나는 가족의 장례식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전체 인구 100만명이 조금 안되는 이 작은 도시는 한달 동안 3300명의 가족을 떠나보내는 ‘죽음의 행진’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가족의 장례를 지켜보는 슬픔은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어땠을까요. 누군가의 울음이 터지면 슬픈 감정은 순식간에 번져 온통 눈물바다가 되는 소란한 장례식장의 모습은 그림으로 그려져 영구 보존되어 왔습니다. 유럽의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보통 ‘그리스도의 매장’이라는 주제로 그려지는 이 그림은 사랑하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 곁에 쓰러진 어머니와 제자들의 슬픔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탈리아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조토가 그린 ‘그리스도의 매장’

이탈리아의 파도바에 있는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조토(1267~1337)라는 화가가 그린 ‘그리스도의 매장’은 이 장면을 그린 유럽 미술의 표본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몸을 끌어안고 우는 어머니 마리아 곁에는 여인들이 애곡하는 모습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팔을 모아 눈물을 닦는 이가 있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팔을 버둥거리며 통곡하는 여인 앞에는 이미 차갑게 식은 손등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여인의 뒷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우는 자, 기도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죽은 예수를 바라보며 그의 마지막 모습을 애도합니다. 이것이 서양미술에서 죽음을 애도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상징적인 그림을 그린 중세 화풍을 극복하고 사실적인 삶의 모습들을 담아낸 조토는 당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장례식 장면을 보고 그렸을 것입니다.

고전미술 작품에서 비교적 공식처럼 그려져 왔던 이 죽음 장면을 아주 특이하게 담아낸 화가가 있습니다. 자코모 폰토르모(1494-1557). 그는 피렌체 근교 폰토르모에서 태어나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성이 자자했던 시대에 살았던 이탈리아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에는 주로 미켈란젤로의 예술세계에 대한 흠모와 호기심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가 그린 수많은 스케치들은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연습한 흔적이 많은데, 2018년 피렌체에서 열린 폰토르모 특별전시회 입구에는 르네상스 거장에 대한 그의 애정을 오마주하듯 미켈란젤로의 석고 조각상 ‘강의 신’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폰토르모 미술의 매력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르네상스 거장의 작품을 자기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을 담아 표현하는 미술을 마니에리즘 미술이라고 합니다.

그의 대표작 ‘그리스도의 매장’은 폰토르모라는 화가의 개인적인 해석 덕분에 당시에도 파격적이며 독특한 작품으로 사랑받았습니다. 파랗게 질린 사람들이 마구 뒤엉켜 있는 장면은 어수선한 장례식장의 인상을 모던하게 해석한 것입니다. 르네상스의 고전적 냄새를 풍기지 않는 매력적인 작품이죠. 대개는 가로로 긴 화면에 사람들을 예수 주변에 둘러싸이게 그려왔던 방식을 완전히 벗어나 세로로 길어진 폰토로모의 화면에는 어떤 배경도 없이 사람들이 꽉 차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가 어딘지 배경에 신경을 분산시킬 여유가 없습니다. 화면에 꽉찬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비극적인 장례식 장면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죠.

자코모 폰토르모의 ‘그리스도 매장’

유일하게 옷을 벗은 예수 그리스도의 축 처진 유해를 두 사람이 위태롭게 안고 있습니다. 예수의 몸을 어깨로 받치며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래의 인물은 핑크색 쫄티에 노란색 토가를 휘두른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발가락을 세워 쪼그리고 앉은 모습,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누군가를 바라봅니다. 그는 누군가의 죽음을 감당하기 어려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예수를 뒤에서 안고 있는 인물은 몸이 휘청거립니다. 예수의 목이 꺾이지 않도록 목을 가누어주는 여인도 차마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손을 잡은 인물조차도 아예 고개를 돌려 애써 죽은 자를 외면합니다. 조금 위에는 어머니 마리아가 혼절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어깨에 팔을 기대며 죽은 아들을 향해 팔을 뻗습니다. 그녀는 감당 못할 슬픔에 몸조차 가누지 못합니다.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폰토르모는 이 그림에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이 밝고 좋을 리 없겠지만, 이 그림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의 이 불안한 표정들은 어디서 온 걸까요?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는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한 경험이 있었을까요?

사실 폰토르모는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5살에 아버지를, 11살에 어머니를 잃게 됩니다. 하나밖에 없는 누나 역시 어머니 뒤를 따르면서 그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는 피렌체 정부의 고아 지원금을 받으며 구두 수선공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마주한 가족의 장례식 장면은 그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평생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게 만듭니다. 자신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늘 따라다닌다는 불안감을 안고 안절부절 못하는 예민한 성격으로 살아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의 죽음을 주제로 다루는 그림들은 예수의 죽음이 주는 엄숙한 의미, 즉 구원과 사랑에 대한 묵상을 표현해 왔습니다. 예수의 죽음이 개인의 죽음이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폰토르모의 ‘그리스도의 매장’은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기억을 담아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의 불안함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 그림에서는 어느 누구도 예수의 죽은 모습을 쳐다보지 못합니다. 비록 그의 실제 자화상이 마리아 뒤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울상을 지으며 엄지발가락으로 예수의 무게를 지탱하며 쪼그리고 앉아 있는 맨 아래의 인물은 폰토르모 자신의 심리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림이 보편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 여겼던 시대에 그는 자기의 두려운 심리를 그림으로 해소합니다. 장례식의 차가운 분위기는 파란색의 단색톤으로 그려진 옷을 통해 블루와 회색톤의 우울한 감성으로 표현됩니다. 장례식을 바라보는 우리의 슬픔과 우울한 분위기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창조하며, 그는 마니에리즘 미술의 특성인 ‘모던함’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자손이 생을 마감했던 피티 궁전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성당, 산타 펠리치타. 그 안으로 들어서서 문 오른쪽에 있는 카포니 예배당에 가면 폰토르모의 마음을 표현한 원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이다 미술역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