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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동네는 ‘뜨고’ 사람들은 ‘떠난다’
‘핫 플레이스’마다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민낯
- 기사입력2014-11-24 15:33
김창훈 기자 (ckim2014@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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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남동에서 커피집을 운영한다는 부부의 절절한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전재산 수억원을 투자하고는 죽을 둥 살 둥 매달려 근사한 가게를 만들어 놨더니, 주인집 아들(이런 경우는 꼭 당사자가 아니라 자식들이 전면에 나선다)이 여차저차 이러저러한 방법과 꼼수를 섞는 바람에, 권리금 하나 없이 날름 가게를 뺏기게 될 형국이라는 이야기다. 젊은 사람이 오죽 손을 잘 써놨는지, 이 부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란 보이지 않았다. 연남동이 소위 ‘핫 플레이스’ 대열에 합류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이태원은 우사단길과 해방촌으로, 홍대는 상수동과 연남동으로, 가회동과 계동 북촌은 통인동과 체부동 서촌으로… 서울 시내에 소위 ‘핫 플레이스’로 주목받는 동네들이 자가생식하듯 덩치를 키워가면서 이들 지역의 ‘원주민’ 격인 세입자들과 소상인들의 시름도 함께 깊어지고 있다.
실제 해방촌 경리단길에 둥지를 튼 소상공인 중 많은 수가 이태원에서 건너온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이태원이 고급·프랜차이즈 식당가로 재편성되면서 천정부지로 뛰어버린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왔던 것인데, 불과 몇 년만에 똑같은 고민을 하게 생겼단다. 특유의 ‘불편함’(에 기댄 저렴한 임대료)과 쉽게 곁을 내주곤 하는 동네 인심 덕분에 이 동네에 터를 잡은 다국적 세입자들도 마찬가지다.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가게의 임대료가 올라가면서 ‘돈 덜 되는’ 주거용 셋방보다는 가게를 내려는 집주인이 많아지는 까닭이다. 그나마 들썩이는 집값에 혹해 집을 처분하고 동네를 뜨는 주인들도 늘고 있단다.
가회동과 계동의 한옥이란 한옥의 가격을 몇 배씩은 들썩거려놨던 몇 년 전의 광풍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런 유별스러움 대신 소박하고 ‘사람 냄새’ 나는 동네로 주목을 받았던 서촌은 이제 시나브로 북촌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 수성동계곡 쪽 집값은 몇 배가 뛰었네, 누구네는 전셋값을 몇 배 올려달라 했네, 어느 집 세입자는 홍은동 반지하로 쫓기듯 옮겨갔네 하는 말들이 빈번해진지 오래다. 때맞춰 집을 처분하는 주인들도 많아지면서 하루가 다르게 주인과 용도가 바뀌고, 오랜 기간 내 집처럼 손보며 살아온 세입자와 소상공인들은 하루아침에 마뜩잖은 불청객이 돼 버렸다.
바야흐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시대다.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두 가지 얼굴을 갖는다. 도심 속 공동화된 중하류층 거주지역에 고급주택을 지어 세입자를 더 멀리 밀어내는 런던이나 뉴욕과 같은 전형적인 ‘재개발’형과, ‘뜨는’ 동네에 자본이 밀려들어와 기존의 소상공인을 쫓아내는 ‘핫 플레이스’형이 그것이다. 터전을 잃고 밀려나는 세입자·소상공인들의 신산한 삶이야 마찬가지겠으나, 특히 후자는 매우 ‘한국적 현상’으로 보인다. 한 지역을 ‘뜨게’ 하고 정체성을 규정했던 결정적 존재들은 밀려나고, 자본에 기댄 고만고만한 새 물결이 들이닥치는 과정은 놀랍기까지 하다. ‘동네’의 알록달록한 개성이 ‘도시’의 그렇고 그런 부속물로 퇴화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고역스런 일이다. 오늘도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는 그렇게 자본의 손길에 스러져가고 있을 것이다.<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